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45인승 관광버스가 교통정체로 서행 중이던 승용차 5대를 들이받아 41명의 사상자를 냈다.연합뉴스
관광버스 운전기사 방 아무개 씨(57)는 세 차례에 걸친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시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민들은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방 씨가 반성하기는커녕 거짓 진술을 한다면서 맹비난을 쏟아냈다. 여기에 광복절 특별사면 운전면허 행정처분자 명단에 방 씨가 포함됐을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국민들은 격분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방 씨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관할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방 씨를 행정처분자 명단에서 제외시켰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방 씨는 현재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가 채 가라앉기도 전인 바로 다음날, 전남 여수시에서 비슷한 교통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여수시 만흥동에 위치한 마래터널에서 25톤 시멘트 운반 트레일러 운전자 유 아무개 씨(53)가 10중 추돌사고를 낸 것이다. 이 사고로 앞서 달리던 차량의 뒷좌석에 탄 김 아무개 씨(61·여)가 숨지고, 김 씨의 딸 조 아무개 씨(41)가 의식불명에 빠졌으며, 다른 차량 운전자 및 승객 등 5명도 크게 다쳤다.
유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국민들은 분개했다. 현장에서 사망한 김 씨가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고된 농사를 짓다가 모처럼 고향집을 찾은 딸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던 길에 변을 당했다는 사연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부상자 대다수가 여름휴가 피서객들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유 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형 차량 운전자의 졸음운전에 의한 참변이 이어지자 국토교통부는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졸음운전 예방을 위해 대형 관광버스, 트레일러 등 사업용 차량 운전자가 4시간 이상 연속 운전 후 최소 30분간 의무적으로 쉬게 했다. 또 앞서가는 차량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제동이 걸리는 자동비상제동장치(AEBS)도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하지만 대형 차량 운전자들은 서해안고속도로 졸음쉼터에 대형차 주차면수가 부족해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시 말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9.5톤 트럭 운전자 맹 아무개 씨(32)는 “화물운송업자들에게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야간운전이 아니고선 휴게소에서 잘 쉬지 않는다”며 “졸릴 때마다 쉬게 되는 곳이 졸음쉼터인데 다른 고속도로에는 대형차 주차공간이 있는 반면 서해안고속도로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추풍령졸음쉼터 안내표지. 사진출처=한국도로공사
<비즈한국>이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확인해보니 서해안고속도로 총 구간 341㎞에 있는 21개 졸음쉼터 가운데 서서울졸음쉼터(경기도 안산시 소재)에만 대형차 주차면(서울방면 15개, 목포방면 5개)이 확보돼 있었다. 목포 죽림JC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했을 때 3시간 20분 후에야 졸음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반대로 금천IC에서 출발할 경우 10여 분 후 졸음쉼터에서 쉬고, 이후 3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만 한다.
앞서의 맹 씨는 “운전을 하다가 졸리면 쉬는 공간이 졸음쉼터다. 서서울졸음쉼터에만 대형차 주차공간이 있다는 건 도착 직전 혹은 출발 직후에 쉬라는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모르겠다”며 “졸음운전은 언제 갑자기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고속도로 휴게소 중간 중간에 위치한 졸음쉼터에 화물차 주차공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대형 차량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화물차휴게소가 확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화물차휴게소는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화물차 운전자의 피로를 해소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수면시설, 샤워시설, 세탁시설 등을 운영하는 편의시설을 말한다.
한국도로공사에 확인해보니 화물차휴게소가 설치된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10개소), 익산포항고속도로(2개소), 중부내륙고속도로(2개소), 호남고속도로(2개소),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1개소)가 전부였다. 최근 봉평터널 5중 추돌 사고가 발생한 영동고속도로를 비롯해 주요고속도로인 서해안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에는 화물차휴게소가 전무했다.
특히 봉평터널 5중 추돌 사고를 낸 운전자 방 씨가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날 관광버스 안에서 쪽잠을 잤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면시설이 구비된 화물차휴게소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화물차 운전자는 “수면시설이 구비된 화물차휴게소가 부족하다보니 차 안에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피곤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며 “우리가 졸음운전을 하게 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도 필요하겠지만,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한국도로공사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서해안고속도로 졸음쉼터의 부족한 대형차 주차면수에 대해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졸음쉼터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부지가 확보되더라도 승용차 이용률이 높다보니 승용차 주차면수 확보가 우선”이라며 “졸음쉼터에 대형차 주차면이 없더라도 선착순 이용이니 주차공간이 비어 있다면 대형차 운전자도 이용하길 바란다. 졸음쉼터 이용이 어려울 경우에는 휴게소를 이용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전국 주요고속도로의 화물차휴게소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올해 전국 4개 휴게소에 화물차휴게소가 추가 설치될 예정”이라며 “물동량이 많은 휴게소부터 설치하고 있고, 더 많은 화물차휴게소 확보를 위한 검토 작업도 하고 있다. 졸음운전 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용에 불편이 따르더라도 당분간은 양해를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유시혁 비즈한국 기자 evernuri@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