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이의동의 한 주택가. 바바리맨 A 씨는 이곳 조경수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13일 오후 8시 30분께, 수원남부경찰서는 당황스러운 사건과 맞닥뜨렸다. 이날 경찰은 “웬 남자가 주택가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도주했다”는 신고를 받고 곧바로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는 범인으로 보이는 A 씨(40·회사원)가 쓰러져 있었고, 그의 위에 올라탄 채 제압하고 있던 시민 김 아무개 씨(32)가 있었다. 또 다른 시민은 A 씨의 다리를 붙들고 있는 상태였다. 쓰러져 있는 A 씨를 일으켜 수갑을 채우던 중, 경찰은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A 씨가 호흡곤란을 일으켜 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경찰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A 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끝내 숨졌다. 졸지에 경찰은 죽은 A 씨가 아닌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펼쳐나가게 됐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경기도 수원시 이의동의 한 주택가. 이날 저녁 무렵부터 A 씨는 눈여겨 본 한 4층짜리 빌라 뒤에서 2층 창문을 향해 음란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 빌라 뒤편은 조경수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고, 언덕처럼 경사가 있어 몸을 숨기기 쉽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참 행위에 몰두하고 있던 A 씨는 빌라 2층에 살던 주민이 귀가하던 중 자신을 목격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주민은 곧바로 “밖에서 누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며 남편인 김 씨를 불렀다. 그때서야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하던 A 씨를 확인한 김 씨는 도망치는 A 씨를 쏜살같이 쫓았다.
추격전은 인근 대로에서 약 100m가량 이어졌지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A 씨가 전봇대에 부딪쳐 쓰러지면서 싱겁게 마무리됐다. 김 씨는 쓰러진 A 씨의 등 위로 올라탔고, 도중에 김 씨의 도움 요청을 받고 추격전에 가세했던 한 행인도 A 씨의 다리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이들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A 씨를 옴짝달싹하지 못 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경찰이 A 씨를 시민들로부터 인계받았을 때, A 씨는 이미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검게 변해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였다.
도주하던 A 씨는 길 가에 세워진 전봇대에 몸을 부딪쳐 쓰러진 후 시민들에게 제압됐지만 곧 사망했다.
만일 시민들의 제압으로 인해 A 씨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시민들은 어떻게 될까? 먼저 시민들이 A 씨를 검거한 행위는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 정당방위는 자신이나 타인의 이익에 대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한 모든 행위를 뜻한다. 이번 A 씨 사건의 경우, 시민 김 씨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A 씨가 음란행위를 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집 안에는 부인이 있었다. 김 씨로서는 A 씨의 행위로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고, 부인의 신변에 대한 두려움도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현행범을 체포하는 것은 경찰만의 권리가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따르면 현행범은 영장 없이 누구나 체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특히 범인이 도망갈 가능성이 있는 경우, 범죄가 명백할 경우에 현행 체포가 가능하다. 이런 점으로 판단한다면 이번 A 씨 사망 사건에서 시민들의 현행범 체포는 상당한 당위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부검 결과 시민들의 제압 과정에서 A 씨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인과관계가 드러날 경우다. 이 경우 시민들의 제압은 ‘과잉방위’ 또는 ‘과실치사’에 해당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4년에는 서울역에서 여성 역무원을 성추행하던 정신질환자를 제압하다가 숨지게 한 철도공안원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철도공안원 김 아무개 씨(당시 37)는 정신질환자 문 아무개 씨(당시 29)를 조사하던 중, 문 씨가 팔다리를 휘두르며 심하게 저항하자 10~15분간 문 씨의 팔과 다리를 붙잡아 바닥에 짓눌렀다. 이 과정에서 문 씨는 그대로 숨졌고, 부검 결과 호흡곤란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점이 밝혀졌다. 경찰은 정당한 법 집행이나 정당방위를 넘어선 과잉진압 행위를 인정하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를 제압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행위는 A 씨에 대항한 ‘폭행’이 아니라 제압에만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민 김 씨가 A 씨의 등을 눌러 제압했고, 이후 가담한 또 다른 시민이 A 씨의 다리를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인정된다. 따라서 시민들의 제압 행위는 정당방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제압 과정에서 A 씨가 이들 시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직접적인 저항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A 씨에 대한 제압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이상의 물리적 행위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
담당 경찰은 현행범 체포에 공헌한 시민들이 다소 황당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점 때문에 향후 수사 방향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피했다. 다만 A 씨의 부검결과를 통한 사망 원인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이 용기를 내서 검거에 협력한 사건이지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수사 확대 가능성은 열려있는 상태”라면서도 “제압 때문이 아니라 A 씨가 도주 중 전봇대에 부딪쳐 쓰러지면서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어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