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을 탈당한 이재오 의원이 늘푸른당 창당으로 명예회복을 꿈꾸고 있다. 지난 3월 24일 5선 이재오 전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의로운 국가, 공평한 사회, 행복한 국민을 위한 혁신 정당.”
8월 19일 오후 5시경 기자가 방문한 늘푸른당 사무실엔 당의 3대 창당 기조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무실 크기는 약 37평.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8명의 상주 인력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이재오 전 의원은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한쪽에서 회의를 이끌고 있었다.
늘푸른당은 9월 6일 발기인대회를 거친 뒤 내년 1월 창당할 예정이다. 늘푸른당의 4대 정책목표는 분권형 개헌, 행정구역 개편, 동반성장, 남북자유왕래다. ‘친이계 좌장’ 이 전 의원이 창당을 주도하고 있다. 늘푸른당 비전 곳곳에 MB의 색채가 묻어 있는 까닭이다. 이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정치판을 짜야겠다. 정치 구조를 새롭게 바꿔야겠다는 각오로 창당했다”고 의지를 다졌다.
늘푸른당의 창당 배경엔 또 다른 사연이 숨어 있다. 이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컷오프를 당한 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아픔을 겪은 이 전 의원은 늘푸른당을 계기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늘푸른당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공천을 받고 당선된 뒤 새누리당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공천에서 배제됐고 당 안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신당을 통해 이루고 싶어 한다. 늘푸른당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새한국의 비전’, 그리고 새누리당 비박계에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늘푸른당이 새누리당 비박계를 흡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비박계가 늘푸른당을 대안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전대 이후 비박은 완전히 당권을 접수당했다. 김무성 전 대표 입장에선 가슴에 바늘이 찔린 심정일 것이다. 김 전 대표와 이 전 의원이 공통분모가 많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비박과 늘푸른당이 결합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권은 늘푸른당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우리는 아예 관심도 없다. 이 전 의원은 원외다. 국민들이 늘푸른당을 새누리당 정통 보수로 인정하겠나. 우리 당내 상황도 위태위태한 지경이다. 정권 재창출도 물 건너갈 수 있는 시점이다. 오히려 원내 세력화가 더 중요하다. 비박 의원들이 그쪽으로 나가서 합류할 만한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새누리당의 당직자 사이에서도 늘푸른당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박 정권이 검찰로 MB를 치려고 마음먹었는데 뜻대로 안 되고 있다. 검찰이 MB 측근들을 뒷조사하는 중이라서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 수사가 결국 MB를 향할 것 같으니까 이 전 의원이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늘푸른당 관계자는 “친이계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하루 이틀인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포스코 때도 그렇고 이재오 잡는다고 중앙대도 수사했는데 특별히 혐의가 나온 것이 있나. 우리가 끈 떨어지고 권력도 없는데 무슨 수로 검찰 수사에 대항하나”라고 반박했다.
늘푸른당은 ‘원외세력’이란 한계도 지니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친이계 인사들은 지난 총선에서 대부분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늘푸른당이 영입한 현역 의원도 현재 전무하다. 다른 새누리당 보좌관은 “이젠 원외 인사 신분이라 제 아무리 이재오라도 성공 못한다. 아무리 5선을 했다고 하지만 현역의원과 원외 세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늘푸른당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전 의원의 ‘처신’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보좌관은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원로로 남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았다. 민주화 운동, 여야를 넘나든 경험, 좋은 정치적 토대가 있다면 원로로서 구심점을 잡고 여당의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여당의 전통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전 의원은 이번에도 ‘나 아니면 안 돼’하는 느낌이다”고 비판했다.
늘푸른당 관계자는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럴꺼면 왜 쫓아냈나. 명예롭게 원로의 역할을 못하게 만든 게 누군가. 새누리당 친박이다. 그리고 이 전 의원이 오히려 권력을 누렸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또 의원 하나 없는데 우리보고 뭘 할 수 있겠냐고 하는데 우리도 대선후보를 낼 것이다. 지금은 원내에 아군이 없지만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