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앤 폭스는 지난 5월 36살 정 아무개 씨 일행이 전 A 항공 부회장 조 아무개 씨와 아내 이 아무개 씨가 미국 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과 부동산에 대한 조사를 의뢰해와 조 씨 부부와 친인척 등이 보유하고 있는 2천4백만 달러, 우리 돈 266억 원 상당의 공개된 재산 내역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장 씨 일행은 자산 조사를 의뢰할 당시 제3자 명의로 허위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제일교포 재력가가 경영하고 있는 한 일본 기업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라이언 앤 폭스의 취재 결과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실 산하 역외탈세정보담당관실 공무원들로 확인됐다.
장 씨 일행이 제3자 명의로 허위 작성한 정보 자문 계약서 원본(왼쪽)과 장 씨가 소지했던 공무원용 세종청사 출입증(오른쪽). 제공=라이언 앤 폭스
이들은 또 국세신고를 위한 매입․매출용 세금계산서 발행을 거부하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자회사 간 거래 가격을 임의로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이전가격 조작, 즉 ‘트랜스퍼 프라이싱’을 전문으로 하는 한 다국적 기업의 싱가포르 지사 임원 명함을 사용했다고 라이언 앤 폭스는 밝혔다.
이들이 조 씨 부부의 재산 내역과 함께 조사를 의뢰한 Star Capricorn Ltd는 대표적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카리브해의 영연방 국가 바하마에 지난 2007년 5월 설립된 무역회사로, 5만 달러를 자본금으로 주식 5만 주를 발행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지만 실소유주와 탈세 관련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밖에도 미국의 다국적 금융기관인 J. P. 모건 체이스가 보유하고 있는 B 그룹 조 아무개 회장 계좌의 잔액과 거래내역 등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면서, 이 금융기관의 공식 문서양식으로 해당 내용을 출력하거나 조회된 컴퓨터 프로그램 화면을 촬영해 증거로 제시해줄 것을 강권하는 등 사실상 미국 국내법에 접촉되는 사항을 요구해와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고 라이언 앤 폭스는 밝혔다.
이들이 제시한 조 회장의 계좌는 지난 2001년 J. P. 모건 체이스에 합병된 모건 개런티 트러스트 컴퍼니 오브 뉴욕(Morgan Guaranty Trust Company of New York)에서 처음 개설됐고 현재는 영국령 채널 아일랜드(Channel Islands)의 부속 도서인 저지 섬에서 운용되고 있다.
라이언 앤 폭스는 “국세청이 공식 회계상 드러나지 않는 비자금을 사용해 홍콩의 모 기관과 비공식 계약을 체결하고 재벌 일가의 해외 예금 내역을 조사해오다가 최근 역외 탈세의 규모가 증가하자 미국으로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라고 장 씨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통상 ‘역탈’로 부르는 역외탈세정보 부서 직원들은 직원 조회 시스템에서도 삭제돼 있는 특수 신분이다. 공용여권이 아닌 일반여권을 사용해 해외에서 사실상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 신원이 노출될 경우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이 같은 활동은 명분상 탈세를 위해 해외로 빼돌려진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재산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지만 어떤 근거로 조사 대상자를 선정했는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어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장 씨 일행이 제3자의 명의를 도용해 자문 계약서에 서명한 행위는 형법 231조 ‘사문서 위․변조’에 해당해 5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서명된 이름이 실존 인물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국세기본법 81조도 세무공무원의 조사권 남용을 금지하고 있고, 국세청 조사사무처리규정 23조는 조사 시작 시 준수사항으로 납세자 또는 관련자에게 신분증이나 조사원증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