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야쿠자 야마구치회(山口組) 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 사진출처=산케이신문
# 야쿠자 부산서 검거
“한국도 충분히 긴장할 필요가 있다. (일본)경시청은 한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야쿠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자가 일본에서 만난 일본 경시청 소속 조직범죄대책과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한국은 조직범죄 대책이 엄격하고 체계화돼 있어 야쿠자가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다만 해외로 눈을 돌린 야쿠자는 대범한 경우가 많다.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 경찰에 검거된 야쿠자 사례나 국내에 입수된 첩보 등이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지난 7월 7일 부산경찰청은 3개월의 추적 끝에 부산의 한 주택가에서 일본 야쿠자를 검거했다. 내연녀의 집에 숨어 살다 덜미를 잡힌 그는 재일교포 3세 김 아무개 씨(44)로, 일본에서도 가장 ‘악질’로 알려진 구도회(工藤会)의 하부조직 중간 보스다. 김 씨는 숨진 하부조직 두목의 유족에게 “상속 재산을 내놓으라”며 공갈 협박을 하다 일본 경시청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지난해 1월 26일 부산으로 입국해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김 씨의 은신처에서는 필로폰 956g이 발견됐다. 무려 3만 18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그는 마약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 이를 돕던 일본인 공범이 숨지면서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김 씨가 소지하고 있던 권총과 실탄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총은 그동안 국내에서 종종 밀수입으로 적발돼오던 사제 권총이 아닌 러시아제 TT-33 ‘정품’이었다. 1993년 (구)소련에서 개발된 TT-33은 안전장치 없이 곧바로 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일본 야쿠자 조직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총으로 꼽힌다. 검거된 김 씨는 태연히 여객 화물선을 통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일반 기계화물 속에 숨겨 총을 밀반입했고, 중국에서 인천항을 통해 마약을 들여왔다.
지난달 검거된 재일교포3세 야쿠자 김 아무개 씨가 은신처에 보관하고 있던 물품. 대량의 필로폰과 러시아제 권총 TT-33 정품 등이 발견됐다. 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 현금서비스 사기 첩보 접수
지난 8월 15일 하루 동안 국내 금용기관에는 비상이 걸렸었다. 일본 야쿠자 현금서비스 사기 첩보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일본 편의점 1400군데의 ATM기에서 주말 새벽 2시간 만에 18억 엔(약 206억 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인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같은 방식의 사건이 8월 15일 한국에서도 발생할 것이라는 정보가 일본 현지로부터 입수된 것.
일본 경시청은 앞서의 사건을 일본 최대 야쿠자 야마구치회(山口組) 조직원들이 해외 해커와 공모해 벌인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은행을 해킹해 빼낸 고객 정보로 위조카드를 만들어 일본 현지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앞서의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위조된 카드가 해외 카드인 데다, 일당을 주고 고용한 인출책을 활용해 넓은 범위에서 소액으로, 동시에 출금했다. 이런 수법의 범행은 사전에 준비하지 않으면 방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정보를 토대로 대규모 부정출금을 우려한 한국 금융보안원은 8월 12일부터 국내 198개 금융회사에 공문을 보내 해외 카드 거래 모니터링 강화를 당부하고 비상대기체제에 돌입하기도 했고, 다행히 8월 15일에 부정출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 여전히 물밑에서 고리 대금업
하지만 앞서의 경시청 관계자는 한국에서 야쿠자가 연루된 사건은 이후에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 현지에서 강화된 단속이나 과거에 벌인 범행 등으로 활동이 어려워진 야쿠자들이 잠적‧은신하기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얘기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수법도 다양하고 치밀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 경찰 관계자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최근 정보원들에 따르면 야쿠자의 한국 진출 목적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고 귀띔했다.
사실 일본 야쿠자의 한국 진출은 과거부터 이뤄져왔다. 이들은 ‘교류’나 ‘사업’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목적은 모두 돈벌이로 귀결됐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대부업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법정 최고 이자가 연 20% 후반대, 한국은 40% 후반대로 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 현지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야쿠자 자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던 일부 일본계 대부업체를 제외하고도 국내에서 야쿠자가 운영하던 대부업체가 꽤 많았으며 그 형태도 다양했다. 이들 대부분은 서울 등 주요 도시 한복판에 버젓이 일본 지명 등을 딴 사무실을 열고 한국인 바지사장을 고용해 고리대금업을 했다.
