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는 단순히 조직 구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선거의 핵심 변수인 ‘세력·인물·자금’을 총망라하는 집합체다. 정책의 정치화를 통한 구도 선점 효과는 물론, 세력 구분의 방향타를 점쳐볼 수 있는 분수령이다. 미로 찾기 같은 각 후보의 대선 캠프 자체로 차기 대권과 야권 발 정계개편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야권 주자들의 차기 대선행보가 빨라진 원인은 ‘2012년 대선 패배의 학습효과’와 ‘대세론 없는’ 현 구도와 무관치 않다. 총·대선이 같은 해에 있었던 2012년 범야권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과반을 뺏겼지만 정당 득표율에서는 집권여당을 앞섰다. 야권 내부에서 제기된 ‘대선 필승론’도 이 지점과 궤를 같이했다.
당시 152석을 얻은 새누리당은 42.8%(912만 9226표), 127석의 민주통합당은 36.5%(777만 5737표), 13석의 통합진보당은 10.3%(219만 8082표), 5석의 자유선진당은 3.2%(68만9843표)였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합계는 997만 3819표(46.8%)로, 범보수진영(새누리당+자유선진당)보다 15만 4750표 앞섰다.
특히 대선의 캐스팅보트인 수도권의 핵심 서울 48석 중 야권이 32석(민주통합당 30석, 통합진보당 2석)을 차지하면서 ‘야권 필승론’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대선 캠프 구성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점효과를 뺏겼다. 18대 대선을 2년여 앞둔 2010년 12월 27일 박 대통령 측근들은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안국포럼이 있었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국가미래연구원이 우군으로 작용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미래연구원 출범 일주일 전인 12월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골자로 하는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고 진보 아젠다를 선제적으로 던졌다. 박 대통령의 발 빠른 행보는 보수층의 중도·진보층 공략으로 이어졌고, 중원 싸움에서 밀린 야권은 2012년 대선에서 석패했다. 그만큼 대선 캠프 구성은 대권 주도권의 키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대선 캠프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담쟁이포럼 시즌2’다. ‘담쟁이포럼’은 4년 전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조직이다. 이후 선거대책위원회인 ‘담쟁이캠프’의 모태가 됐다. 여럿이 함께 손잡고 한 몸이 돼 오르면 제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오를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네팔에서 귀국한 뒤 8월 정국에서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추모행사 참석, 더민주 8·27 부산시당 대의원대회, 백령도 방문 등 전방위 행보에 나선 문 전 대표 측은 이르면 다음 달 사무실을 내고 대선 캠프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데드라인은 늦어도 내년 초다. 문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4개월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연말, 늦으면 내년 초께 문 전 대표의 담쟁이포럼 시즌2의 얼개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 측의 이 같은 행보에는 18대 대선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렸다. 담쟁이포럼은 19대 총선 임기 시작(2012년 5월 30일) 날 1차 발기인 300명과 함께 ‘문재인 대안론’에 불을 지폈다. 이후 같은 해 6월 17일 문 전 대표의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출마 공식 선언, 8월 5일 ‘담쟁이캠프’ 공식 발족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미 대세론을 탄 박 대통령보다 1년 반 정도 늦은 출발이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당 대선평가위원회도 정권탈환 실패의 원인으로 ‘사전준비 미흡’을 꼽은 터라, 문 전 대표 측의 행보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담쟁이포럼 시즌2를 비롯해 전체적인 대선 기획은 친노(친노무현)계 핵심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공연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 등이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비서관은 2012년 대선 당시 문 전 대표의 ‘힐링캠프’ 출연을 주도했다. 양 전 비서관은 “당초 박근혜 후보 측보다 우리가 먼저 출연하기로 돼 있었는데, (정치도의상) 양보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탁 전 교수는 담쟁이포럼의 1차 공동제안자였다. 이들은 ‘히말라야 전문가’ 소설가 박범신 씨, ‘EBS 세계테마기행’을 연출한 탁재형 PD와 함께 문 전 대표의 네팔행에 동행했다.
이쯤 되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문 전 대표가 본격적인 대권 행보 초반부터 히말라야 트래킹 등과 관련한 책 출간과 미디어 홍보를 극대화하면서 2040세대 끌어안기에 나서는 한편,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부탄에서 학습한 국민총행복지수(GNH) 등을 주제로 한 경제모델을 제시하는 시나리오다.
최근 문 전 대표가 관심 있게 읽는 책은 ‘비정상경제회담’(출판사 옥당)이다.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와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이동걸 동국대 초빙교수, 윤원배 숙명여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민주정부 10년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역임, 문 전 대표가 차기 대선 과정에서 일부를 ‘십고초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캠프 전체적인 조직 구성은 ▲용광로 ▲네트워크형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4년 전 담쟁이포럼 시즌1도 화합형·통합형 선대본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지나친 수평적 구조로 조직의 구심점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만큼, 조직을 총괄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을 전진 배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전 대표의 대권캠프가 조기 가동 준비에 들어갔다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와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은 조직 재정비에 방점을 찍었다. 안 전 대표의 차기 대선 구상의 핵심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다. 이곳은 2012년 대선 캠프였던 ‘진심캠프’의 전진기지였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8월 16일 이사장에 안 전 대표 후원회장 출신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4년 전 초대 이사장은 대표적인 진보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였다. 이 밖에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교수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정연호 변호사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옥 덕성여대 명예교수 등이 이사진에 포진했고, 조광희 변호사가 감사를 맡았다.
