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0cc 엔진을 장착한 카마로SS가 5098만 원에 나오자 예약판매가 급증했다.
세제 개편, 배기가스 조작 사태, 김영란법 등의 여파로 수입차 시장 분위기가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강력한 펀치 한 방이 대기하고 있다. 쉐보레 카마로SS다. 9월 출시를 앞두고 있는 이 차는 6월 부산모터쇼에서 공개된 이후 예약판매만 700대가 넘었다고 지난 8월 16일 한국GM이 밝혔다. 구형 모델인 카마로RS가 지난해 통틀어 고작 48대 팔린 것에 비하면 정말 ‘히트다 히트’다.
비결은 가격에 있다. 카마로SS는 6200cc급 자연흡기 엔진을 달고 최대출력 453마력, 최대토크 62.9㎏·m의 파워를 뽐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96㎞/h)까지 도달 시간은 4.0초로 스포츠카 수준이며 안정감 있게 차체를 받쳐주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브레보 브레이크 시스템 등을 장착했다. 일반 도로는 물론 서킷까지 전방위 주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차의 가격이 5098만 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자동차 마니아의 상식으로는 이 정도면 적어도 1억 원을 훌쩍 넘어야 마땅하다.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인 EQ900(이큐나인헌드레드)에서도 가장 비싼 사양인 5.0 프레스티지가 유일하게 5000cc급 엔진을 장착했는데, 가격은 1억 1700만 원이다. 물론 EQ900가 배기량 때문에 비싼 것만은 아니므로 절대 비교는 어렵다.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세그먼트인 중형급 세단의 주축을 이루는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는 6000만 원대다.
쉐보레 카마로SS를 자동차 포털사이트 등에서 ‘미친 가격’으로 통하는 이 가격에 들여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올해 초 취임한 제임스 김 대표의 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연초부터 신차급인 경차 스파크에 100만 원 이상 가격 할인을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신형 말리부 판매를 전격 개시했다.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한국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한국에서 제작하지 않는 카마로SS를 그 가격에 미국 본사에서 당겨올 수 있으려면 그룹 내에서 영향력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만혼 추세도 이 차의 판매에 한몫하고 있다. 문이 두 개밖에 없는 퍼포먼스 카이다 보니 나이 어린 자녀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카시트를 채우려면 뒷좌석으로 곡예하듯 들어가야 하고, 아기를 태우고 내리는 난이도는 더 높다. 트윈 도어인 이 차는 구매력을 갖추면서도 홀가분한 싱글들이 좋아할 만한 차다.
온라인에서는 ‘차는 싸지만 유지비가 비싸다’는 의견이 많다. 고배기량인 데다 성능을 만끽하기 위해 밟아대면 쏘나타의 3배(배기량만 봤을 때) 정도 기름값이 들 것이다. 국내 자동차 보유세는 배기량 기준이므로 배기량 3ℓ 그랜저의 2배 정도일 것이다. ‘수입차(보험사 기준)’이고 스포츠카이다 보니 보험료가 비쌀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필자가 모바일로 국내 A 손해보험사에서 ‘가격 알아보기’를 해 본 결과 110만 원 이하였다(만 41세, 대물 5억 원, 본인부담 20% 자차 기준). 나이가 만 35세 미만이고 운전경력이 길지 않다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6.2ℓ 고출력 자동차가 ‘드림(dream)’이 아니고 의지만 있으면 지를 수 있는 ‘디맨드(demand)’ 수준이라는 점이다.
데일리스포츠카로 제격인 아반떼스포츠는 가성비가 높다는 평이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차는 현대차 아반떼스포츠다. 4월 출시 후 4개월 만에 1800대가 팔리면서 ‘돌풍’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4월 107대, 5월 487대, 6월 621대, 7월 585대로, ‘어림잡아 1800대’가 아니라 정확히 1800대다. 눈여겨볼 것은 전체 아반떼 판매량에서 아반떼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4월 1.4%, 5월 5.2%, 6월 4.7%, 7월 9.3%로 거의 10%에 달한다.
아반떼스포츠의 의미는 엔트리급(차를 처음 살 때 주로 선택하는 세그먼트)에서 고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마로SS가 과장 이상급의 스포츠카라면 아반떼스포츠는 대리 이하급 스포츠카라 할 수 있다. 물론 카마로SS를 부담스러워하는 부장이 아반떼스포츠를 탈 수도 있다. 아무래도 출퇴근용 ‘데일리 스포츠카’로는 아반떼스포츠가 제격이다. 패밀리카로도 쓸 수 있고 혼자 탈 땐 스포츠카 기분을 낼 수 있는 것이 세단형 스포츠 버전의 장점이다.
아반떼스포츠는 1.6ℓ 터보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장착해 204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뿜는다. 차가 가벼워 체감 가속력은 기대 이상이다. 수동변속기 버전은 2000만 원, 자동변속기 최소가는 2198만 원으로 일반형 아반떼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역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는 것이 최신 트렌드임을 확인할 수 있다.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N브랜드 총괄부사장은 신형 i30에 2.0ℓ 트윈터보를 장착한 i30N을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카마로SS는 부담스럽고 아반떼스포츠는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내년을 기대해볼 만하다. 현대차가 발표한 고성능 차량 브랜드 ‘N’ 버전 제품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유럽에서 고성능 N 브랜드의 첫 번째 신차로 개발 중인 i30N에 사용할 이름인 ‘RN30’의 상표등록을 마쳤다.
일단 올 9월 현대차는 신형 3세대 i30의 출시를 예고하고 티저 사진을 차례로 노출하면서 관심몰이를 하고 있다. 상위 버전인 i30N에는 2.0ℓ 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될 것으로 알려졌다. 트윈터보는 현대차 역사상 최초다. 기존 쏘나타에 장착된 2.0ℓ 싱글터보 엔진의 최고출력은 245마력인데 2.0ℓ 트윈터보는 적어도 300마력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2.0ℓ 트윈터보’라는 구성은 BMW 차량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N 브랜드를 주도한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이 BMW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유사한 부분이 있다. 이 역시 ‘히딩크 효과’로 분석할 수 있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트윈 터보라는 과감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외국인이고 BMW에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그간 콘셉트카로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은 뒤 정작 양산 차는 아저씨 취향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카마로SS와 아반떼스포츠의 사례에서 보듯 i30N의 성패는 가격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