국내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에는 야쿠자들이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한국 수사기관의 단속과 대부업 관련 정책 등으로 수백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을 드러내 놓고 운용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폭리를 취하고 불법 추심을 하는 야쿠자 대부업체들이 종종 적발됐지만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일부 야쿠자들은 물밑에서 여전히 ‘사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등록 사무실을 차리거나 간판이 없는 사업장 여러 곳을 차리는 식이다. 한국인 직원과 사장 등을 앞세워 자금을 지원한다. 대상은 도박 자금부터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어려운 서민, 중소기업 등이다. 이들은 무작위로 “무담보로 자금을 빌려 주겠다”는 팩스나 전화, 메일 등을 보내거나 전문리서치 회사인 것처럼 속여 금융 관련 정보를 파악해 접근해 돈을 빌려주는데, 이후 대출금이 연체되면 돌려막기라도 하라며 다른 사무실을 통해 대출을 해주고 2중, 3중으로 높은 이자를 받는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사업장을 숨기고 영업을 하는 데다 추심 과정에서 협박을 받아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귀띔했다.
# 한국, 떠오르는 마약시장
최근 일본 야쿠자 사이에는 한국이 새로운 마약 ‘판매처’로 인식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한국은 주로 국제마약조직이 한국인이나 다국적 마약 운반책을 고용해 마약 공급처를 세탁하는 ‘중간 경유지(transit point)’로만 이용돼 왔다. 중국, 북한산 필로폰이나 골든트라이앵글(미얀마-라오스-태국 국경지대)에서 생산된 마약을 홍콩을 거쳐 국내로 밀반입한 뒤, 재포장해 일본으로 밀수출하는 형태다.
이에 대해 앞서의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마약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국가로 인식돼 일본에선 중국 화물에 대한 검색을 까다롭게 하는 편이다. 반면 한국은 오래 전부터 마약 제조를 하지 않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적발 사례도 많지 않아 한국에서 들어오는 화물 검색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야쿠자들은 이를 노려 한국을 중간 경유지로 활용하면 보다 쉽게 들여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에는 야쿠자가 한국을 유통지가 아닌 새로운 최종 판매처로 선택하고 있다. 일본의 경기 침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전까지 엔화 가치가 하락한 게 대표적인 원인이다. 필로폰 1회 투약분 가격이 한국에서는 10만 원선으로 일본보다 높은 데다, 판매대금을 한화나 달러로 받으면 환차익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마약 소비가 점차 늘고 있는 것도 야쿠자가 한국에 눈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대량의 필로폰을 들여와 국내에 판매하려 야쿠자 일당이 검찰에 검거됐다. 이들이 들여온 필로폰은 총 10kg으로, 33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그동안 야쿠자가 국내에 들여온 마약 규모로는 사상 최대였다. 이 야쿠자 일당은 검찰 조사에서 “환율로 따지면 한국에 마약을 파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 경찰, 주기적으로 예의주시
한국 경찰과 앞서의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대부업과 마약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야쿠자가 침투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부동산과 주식투자 등 경제 분야와 유흥업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한국의 한 지방청 관계자는 “아직 한국에서 야쿠자 문제가 심각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국내에서 최근 입수되는 첩보에 야쿠자가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경찰청도 국정원과 현지 주재관 등을 통해 정보를 주기적으로 받는 등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야쿠자, 한인 조폭 영입 관심…치고 빠지는 ‘히트맨’ 써먹기 딱! 일본 야쿠자 세계에서 재일교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지난해 일본 경시청이 발표한 폭력단 구성원과 준구성원 수를 보면 야쿠자는 약 4만 6900명으로 집계됐는데, 항간에는 이 가운데 20%가 재일교포이며, 두목급, 조장(오야붕)의 10%가 한국계라는 말도 돌고 있다. 앞서의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이 소문에 대해 일부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경시청 통계상으로도 재일교포가 야쿠자의 40%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는 일본 최대 야쿠자인 야마구치회의 2인자도 재일교포였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그들은 재일교포 1세대다. 현재 3, 4세대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귀화를 했다. 여기에 재일교포들의 일본 내 위상이 상승하면서 더 이상 범죄에 가담하고 있지 않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소외된 계층이 야쿠자로 재일교포가 야쿠자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한 건 1945년 이후로 추정된다. 