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비행기. 상상하면 여행의 기쁨에 신이 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테러의 위협, 사고 가능성 때문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칵핏에서’는 비행기 조종석 칵핏(Cockpit)에 앉는 현직 조종사들이 비행기, 항공사, 조종사 등 사람들이 항공업계 전반에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코너입니다. 실제 조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비즈한국] 왜 항공사는 아픈 사람들의 탑승을 거절할까? 사람이 몸이 아프면 아무래도 말이 통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선진국이라면 만만치 않은 치료비와 외국어 울렁증 때문에 그럴 것이다. 후진국이라면, 열악한 의료시설을 본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6년 9월 로마에서 49세의 여성이 8박 9일의 이탈리아 단체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적기에 탑승 후 사망했다. 탑승 수속 당시 여행 중 기력을 많이 소진한 데다 전날 음식(라면)을 잘못 먹고 체해 몹시 탈진한 상태였다. 병색이 완연했고, 부축이 없이는 걷기도 어려웠다. 결국 휠체어를 타고 탑승했다.
이륙 후 1시간 4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병세가 악화됐다. 매우 위험한 상태를 보였고 기내에서 수액과 링거 주사, 심장마사지 등 응급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8시 55분(한국시각)쯤 깨어나지 못하고 결국엔 사망했다. 이후 이 사망사건을 가지고 유족과 항공사 및 해당 여행사 가이드 간에 복잡한 소송과정을 거쳤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후속기사가 없어서 필자도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이렇게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항공사 승무원 입장에서 설명을 해드리고 싶다.
일단 승객에게 이상증상이 발견되면, 제일 먼저 객실승무원이 응급조치를 하면서 기장에게 보고한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조종사는 결코 조종석을 떠나면 안 된다. 때문에 객실 사무장과 의사 간에 내용을 전달하는 기장은 자기 눈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사무장을 통해 듣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가장 좋은 경우는 ‘닥터페이징’이라고 해서 기내방송을 해서 혹시라도 있을 의사를 찾아보는 것이다. 의사가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이거 야단난다. 환자는 숨넘어가고 있다. 사무장은 응급조치를 하면서 인터폰으로 기장에게 보고한다. 기장은 SATCOM이라고 해서 비싼 위성전화로 통제센터나, 급하면 의사 집으로 직접 전화해서 상황을 중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의사의 전공이 환자 병과 맞으면 상관없겠지만, 틀리면 또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가 지시하면, 사무장에게 지시해서 EMK라고 하는 기내에 비치된 비상의료장비를 꺼내서 처치에 들어간다. 이걸 또 기장은 인터폰으로 사무장에게 전달하고, 사무장은 또 객실승무원에게 설명해야 한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가 조금 호전됐다고 하자.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목적지까지 10시간을 계속 비행해서 갈 것인지, 다시 출발지인 로마공항으로 내릴 건지. 일단 기술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항공기에는 최대착륙중량(Maximum Landing Weight)이라는 제한사항이 있다.
만약 이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착륙시키려고 하면, 바퀴(Landing Gear)가 접지 시 항공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주 심한 경우, 충격에 의해 바퀴가 날개를 뚫고 나올 수도 있다. 날개에는 휘발성이 아주 강한 비행기의 연료가 실려 있다.
결국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무게를 줄이려고 연료를 꽉 채워서 이륙한 비행기의 연료를 공중에 버리거나, 다 소모하고 내려야 한다. 기준 무게를 맞추기 위한 연료 소모하는 데만도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린다. 결국 승무원의 손에, 신의 은총이 함께해서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 해도, 1시간 안에는 못 내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환자가 불행히 사망했다고 가정하자. 공식적으로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망선고는 의사만 할 수 있다.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내에 의사가 없다면 법적으로 기술적으로 조종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람이 살아 있다면 누구나 그렇듯이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Divert)하게 된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 오기까지 공항이 많아서 기술적으로 일단 (연료만 소모한다면) 착륙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미주노선이라면 태평양 한가운데서 보잉747이나 에어버스380처럼 비행기가 너무 크면 착륙할 수 있는 공항도 거의 없다. 앞으로 네댓 시간 동안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이 없다면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환자가 아닌 다른 승객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많이 사라져 10분의 시간도 손해 보는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승객 중에는 수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으러 바이어와 상담을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고, 해외여행 한번 해보려고 몇 년 동안 계를 부은 사람도 있다. 내일 아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만 뜨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포스터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사망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사망한 승객을 아무도 없는 곳에 격리해서 최대한 다른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게 노력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내가 탄 비행기에서 사람이 죽었고, 앞으로 6∼7시간을 함께 가야 한다면?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굳이 공포영화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된다.
하여튼 위와 같은 이유로 비행기에 환자를 승객으로 모시고 간다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로 소송을 당하고 내 옆의 동료가 그런 일로 징계를 받았다면 누구라도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진다. 지금 개봉한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를 한번 보시라. 3성 장군부터 외무장관, 심지어 영국 총리마저도 책임을 미루려고 한다.
아프면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처럼 해외여행 가서 이제 오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힘들어도 다 보자, 무조건 몸에 좋다니까 일단 먹고 보자.’ 그런 것을 조심하시라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기는 수밖에 없다. 설사 비행기에 올라 아프더라도 기내 안에서 얼마나 처치가 제한적인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고 싶다. 고국으로 돌아가 치료받고 싶은 환자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하늘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매버릭 현직 민항기 조종사(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