일요신문 DB
사례 하나. 최근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를 찾은 30대 남성 A 씨는 병원을 찾았지만 다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해당 병원 간호사는 “저희 병원은 교정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일반진료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A 씨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인 아말감 시술 정도면 간단히 치료가 가능한 경우였지만, 해당 병원은 앞서의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
사례 둘. 20대 여성 B 씨는 직장 근처에 위치한 한 피부과를 찾았다. 밤새 도진 원인불명의 포진 때문이었다. 해당 병원 앞엔 진료과목에 피부과란 간판이 내걸렸지만 병원 안은 강남 여느 뷰티숍과 다를 바 없었다. 해당 병원 진료 접수처에선 “저희 병원은 에스테틱 시술만 할 뿐 일반 진료는 하지 않는다”고 답하며 진료를 거부했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이 같은 일을 겪어봤을 것이다. 이처럼 일선 병원에서 이른바 비급여에 해당하는 심미용 시술을 전문으로 한다는 이유로 일반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가정의학과 등에서 각종 주사시술만 제공하고 일반진료를 거부하는 일도 비슷한 경우다.
이러한 병원들이 일반 진료를 거부하고 심미용 시술이나 주사 시술에만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돈 때문이다. 대부분 일반진료는 보험수가가 낮은 급여항목에 들어가지만, 심미용 시술의 경우 대부분 비급여 항목에 해당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아니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의료법 15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의사의 부재나 장비의 부재, 상급 병원으로의 이송 조치 등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할 수는 있어도 특별한 이유 없이 환자들의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다. 특히나 영리 목적 때문이라면 더 그러하다.
그렇다면 앞서의 병원들은 왜 버젓이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진료거부를 불법으로 명시한 법조항은 존재하지만 관련 시행령을 비롯해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진료거부 행위로 적발됐다 하더라도 그 처벌 규정은 매우 미비하다.
강태헌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앞서의 경우에 대해 “(당연히)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 묵시적으로 환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의료거부행위가 성립되지 않지만, 환자가 직접 진료 의사를 밝히는 경우는 거부행위에 해당한다”면서도 “문제는 진료거부 조항 자체가 너무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어디까지가 진료거부행위냐를 두고 판단해야 하지만 이를 중재할 보건복지부도 모호한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의료법 전문 변호사인 성용배 정앤파트너스 변호사 역시 “교정, 에스테틱, 주사 등 비급여 진료만 하려고 급여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엄연한 진료거부에 해당한다”라면서도 “하지만 적발된다고 하더라도 벌금자체가 크지 않다. 결국은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강 사무총장의 지적처럼 실제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상당히 모호했다. <일요신문>과 통화한 보건복지부 측 관계자는 “(진료거부행위에 대해) 추측만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위법성 여부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해봐야 한다”며 “법으로 모든 것을 명시하기는 어렵다.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고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다만 “심미적 목적으로 비보험 시술만 한다면 이것은 위법”이라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병원의 진료거부행위가 환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안전성에 있다는 지적이다. 비급여 시술의 경우 급여 항목과 다르게 중앙에서 제도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제도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비급여 시술의 경우 자칫 안전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국은 의료기관들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당연지정제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러한 의무사항을 어기며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병원들이 수두룩하다. 국내 법 테두리 안에서는 당연지정제를 취하고 있지만 미가입 병원들에 대해 강제성을 띠는 처벌 규정은 미비하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를 비롯해 앞서 심미용 시술을 전문으로 하며 급여 진료를 거부하는 다수의 병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이러한 의료보험 미가입 병원에 대해 “급여 항목의 진료는 국가에서 일정 부분 감시체계 안에서 통제될 수 있다”며 “하지만 비급여 진료 및 시술은 이러한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나병원의 사례처럼 C형 간염이 집단 발생하는 사고가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C형 간염 무더기 집단 감염 사태를 야기한 다나의원의 경우 환자들에게 비급여 항목인 수액 주사 시술을 권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주사바늘을 재사용했고, 결국 집단 감염으로 이어졌다. 김 대변인이 언급했듯 당시 사고의 주원인 중 하나는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시술이었기에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 통제가 되지 않았던 측면이 컸다.
앞서의 성용배 변호사는 이러한 일선 병원들의 급여진료를 비롯한 진료거부 행위에 대해 “결국은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며 “행정처분에서 자격 중지 등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 금전적 처벌보다 효과적인 통제일 수 있다”고 처벌 수위 상향을 제안했다.
강태헌 사무총장은 앞서의 문제에 대해 “결국은 우리 의료기관들이 의료민영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준비의 과정이자 하나의 현상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하며 “급여 항목에 대한 단순한 진료거부 행위를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성형외과 10곳 중 8곳 ‘심폐소생장비 없음’ 일요신문DB 전신마취가 요구되는 이러한 대수술의 경우 만에 하나를 대비한 안전장비가 필수다. 하지만 일선 성형외과 중 상당수는 여전히 유사시를 대비한 심폐소생장비를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 19대 국회 당시 2014년 국감을 통해 강기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해당 문제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강 의원의 당시 자료에 따르면 지역 내 성형외과 10곳 중 8곳은 심폐소생장비를 안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강태헌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일례로 저희가 서울 내 환자들이 연이어 사망한 한 성형외과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해당 병원을 관할하는 보건소를 찾아 심폐소생장비 현황을 물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파악이 없더라”라며 “큰 수술을 다루는 성형외과의 경우 심폐소생장비의 구축과 관련한 제도적 의무규정이 있어야 함에도 부재한 상황이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호균 히포크라 변호사 역시 이에 대해 “CPR(심폐소생술) 제세동기 비치에 관한 법률이 미흡하다. 의료기관만 강제할 뿐 성형외과가 제외되는 것은 옳지 못한다”라며 “심지어 응급처치를 못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부분은 꼭 입법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강제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우리 협회 차원에서도 심폐소생장비를 갖추도록 병원에 권고하고 계도하고 있다”라며 “분명 예전에 비해선 일선 병원에서도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장비를 갖추는 것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사안임에는 분명하다”라고 개선 중임을 시사했다. [한]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