일본의 항복 이후 ‘소외된 계층’으로 낙인 찍힌 재일교포가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들을 채용하는 일반 기업이나 사업체는 전무해, 결국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지저분하고 체력 소모가 많은 일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야쿠자에 가담하는 재일교포가 늘었다. 이들은 야쿠자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궂은일을 도맡아했다. 갈취와 폭행부터 ‘일본인 동료 보호’라는 명목 아래 야쿠자 간 전쟁 등 잔인한 범행을 할 땐 늘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가 전면에 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내부에서 공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자금이 쌓이면서 점차 조직의 수뇌부로 진출하는 재일교포 출신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마구치회 산하의 야나가와회의 조장(오야붕) 야나가와 이치로(한국명 양원석)다. 야나가와회는 재일교포 야쿠자 단체로, 1950년대 지역 야쿠자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데 선봉대로 앞장서면서 고베 항구에만 머물러있던 야마구치회를 일본 최대 야쿠자 단체로 만들어 냈다. 1970년대 일본 경시청이 강제로 해산시킬 때까지 야나가와회는 야마구치회의 중심 세력이었고, 다른 야쿠자 단체에서도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를 경쟁적으로 영입했다. 현재 야마구치회 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도 공식적으로 재일교포 출신들의 역할과 공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도 야나가와회에 뿌리를 둔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이 야마구치회와 기타 야쿠자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경시청 통계를 보면, 일본의 ‘폭력단 대책법’에 의해 폭력단으로 지정된 22개의 야쿠자 단체 중 4개의 조직에 재일교포 출신이 현재 조장(오야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일본 야쿠자는 중심 조직 산하에 하부 조직이 다수 있는데, 이 하부 조직의 조장이다. 과거 조장이었던 경우까지 합치면 9개의 지정폭력단과 재일교포가 관련돼 있다. 특히 앞서의 일본 최대 야쿠자 야마구치회는 지난해부터 둘로 나뉘어 총과 일본도 등을 활용한 유혈충돌을 벌이고 있다. 차량 등을 이용해 기습한 뒤 상대방에게 총을 쏘도 도망치는 ‘히트맨’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유혈충동의 표면적인 이유는 정통성 갈등 등에 있지만 일본 내부에선 ‘재일교포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일부 정보원이나 경시청 관계자들은 야마구치회가 6대째로 넘어오면서, 조직의 중심 일부를 장악한 나고야계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이 기존 파벌들을 차별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야마구치회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고베계 야쿠자들이 반발했고, 응집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라고 귀띔했다. 일본 효고 현 경찰은 야마구치회 분열로 인한 유혈충돌이 이어지자, 최근 고베에 위치한 야마구치회 본부 맞은편에 특별초소를 설치해 감시를 시작했다. 현재 야마구치회와 고베 야마구치회는 일본도와 수류탄, 히트맨을 동원해 공방을 주고 받고 있다. 사진출처=산케이신문 # 한국 진출 배후는 재일교포 야쿠자? 한편 야쿠자 단체 내에서 점차 높아져 가는 위상을 이용해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은 한국 진출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인 야쿠자들보다 한국 진출에 유리했다. 앞서의 경시청 관계자는 “야쿠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기 중 하나는 ‘말’이다. 말이 어려우면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과도한 폭력만 휘두르게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라며 “이런 신념을 가진 야쿠자들이 한국에서 돈벌이를 위해서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했고, 어눌해도 한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일부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일본 야쿠자들이 대부업과 마약, 파친코 등을 통해 한국과 ‘교류’를 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 야쿠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 돈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야쿠자들은 한국 조직폭력배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지만, 역으로 일본 유학을 시키거나 하부 조직으로 가담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앞서의 경시청 관계자는 “한 야쿠자는 한국인 출신 폭력배에 대해 ‘한국 야쿠자들은 군대를 다녀와 총기 사용에 금방 익숙해진다. 더구나 일본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한국으로 재빨리 도주하면 일본 경찰은 잡지 못한다. 기습 공격을 하는 히트맨으로 쓰기 적당하다’고 말했다”며 “야쿠자를 동경하는 한국 조직폭력배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야쿠자들은 외국인을 쉽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중심 조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하부 조직에서 잔일만 하다 경찰에 의해 강제로 은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