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17기 노동자통일선봉대가 학비노조 농성을 지지 연대하러 온 당시 모습. 사진제공=학교비정규직노조 부산지부 이필선 지부장
[일요신문] 이필선 “노사신뢰 회복을 위해 양측의 책임과 권한 있는 인사로 협의기구 구성하자.”
김석준 “…(무응답).”
이필선 “강제전보 철회하고 노사협의 진행하자.”
김석준 “9월 1일자 전보는 그대로 보내고 노사협의 진행하자.”
이필선 “고소고발 취하하고 노사신뢰관계 쌓아가자.”
김석준 “…(무응답).”
위 내용은 <현장언론 민플러스> 등이 밝힌 것을 토대로 재구성한 학교비정규직노조부산지부(학비노조) 이필선 지부장과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간에 이뤄진 대화다. 대화는 지난 17일 오전 10시 교육감실에서 진행됐다.
대화내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부산시교육청과 학비노조 간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하고 있다. 진보교육감이란 수식어를 달고 당선된 김석준 교육감에 대해 이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자조 섞인 한숨이 진보진영 교육계 내부에서 나온다.
사태가 불거진 건 부산시교육청이 470여 명에 달하는 교육실무직원에 대한 전보 인사를 단행하면서다. 학비노조는 시교육청의 이번 인사에 즉각 반발하고 투쟁에 들어갔다. 법원에는 이번 전보 인사를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도 제출했다.
투쟁이 본격화된 건 지난 7월 21일부터다. 학비노조를 비롯,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 등 부산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소속 노조 조합원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부산시교육청 본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의 농성은 유난히 맹위를 떨친 올여름 폭염 속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이들 가운데 서희자 학비노조 수석부지부장 등 2명은 단식에까지 돌입했다.
이들의 농성은 사교육청의 ‘무리한 강제 전보 추진’이 그 배경으로 읽힌다. 이들은 시교육청이 학교별로 제각각인 업무환경을 표준화하기 위한 업무매뉴얼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전보를 밀어붙인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성이 계속되자 시교육청은 지난 3일 학비노조 핵심간부 19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노조를 상대로는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특히 김석준 교육감은 지난 1일 시교육청과 학교별 공지를 통해 전보 강행 의사를 재차 강조했다.
이렇듯 사태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확산되자 부산지역 예비교사들이 나서 김석준 교육감을 향해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부산대학교 사범대, 부산교육대학교 학생 15명은 8일 성명을 통해 “시 교육청과 학비노동자 간 전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보를 철회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17일 오전 김석준 교육감과 학비노조 이필선 지부장이 대화를 가졌다. 시행일이 점점 다가오는 상황에서 학비노조 측이 단식을 중단하자 김석준 교육감이 면담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대화는 성과 없이 끝났다. 서로의 입장만을 재확인했다.
입장변화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학비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김석준 교육감은 ‘사전에 성실히 협의한다’는 단체협약 30조를 위반했다. ‘전보는 충분히 협의해서 진행하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던 약속도 스스로 파기했다. 특히 원만한 해결을 염원하며 중재에 나섰던 부산지역 시민사회의 양심의 소리를 저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진영 교육계에선 더욱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진보교육감이란 수식어를 스스로 부정한 것을 넘어 ‘불통의 대명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전교조 부산지부 임정택 정책실장은 “김석준 교육감이 그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던 진보진영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과거 보수진영 교육감보다 못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학비노조가 자신들의 동의하에 마련된 조례에 따라 이뤄진 이번 인사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더군다나 여러 상황을 고려하자면 더 이상은 전보조치를 늦출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학비노조는 오는 24일 집중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또한 앞서 학비노조가 법원에 제출했던 전보인사무효가처분신청에 대한 결과가 25일로 예정돼있어 시교육청과 학비노조 간의 갈등은 8월 넷째 주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