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경찰서는 지난 7월 25일 46세 여성 A 씨가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A 씨의 큰딸(24)이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A씨가 거창군과 인접한 합천군 소재 호수 부근에서 사라졌다고 신고한 것. 이어 다음날인 26일, 큰딸은 아버지 B 씨(47)에 대한 실종신고도 했다. B 씨의 실종 시점은 약 6개월 전인 지난 2월이었다. 거창경찰서 문남용 수사지원팀장은 “큰딸이 어머니를 신고한 후, 6개월 전 사라진 아버지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시간차를 두고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당시 A 씨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지, 이제는 신고할 때도 됐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한 뒤 딸과 함께 외출했던 A 씨는 돌연 행방을 감췄다.
남편의 사체가 발견된 저수지. 사건 단서를 찾기 위해 양수기로 물을 빼고 있다.
# 남편은 저수지, 아내는 호수에서 발견
최초 신고 이틀 뒤인 7월 27일 경찰은 A 씨의 사체를 찾아냈다. A 씨는 자신이 종적을 감췄던 호수에서 발견됐다. 돌 두 개가 담겨 있는 등산용 가방을 매고 있었으며 허리춤에 보도블록이 묶여있었다.
이어 경찰은 8월 14일 A 씨 명의 농장 옆에 있는 저수지에서 B 씨의 사체를 찾았다. B 씨 역시 떠오르지 않도록 보도블록이 사체에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결박된 두 다리 사이에 보도블록이 끼워져 있었고 온몸이 그물로 감긴 점이 A 씨와는 달랐다. 또한 메고 있던 등짐에는 시멘트가 부어져 있었다. 시신은 오랫동안 방치된 듯 부패가 많이 진행돼 있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A 씨는 자살, B 씨는 타살 쪽으로 조금이나마 무게가 기울어져 있는 상황이다.
# 자살? 타살? 두 죽음의 공통점과 차이점
딸의 진술에 따르면 A 씨가 마지막으로 외출했던 당시 호수 주변에서 차 안에 딸을 남겨두고 내리면서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냈다고 알려졌다. 경찰은 이 때 A 씨가 돌을 넣어둔 가방이나 보도블록을 챙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경찰은 A 씨가 30페이지가량의 글을 쓴 노트를 확보해 조사 중이다. 유서 성격을 띤 글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문 팀장은 “주로 하소연 같은 말이 많다. 자세히는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자살을 확신할 수 있는 결정적인 대목은 없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난해 5월 농장을 구입해 직접 운영해왔다. 농장에서는 오미자를 길렀다. 농장을 구입한 경로나 구입 금액의 출처 등에 대해 경찰은 “현재 수사중인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B 씨는 지역지 기자로 알려졌지만 수년 전 일을 그만두고 농장 일을 해왔다. 그는 집에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남겨둔 채 사라져 다섯 달이 넘게 귀가하지 않았다. B 씨는 이전에도 종종 가출을 했던 적이 있지만 이처럼 긴 기간은 처음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아직 확정지을 순 없지만 B 씨의 사체가 발이 결박돼 있고 그물망에 덮인 것으로 보아 타살의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다. 부부 모두 부검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골절 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독극물 성분 여부나 자세한 사항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 가족들을 둘러싼 ‘카더라 소문’
이처럼 남편과 아내 각각 타살과 자살로 결과가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경찰은 다각도로 조사에 임하고 있다. 문 팀장은 “좁은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부부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카더라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며 “경찰에서는 이외에도 부부의 통화 내역이나 개인적 관계 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창군은 인구 6만 3000여 명의 소도시이며 거창읍에만 70%의 인구가 몰려있다. 부부는 거창읍에서 살고 있었다.
숨진 부부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사건이 알려지며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이들 집안에 재산이 많다’ 또는 ‘적다’와 같이 상반된 내용부터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또한 부부 각각의 지인들끼리는 자신과 더 가까운 쪽을 동정하며 ‘억울한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을 위해 거창읍내의 상점들을 찾았지만 실제 소문을 들어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미용실, 복권방, 빵집 등을 찾았지만 모두 “뉴스로만 봤다. 그 외에 들은 이야기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부부 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있다. 경찰은 이들 가정 내 갈등이나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할 계획”이라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만 가족 구성원 본인이 아니고서는 쉽게 알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자녀가 많았기에 부양을 위한 경제적 부담도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모를 잃게 된 6남매는 현재 다른 보호자 없이 생활하고 있다. 큰딸은 24세로 성인이지만 군복무 중이거나 대학생인 자녀도 있다. 게다가 막내는 초등학생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저수지 물 빼 증거 수색 나서 경찰은 저수지의 위치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의심 가는 부분으로 보고 수색 끝에 남편 B 씨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거창경찰서 문남용 수사지원팀장은 “마을 주민들의 상당수가 농장이나 저수지의 존재를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저수지는 거창에서 차로 20분 이상 거리의 마을에서도 산골짜기로 더 들어가야 했다. 실제 마을 주민들에게 저수지에 대해 물어보니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만 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사건 또한 자세히 알고 있는 주민이 드물었다. 농장은 산 아래의 마을에서부터 2.3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비포장도로에 경사가 심해 접근이 어려웠다. 내비게이션으로 길안내조차 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현장 확인을 위해 8월 17일 저수지를 찾았다. 산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오미자 밭을 운영하던 A 씨의 농장을 찾을 수 있었다. 밭은 작물의 지지대 등이 잘 설치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는 상태였다. 농장 바로 옆에 저수지에서는 B 씨의 사체가 발견되고 3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부 2명이 양수기를 돌리며 물을 퍼내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는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서도 “경찰에서 좀 더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완전히 바닥이 드러나도록 물을 퍼내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팀장도 “저수지 바닥에서 흉기나 사건 관련 단서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 물을 퍼내고 있다. 하지만 저수지가 숲이 우거진 곳에 있어 자연적으로 흘러내려오는 물과 땅속에서 솟는 물 때문에 양수기로는 한계가 있다.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