8월 16일 내일 사원총회에 참석한 안 전 대표는 “기존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체제로 시작하는 것”이라며 대권 행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다음 날인 17일 성남시민사회포럼 청년위원회 초청 강연에서는 “국민이 내년 대선서 더 큰 분노 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 전 공식 팬클럽이었던 ‘해피스’를 비롯해 지지모임인 ‘내일포럼’과 ‘안전모’(안철수 지지 전국모임) 등이 사실상 올스톱된 가운데 안 전 대표의 부산조직인 ‘가온포럼’과 ‘부산내일포럼’이 알력설에 휘말리는 등 전체적인 조직이 무너진 상황이다. 안 전 대표 측은 사조직 재건에 선을 그으면서도 “당분간 ‘미래’ 키워드를 앞세워 차별화된 정책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민주와 연대할 것은 정책연대를 하되, 차별성을 고리로 지지층 결집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계복귀가 임박한 손 전 고문의 싱크탱크는 ‘동아시아미래재단’이다. 재단은 8월9일 김종희 전 더민주 용인정 지역위원장을 신임 사무총장에 임명하는 등 조직 재정비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이전까지는 김병욱 더민주 의원이 맡았다. 손 전 고문 측은 한발 더 나아가 재단 조직과는 별도로 국민운동본부 등을 구성, 더민주와 국민의당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 등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와 손 전 고문의 전략은 차기 대선에서 가장 앞선 문 전 대표와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뒤 야권 지지층을 하나씩 점령해가는, 이른바 ‘천하삼분지계’인 셈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박 시장 측근들은 싱크탱크 형태의 외곽조직 ‘새물결’(가칭)을 조만간 구성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사무실을 냈다.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서왕진 전 환경정의연구소장 등이 주축으로, 2013년 창립한 ‘혁신자치포럼’이 외연확장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 인사 100여명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이미 하승창 정무부시장을 시작으로 박상혁 정무특보 등 안철수 진심캠프 인사들을 각각 영입한 상황이다. 고 김근태(GT) 전 상임고문 정파그룹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8월10일 만찬을 하는 등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서울시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의 전국화’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민주 관계자는 “8·27 전대 이후 차기 대권잠룡들의 행보가 더욱 빨라지면서 싱크탱크 및 캠프 조직 경쟁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이정현호 출범에 야권 ‘호남 텃밭 가꾸기’ 구슬땀 ‘군웅할거’ 시대를 맞은 호남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반세기 동안 지속된 더불어민주당 시대의 종말을 고했던 호남이 이제는 보수정당 대표 시대를 맞았다. 새누리당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8·9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호’가 출범한 것이다.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대표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호남 지역의 대표성으로 대표직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차기 대선 국면에서 호남 표 일부를 잠식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 대표도 차기 대선에서 호남 득표력 전망치에 대해 “20% 이상은 능히 할 수 있다”며 야권 갈라치기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급한 쪽은 야권이다. 특히 호남 안방을 내준 더민주의 상황은 좋지 않다. 호남에 ‘친노(친노무현) 비토론’이 여전한 데다,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호남=텃밭’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위기론은 한층 증폭됐다. 더민주 8·27 전국대의원대회와 거리를 둔 문 전 대표는 8월 정국에서 잇따라 호남을 방문했다. 문 전 대표는 8월 6∼7일 전남 목포에서 열린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모 평화콘서트와 광양 애국지사 황현 선생 생가를 방문한 데 이어 14일 최영호 남구청장 모친의 빈소를 찾았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4·13 총선 호남 참패에 대해 “지금도 아프다. (다만)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드린다면 (호남이) 다시 지지해 주리라 생각한다”며 “정권교체를 생각하면 적절한 시기에 매를 제대로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 당시 광주 92%(82만3737표), 전남 89.3%(103만 8347표), 전북 86.2%(98만322표) 등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재 호남 지지율은 20%대 수준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8월 둘째 주(8월 9∼11일 조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남에서 문 전 대표는 22%로, 안철수 전 공동대표(19%)와 3%포인트 차에 그쳤다. 이어 여권 후보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6%), 정계은퇴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9%), 박원순 서울시장(7%) 순이었다. 전체 지지도는 반기문 28%, 문재인 16%, 오세훈(전 서울시장) 5%, 손학규 4% 순이었다. 손 전 고문도 8월 7일 DJ 추도식에 참석해 “김대중 선생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라며 호남 공략에 사활을 걸었다. 광복절인 8월 15일 미국에서 귀국한 안 전 대표도 17일 경기 성남을 시작으로, 9월 초·중순까지 호남을 비롯해 영남, 충청권 등에서 강연정치를 할 예정이다.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은 최근 호남 지지도가 하락했다고 판단하고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의걸기(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한 뒤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21%(총통화 4702명 중 1004명 응답 완료)였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고하면 된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