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손학규, 정운찬, 정동영 | ||
범여권 주자 중 최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사람은 단연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국민들의 지지율면에서는 아직 손학규 전 경기지사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에도 뒤지지만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 통합세력들이 제3후보 1순위로 정 전 총장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 역시 대권 출마 여부를 놓고 명확한 발언은 자제하고 있지만 최근 일련의 행보와 측근들의 관측을 종합해 볼 때 그가 대권 출마쪽으로 이미 마음을 굳혔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이 범여권 대권경쟁에 참여한다 해도 앞으로의 행보가 결코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이 시각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학자 출신인 정 전 총장은 정치적 기반이 전무하며 비정치인으로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현실정치에 적응할 수 있는 강단과 정치적 카리스마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미 취약점으로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적극적인 최근 행보와 발언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지지율이 꿈쩍도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런 사태가 계속될 경우 뜨겁던 범여권의 러브콜도 차갑게 변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 전 총장이 대권 행보를 본격화할 경우 교육 3불정책과 관련한 그의 입장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오래전부터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적용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고 있다. 이는 3불정책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상반되는 것으로 한나라당 주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여권 주자들의 입장과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3불정책 폐지는 보수 기득권층의 논리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만큼 정 전 총장의 교육정책 기조가 중도개혁 세력을 대변하는 범여권 대권주자로 적합할지 여부를 놓고 뜨거운 정체성 논란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 김근태(왼쪽), 천정배 | ||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촉매제로 분위기 반전을 모색했던 범여권 차기주자 진영이 대권 이해관계가 얽힌 손 전 지사와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면서 그의 고뇌에 찬 결단이 점점 빚을 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손 전 지사와 뜻을 함께 할 것으로 예상됐던 일부 측근들마저 내년 총선을 의식해 당 잔류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 손 전 지사의 정치적 후원 역할을 하고 있는 ‘전진코리아’가 추진하고 있는 중도성향 신당 작업도 이렇다할 성과를 못 내고 있고 지지모임인 ‘동아시아미래재단’과 ‘평화경제포럼’ 등의 활동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아직도 범여권 주자들 중에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정치권 주변에선 벌써부터 손 전 지사를 빗대 ‘제2의 이인제’ ‘낙동강 오리알’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그의 선택이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것이란 섣부른 관측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열린우리당 최대 주주인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과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 등 구여권 주자들의 대권기상도 역시 먹구름이 잔뜩 낀 형국이다. 특히 김 전 의장과 천 의원은 한미 FTA 반대에 대권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단식농성 카드로 FTA 반대에 올인하고 있다. 김 전 의장은 “나를 밟고 가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천 의원은 “FTA 협상이 중단될 경우 대권출마를 포기하겠다”는 극약처방전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단식농성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국민적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한나라당은 ‘정치 쇼’로 평가 절하하고 있고 범여권 일부 진영에서도 현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한 정치 지도자들이 단식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판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자신의 대망론은 물론 범여권 대선지형을 또 한 차례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 전 의장은 28일 개성공단을 방문해 북측 관계자들에게 ‘8월 말 이전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등 자신의 전문분야인 대북정책 해결사 역할로 대권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정 전 의장이 조만간 탈당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 전 의장 역시 FTA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FTA 협상안 체결을 명분으로 거사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측근 의원들은 정 전 의장이 빠르면 민주당 전대(4월 3일) 직후 늦어도 4·25 재보선을 전후해 탈당을 결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지지부진한 범여권 통합을 위해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의 동반 탈당을 정식으로 요구할 방침이어서 두 사람이 동반 탈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친노그룹과 당 사수파의 견제를 받고 있는 정 전 의장 입장에서는 결국 탈당을 선택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그의 탈당이 대망론에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정 전 의장의 대권 입지에 비춰볼 때 그의 탈당 카드는 최선이 아닌 차선책이 분명하고 탈당 후 독자노선을 모색한다 해도 범여권 제 세력들의 복잡한 대권방정식과 얽힐 수밖에 없어 이래저래 험한 대권행보를 걸어야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