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수업을 받고 있는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있는 모란봉제1중학교 학생들. 현재 북한에는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탈북 대학생 A 씨(22)는 지난 2010년 어머니와 함께 중국과 동남아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왔다. A 씨의 아버지는 북한의 한 군사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함께 넘어온 어머니는 장마당에서 접경지역을 통해 들여온 공산품을 내다 팔았다. A 씨는 북한에서도 넉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밥 세끼 걱정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다.
A 씨가 한국으로 오게 된 배경에는 어머니의 결단이 결정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에서도 공부를 잘했고 특히 컴퓨터에 재능을 보인 A 씨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길 기대했다. 무엇보다 능력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출신 성분이 맘에 걸렸다. 결국 한국행을 결정했다. 후에 아버지도 넘어오기로 약속했지만 이는 잘 되지 않았다.
A 씨는 “매번 주변 친구들이 ‘정말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다 굶어죽느냐. 그래서 너도 넘어 왔느냐’고만 묻더라”라며 “하지만 난 꿈을 쫓아 왔다. 교육에 열정을 쏟는 부모님의 생각이 컸다.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북한에서 먹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최소한 요즘 넘어오는 또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이유로 넘어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씨와 같은 사례는 통일부의 정례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지난 21일 발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과거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생계형 탈북’은 줄고, 자유에 대한 동경 및 삶의 질 추구를 위해 넘어온 ‘이민형 탈북’의 비율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들의 현지 소득 수준도 ‘넉넉하다’거나 ‘보통이다’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
지난 6월경 발표된 정부의 북한이탈주민정책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탈북자들의 국내 생계급여 수급율이 63.5%에서 지난해 25.3%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같은 기간 47.9%에서 59.4%로 10%p 이상 증가했다. 과거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생계형 탈북자들의 비율보단 이미 북한 내에서 어느 정도 시장경제의 경험을 득한 중층 이상의 탈북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내 적응도 과거의 탈북자들에 비해 수월한 것으로 나타난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이민형 탈북자들의 가장 큰 탈북 이유에는 자녀들의 교육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에 귀순한 태영호 공사와 같은 핵심계층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문제가 해결된 요즘 북한 주민들 역시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 배경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일연구원의 박영자 연구위원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형성된 시장과 급격한 출산율 하락에 주목했다. 박 연구위원은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의 공교육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점차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내 중층 이상의 생활계층이 서서히 성립됐고 자연스레 2000년대 후반 이후 사교육 시장이 형성됐다”라며 “최소한 밥 먹고사는 걱정만 해결된 사람들이라면 자녀들에게 두 개 이상의 과외를 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심지어 시골에 내려가도 돈 대신 쌀이나 음식을 내면서까지 자녀들에게 과외를 시키는 부모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연구위원은 “이렇게 북한 내 교육열이 뜨거워진 이유는 (신분상승을 위한) 저발전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 출산율이 급감한 것이 결정적”이라며 “요즘 북한 가족은 외동 아니면 둘이다. 하나만 잘 공부시켜 성공시키자는 부모들의 의식이 크게 급증했다”라고 덧붙였다.
<일요신문>과 통화한 한 대북소식통 역시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성장한 북한의 사교육 시장은 종류 면에서도 남한만큼이나 다채롭다”라며 “어학을 포함한 일반 과외뿐만 아니라 피아노,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는 물론 컴퓨터와 체육까지 다 있다. 최근에는 장마당을 통해 보급되는 해외 콘텐츠의 영향으로 외국에 대한 동경이 커진 터라 영어를 포함한 외국인 과외선생의 품귀현상까지 일고 있다”라고 북한 현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북한 내에선 좋은 상급학교의 진학과 그것을 통한 신분상승을 위해 사교육 투자가 활발한 점도 있지만, 북한 사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군대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상당히 열악한 북한의 군대에서 비교적 쉽고 편한 보직을 받기 위해선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녀들에게 음악이나 체육과 같은 과외를 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심지어 뜨거워진 북한의 교육열에서 비롯된 특이한 사례까지 목격되고 있다. 북한에서 나름 살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도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해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자녀들만 남한으로 보내는 북한 부모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유학형 탈북’이 그것이다. 이런 경우는 북한 내에서 남한으로 내려 보낸 자녀들을 ‘탈북’이 아닌 ‘행방불명’으로 위조한다. 또한 북-중 접경지역의 브로커를 통해 정기적으로 남한 내 자녀들에게 교육비를 송금하게 된다.
앞서의 박영자 연구위원은 “제가 접한 사례는 북한 국가기관인 인민보안성(한국의 경찰에 해당) 당원의 아버지와 장마당 상인의 어머니를 둔 학생이었다”라며 “이들 부모는 북한 내에서 제법 살 만하지만 자녀에게 새로운 세상과 기회를 보여주기 위해 자식을 남으로 보낸 것”라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