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의료업계 스스로의 문제…징계 정보 공개하는 변호사업계 사례 참고 사안
[일요신문]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진과 환자들의 분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대결과 비슷하다. 정부와 시민사회 차원의 보조적 장치가 존재하긴 하지만 제한된 정보 속에서 피해 환자가 의료진과 마주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사전에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환자들은 의료진에 대한 그 어떤 사전 정보를 취득하기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내 몸에 칼을 대는 의사가 과거 과잉진료나 의료사고 경력이 있을 경우에도 알 방도가 전혀 없다. 한국에서는 환자가 이 같은 의료진의 과거 문제 경력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본인이 치료받거나 수술받을 의사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통로가 막혀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만약 과거 수술을 집도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사망하는 일을 겪은 의사가 내 몸에 칼을 댄다면 환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설사 해당 의사의 당시 일이 단순한 과실로 판명돼 별다른 혐의 없이 다시 수술대에 선 것이라면. 그럼에도 해당 환자는 해당 의료진의 수술 집도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환자로서 이러한 선택의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다.
소비자에겐 당연한 권리가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 업계에서 소비자라 할 수 있는 환자들은 앞서의 그 어떤 권리도 보장 받기가 쉽지 않다. 그 핵심은 정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진에 대한 정보가 부실하니 사실상 환자 입장에서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뜻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 시민사회에서 의료진 경력 조회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의사들의 과거 과잉 진료나 의료 사고(업무상 과실 포함)로 처벌된 경력 여부 등을 환자들이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최소한 이러한 의료진들의 문제 경력들을 환자들이 미리 인지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지난 2014년 10월 팬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고 신해철 씨의 의료사고 의혹 사망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후폭풍을 낳았다. 더 큰 충격은 해당 집도의가 앞서 신 씨의 재판이 결론 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환자들을 수술하다 또 다른 의혹에 휩싸였다는 사실이다. 재판 과정에서 이 의사에게 위 소매절제술을 받은 한 호주인 여성이 사망했으며 또 다른 복수의 환자들이 합병증을 이유로 해당 의사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결국 해당 집도의는 수술중단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만약 해당 집도의의 문제 이력을 환자들이 제공받을 수 있었다면 환자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강태헌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진료 선택권이라는 것이 뭔가. 환자들이 비교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근거가 없다”라며 “현재로서는 결국 확보되지 않는 선택권이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사무총장은 “미국은 20년간 의사들의 경력이 공개된다”라며 “해당 의사가 과거 관련 수술을 몇 차례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몇 차례 발생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해당 의사가 어떤 병원을 경유했는지 약력까지 제공된다. 우리보다 진료선택권과 병원선택권이 폭넓게 보장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환자들은 의료진의 선택에 앞서 해당 의료인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수술 집도 경력과 병원 경유 이력, 의료사고를 포함한 문제 경력까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 비해 건강보험제도가 허술한 미국이지만 환자들의 선택권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앞선 셈이다.
고 신해철 씨의 의료사고 집도의는 재판 도중에 또 다른 환자를 수술하면서 사망 사고를 일으켜 큰 논란이 일었다. 사진출처=공동취재단
하지만 중재원 역시 “우리는 민사 사건의 조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다루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환자들이 의료진의 과거 문제 경력에 대해선) 알기 어렵지 않나 싶다”라고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사실상 국내 환자들로서는 의료진들의 과거 문제 경력을 알 정상적인 방법이 꽉 막힌 셈이었다.
환자들이 의료진의 경력에 대해 알 수 있는 경로는 해당 의료진 스스로 병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내건 경력사항들뿐이다. 물론 이러한 경력사항들은 사실상 본인과 병원의 광고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분히 제한적이다. 속된 말로 자기의 문제 경력을 고스란히 적어내는 양심 있는(?) 의료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의료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성용배 변호사는 “현재 환자들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심평원을 통해 공개되는 병원 시설, 장비, 인력, 병상 등 정도다. 그보다 구체적인 정보는 알기 어렵다라며 “현재 해당 시스템 도입과 관련해선 논의가 존재하지만 의사와 병원 측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한 쪽으로 환자들이 몰리게 되면 다른 쪽은 심각한 경영난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성 변호사는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해당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진료 성적을 높이기 위해 병원과 의사들이 애를 쓸 것”이라며 “환자들에게도 선택권과 알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업계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의료업계가 자발적으로 해당 시스템 도입에 찬성할지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법조계의 징계정보공개시스템은 참고할 만한 사안이다. 의료업계 만큼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는 협회 소속 변호사들의 징계정보 내역을 전면 공개하고 있다.
징계정보에는 퇴직 판·검사의 전관예우를 노린 로펌 불법 취업부터 변호사광고 위반, 기타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되는 각종 형사처벌 사안 등이 다 포함된다. 변호사 선임을 고민하고 있거나 각종 법률 서비스를 선택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해당 정보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다. 결국 의료진 정보 공개는 의료업계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있는 셈이다.
앞서의 강태헌 사무총장은 “우리 의료 시스템의 모든 문제는 철저한 공급자(의료진) 위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에 방점이 있다”라며 “환자들 입장에서 병원과 의료진을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은 선택권 보장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