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아무개 씨(여·39)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배 아무개 군(7)이 있다. 배 군은 네 살 때 호두 반 알을 먹고 호흡 곤란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후 배 군은 아나필락시스 진단을 받았다. 여섯 살 때는 땅콩을 먹던 아이의 침이 눈에 튀어 눈이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니 바로 가라앉아 어릴 때처럼 응급실에 가지는 않았다. 이제 배 군 스스로 삼가야 할 음식을 알고 있었고 아나필락시스를 하나의 감기 같은 질환으로 알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배 군의 아나필락시스 소견서.
아나필락시스는 신체가 원인 물질에 노출되면 갑작스럽게 몸 전체에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피부 두드러기, 호흡곤란, 기침, 혈압 저하 등의 증상이 흔하게 나타나며 신속하게 조치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치료약은 없고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유일한 예방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일곱 살 때 배 군은 한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을 다녔다. 또 다시 응급실에 가는 상황이 두려웠던 김 씨는 급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서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해당 유치원에서는 아이에게 식단에서 견과류를 제외하고 신경 써서 먹일 테니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해당 유치원의 교사는 “다른 친구들이 급식을 먹는데 아이 혼자 도시락을 먹으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급식 지도에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또 유치원에서는 “이후의 같은 알레르기를 앓는 아이들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 주겠다”며 긴급대책회의를 통해 아이를 위해 전체 교사들이 알레르기 대책 매뉴얼을 만들었다. 김 씨는 이 같은 유치원의 배려에 아이를 걱정 없이 맡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배 군의 학교에 전달한 아나필락시스 안내자료.
학교 측에서 급식을 이용하기보다는 도시락을 싸올 것을 요구했다. 급식 배식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지난 2013년 인천 소재 초등학교에 재학했던 아나필락시스 학생의 뇌사 판정 이후 알레르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학교급식법을 개정했다. ‘학교 급식에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식재료가 사용되는 경우에는 이 사실을 급식 전에 급식 대상 학생에게 알리고, 급식 시에 표시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것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식재료 18종에 대해서 알레르기 주의 표시를 한 월간 식단표를 가정통신문으로 안내하고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게재하고 있다”며 “주간 식단표도 식당과 교실에 게시하며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과 담당 교사들에게도 주의해서 배식할 것을 알리고 있어 알레르기를 겪는 학생들도 안전하게 학교 급식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급식보다는 도시락을 요구하는 학교가 있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씨에 따르면 학교 측은 김 씨에게 배 군에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시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통보했다. 김 씨는 “아이의 증상을 말한 이후 학교로부터 서른 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올 때마다 통화의 목적은 없었고 항시 학교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는데 이로 인해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김 씨는 보건교사로부터 ‘이렇게 힘든 아이를 학교에 맡기시면 어떡하냐’ ‘첫째만 낳으신 게 둘째도 이런 애 낳을까봐 두려워서 안 낳은 거냐’ 등의 말을 들으며 마음고생을 했다고 고백했다.
학교 측에서는 예전의 유치원에서처럼 배 군의 아나필락시스 증상 때문에 대책 회의를 했다. 문제는 회의 끝난 이후였다. 지난 3월 28일 저녁시간에 교감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고 김 씨는 회상했다. 김 씨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교감 선생님이 꺼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며 “학교에서 아이가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안 생길 수도 있는데 사망 시에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학교급식법에 따라 알레르기 유발 식재료를 식단표에 표기해야 한다.
김 씨는 “평생 나을 수 없는 질환을 갖고 살아가는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 가혹하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으니 그제서야 사과를 했다. 가족 모두가 이번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서면 사과를 원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 측에서는 “각서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은 없다. 학부모를 만나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며 “학생을 잘 기르려고 했던 것인데 학부모와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를 담당하는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 확인해보니 배 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던 회의에서 교사들이 난상토론을 하던 중에 각서가 잠깐 나온 것”이라며 “알레르기 음식을 섭취한 이후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주사기로 대처해야 하는데 이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머니를 학교 근처에 대기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어머니가 일을 해서 근처에 대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의 상황까지 생각하던 과정에서 각서 이야기까지 나왔던 것 같다. 그 학교에 아나필락시스 학생으로는 배 군이 처음이어서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