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한국어를 가르치며 제가 놀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보름 만에 한글을 읽고 씁니다. 낯선 외국어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학생의 열정도 있겠지만 언어가 과학적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한국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의 한국어 강의. 인기 있는 한국노래로 가르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는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 순입니다. 각각 33개국, 31개국, 99개국에서 씁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는 많지만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쓰는 인구와는 차이가 많습니다. 한국어는 13위로 5개국에서 사용합니다.
한국어는 동남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며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소리글자라는 점입니다. 우리글은 이 세상의 어떤 소리도 정확히 표기할 수가 있습니다. 또 휴대폰이나 자판으로 가장 빨리 칠 수 있는 문자입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는 상대가 안됩니다.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찌아찌아 부족은 말의 발음을 한글로 씁니다. 말은 하는데 표기하는 언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고 과학적인 언어를 찾다 한글을 채택한 것입니다. 우리글은 소리를 정확히 표기하는 언어인 것입니다.
요즘 저도 미얀마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대학생 선생님이라 너무 좋습니다. 한국어로 물어보니까요. 저도 그간 영어로 수업을 했는데 언젠가는 이 나라 언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언어는 배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미얀마어는 자음이 33개인데 모음과 복합문자가 따로 있고 3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자음끼리 결합되어 소리와 뜻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발음이 비슷한 게 많아 외국인이 정확하게 발음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학생들 이름을 부르면 처음엔 웃습니다. 정확한 발음이 아닌 겁니다.
제가 한국어를 가르치며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정확하게 읽는 것입니다. 뜻을 몰라도 한국인처럼 읽어라. 그러면 나중 단어를 배우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 사투리는 안된다. 낮춤말과 반말은 배우지 않는다. 주문이 많습니다. 한글은 입과 혀의 모양이 중요합니다. 과학적인 소리이자 문자입니다. 그래서 외국인도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은 쉽지만 나중은 어렵습니다.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다양합니다. 그래서 시인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다행스럽게 미얀마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빨리 배우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한국어 열풍이 폭발적으로 불고 있습니다. 한국을 가장 좋아하기도 하지만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어 능력시험에 통과하면 한국에 취업할 수가 있습니다. 유학도 갈 수 있습니다. 또 양곤에 있는 한국기업에 최우선으로 취직을 할 수 있습니다. 급여도 많이 줍니다. 그러니 한국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저도 중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너희들은 시간이 많으니 조금씩 배우라고 합니다.
언어는 훗날의 지적 재산입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친근해지려면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 우리말을 자꾸 보급해주면 우리 문화를 공감하게 되고 한국인들과 친근해지게 될 것입니다.
처음 이곳으로 파견되던 날이 생각납니다.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곤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한국말 안하고 한국어 안쓰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생을 언어와 산 사람이라 아쉽지만 시원했습니다. 그래서 본부에 보고서를 썼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할까요. 보고서가 아니라 질의서가 되었습니다. 한 달 후 답신이 왔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1. 남을 돌보기 전에 자신이 바로 서야 합니다. 기후, 음식, 언어에 먼저 적응하세요. 1년쯤 걸릴 겁니다.
2. 가장 잘하는 일을 하세요. 보기에 고등학교 시절엔 시를 썼고 대학시절엔 소설을 썼고 신문사에선 기사를 썼고 나중에 홍보회사 하며 방송카피를 썼으니 한국어를 가르치고 쓰는 일을 하시면 어떨까요.
이런 답신을 받은 것도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본부에 교육에 관심있는 젊은 선생님을 하루속히 보내달라고 간청을 거듭합니다. 학생들에겐 소통이 잘되는 젊은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또 수업도 늘려야 합니다. 게다가 요즘 한국 청소년들의 언어는 점점 단축되어지고 디자인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치고 전달되는 언어인데도 말입니다. 저도 모르는 단어들이 많아 공부를 합니다. 자음으로 감정표현을 하고 부호로 마음상태를 담습니다. 젊은 층이 단축하여 쓰는 일상용어는 500개가 넘습니다. 한국어는 이제 소리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며, 가장 빨리 전달되는 문자이며, 단축어가 가장 많은 문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