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어난 경기 시흥시 아파트 전경.
[일요신문] 20대 여성의 목이 잘려 머리와 몸이 분리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잔혹함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범인의 관계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이는 다름 아닌 피해자의 가족인 어머니와 오빠였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9일 이른 아침. 피해자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소란에 방에서 나갔다. 기르던 푸들 애완견을 죽이려는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냐며 묻자 딸이 무서운 눈빛으로 화를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소란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던 아버지는 이날 오후 3시께 아들 A 씨(26)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A 씨는 자신이 여동생을 죽였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놨다. 비상식적인 통화 내용에 아버지는 이를 믿기 힘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에게 자신의 집에 들러 확인해볼 것을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지인은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현관문이 열려있는 집의 화장실에서 피해자의 시신이 목이 잘린 채로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지인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아버지는 A 씨와 피해자의 어머니 B 씨(여·54)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이들은 시흥경찰서 주변을 맴돌다 오후 6시 30분께 인근 도로에서 검거됐다.
A 씨와 B 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범행을 진술했다. 살해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나선 이는 피해자의 어머니 B 씨였다. A 씨와 B 씨, 피해자는 사건이 벌어진 날 아버지의 출근 이후 심하게 짖던 애완견을 야구방망이와 흉기로 잔혹하게 죽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까지 살해됐다.
딸을 살해하는 대목의 진술이 매우 충격적이다. 애완견을 죽인 뒤 딸이 손을 떨며 B 씨의 목을 조르는 이상행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B 씨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딸을 넘어뜨렸고 목을 졸랐다. 아들 A 씨에게는 흉기를 가져오라했고 건네받은 부엌칼로 피해자의 목을 수차례 찔렀다. 심지어 B 씨는 장도리로 피해자를 내리쳤다. 이에 더해 목을 신체에서 분리시키기까지 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악귀’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입 밖에 냈다. 자신들이 죽인 애완견과 피해자 모두 악귀에 씌었기 때문에 죽였다는 것.
A 씨와 B 씨는 애완견이 악귀에 씌어 심하게 짖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강아지를 죽이자 피해자가 갑자기 손을 떨며 B 씨를 공격했고 B 씨는 이를 악귀가 딸에게 옮겨 붙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들은 피해자의 목을 분리시킨 것 역시 “더 이상 악귀가 옮겨 붙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랬다”며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마치 영화 <곡성>을 떠올리게 하는 엽기적이고 섬뜩한 범행과 진술에 사건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또한 A 씨와 B 씨가 자신들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기에 살해 동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5일 전부터 아버지를 제외한 3명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8월 18일부터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이에 정용범 시흥경찰서 형사과장은 “잠을 자지 않은 것은 맞지만 5일간 아무것도 안 먹은 것은 아니다”라며 “밥만 먹지 않았을 뿐 과일 등 다른 음식은 간간이 섭취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사건이 특정 종교와 연관이 있다는 예측과 B 씨가 결혼 전 신병을 앓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경찰은 “사건은 종교와 관련이 없고 신병에 대해서도 조사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가족 간의 큰 불화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 과장은 “피해자 아버지가 가족들의 관계도 좋았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서는 “따로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충격이 있는 상태는 아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범행을 저지른 A 씨와 B 씨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감정유치 허가장을 발부받았다. A 씨는 충남 공주 치료감호소, B 씨는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각각 입원해 한 달간 정신분열증, 허위 증세 여부 등을 확인받을 예정이다. 정 과장은 “그들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상한 증세를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의 진술이 너무 비상식적이라 감정을 신청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일종의 정신병을 일으키는 ‘공유성 편집장애’로 벌어진 일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은 “직접 상담이나 진단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며 “정신 망상이 2인 이상의 사람들에게 집단적으로 나타나면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치료가 힘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사람에 따라 일시적으로 병이 올 수 있는 성격이 있다. 경계형 성격장애나 조울증이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이러한 경우에는 평범하게 살다가도 어느 시점에 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의 경감을 위해 정신병으로 위장하는 경우일 수도 있지만 뉴스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scourge@ilyo.co.kr
모자, 1개월간 감정유치 진행 피해자의 오빠 A 씨와 어머니 B 씨가 받은 감정유치는 피의자가 정신이나 신체에 대해 전문적인 판별이 필요할 때 병원 등의 장소로 보내는 처분이다. 기간은 법원이 정하며 이번 사건에서는 1개월간 감정유치가 진행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기간이 연장되거나 단축될 수 있다. 지난 5월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에도 범인 김 아무개 씨(34)가 감정유치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한 달 동안의 감정 끝에 “정신질환에 기인해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범행”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 정용범 시흥경찰서 형사과장은 A 씨와 B 씨가 공주와 서울로 각각 멀리 떨어진 의료기관에 맡겨진 것을 두고 “과거엔 일괄적으로 공주에 보냈지만 그곳이 여성이 지내기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B 씨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보내게 됐다. 두 사람이 떨어진 데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상] |
사건 일어난 아파트에서는… 사건 이후 약 일주일이 흐른 지난 8월 25일, 피해자가 살던 경기도 시흥의 아파트 단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웠다. 평일 낮 시간인 만큼 단지 내 주차된 차와 주변 유동 인구가 적었다. 주민이나 단지 내 상가의 상인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기자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한 주민은 “최근 범죄가 일어났을 때 이웃들이 실언을 했다가 많은 비난을 받지 않았나. 사건에 대해 아는 얘기도 없지만 말하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오가니 주민들이 점점 더 그러는 것 같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은 이웃과 많은 왕래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리사무실 관계자는 “그 분들의 개인정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오래 사시던 분들이다. 그렇지만 많은 이웃들을 알고 지낸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민 분위기에 대해서는 “처음엔 경찰이 출동하고 사건이 알려질 때 다들 놀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외부인이 침입해서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야외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많은 동요가 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