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든 흉가 지도.
간접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방송을 시청한 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자발적으로 흉가를 체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공포체험을 주목적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에서 여러 명이 모여 흉가를 찾기도 한다. 흉가체험을 주제로 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2만 30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하고 있다.
이들은 얼마 전 여름휴가를 맞이해 1박2일 동안 포항의 한 흉가를 방문해 휴양을 즐기고 공포체험을 하자는 행사를 계획하기도 했다. 또 오는 주말에도 경기 지역의 폐병원으로 흉가체험을 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모집 글에는 영능력자나 사이비종교 활동자 등은 강제 귀가 조치될 수 있고, 짝을 이뤄 체험할 경우 스킨십을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또 이들은 위치나 주소를 체험 이전에는 공유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수년 동안 국내외에서 유명한 폐가를 정리해왔고 지금까지도 제보를 받고 있다. 대다수 폐건물은 이름만 들어도 공포심과 긴장감이 생기는 병원, 장례식장, 어린이집, 공장 등이 주를 이뤘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전국 방방곡곡의 폐가를 정리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폐가를 탐색해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등 흉가체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국내 공포체험 장소 1위로 꼽히는 경기지역 폐정신병원 출입문.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기자는 흉가를 직접 찾았다. 방문한 곳은 국내 공포체험 장소 1위로 손꼽히고 있는, 경기 지역의 한 폐정신병원이었다. 건물은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또 문 옆에는 ‘사유지이므로 허락 없이 들어오거나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행위가 적발되면 법적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설치돼 있었다.
폐정신병원의 다른 통로를 찾아 들어가보니 방문객들이 다녀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다행히 기자는 문 옆에 접근할 수 있는 입구를 찾아 병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존에 건물을 방문했던 이들이 게시한 동영상을 미리 봤기 때문에 다른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문 옆 통로로 들어가 아스팔트 길을 한참 올라가니 사진으로 봤던 음침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십 년째 문을 닫은 병원이지만 입구에서 시작한 길목 곳곳에서 담배꽁초와 쓰레기 더미들을 발견돼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방문객이 다녀갔는지 짐작케 했다. 대낮에 갔음에도 채광이 어두웠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건물 안의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폐정신병원 건물 내부 모습.
이 건물은 해외에서도 무섭기로 유명한 건물인데 흉가체험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꼭 거쳐 가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충격적인 소문 때문이다. 이곳은 과거에 정신병원이었는데 입원했던 환자들이 이유 없이 사망했고 이에 원장이 자살해 병원이 폐쇄됐다는 것. 그러나 해외에까지 알려진 이 소문은 괴소문으로 드러났다. 병원은 지어지던 당시부터 급수 및 하수처리에 난항을 겪다가 결국 폐쇄됐다. 건물주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건물이 수십 년 동안 방치돼 왔고 철거 비용이 들어 철거도 되지 못한 채 여태껏 과거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건물주 한 명이 건물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주는 친척에게 건물 관리를 위임해 내부 정비를 하고 건물 입구를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건물을 들어가려고 했던 이들 중에서 경비원에게 발각돼 쫓겨났다는 경우도 꽤 있었다.
폐정신병원 다음으로 유명한 명소는 경기 화성 소재의 한 어린이집이다. 이곳 역시 모든 원생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괴소문이 돌며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그러나 얼마 전 아파트 재개발로 건물이 철거돼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20년째 인근에서 살고 있는 주민 이 아무개 씨(45)로부터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애들이 죽었다는 말은 다 지어낸 말이다. 그냥 평범한 어린이집이었고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은 것뿐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인근 지역은 재개발로 철거를 앞두고 있어 사람 없는 빈 집이 많았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을 찾은 김에 주변 폐아파트와 폐가 등을 찾는 발길이 많았다. 일부 건물에는 공·폐가 관리번호가 붙어 있었고 무단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게시돼 있었다.
철거를 앞둔 폐아파트. 이곳도 공포체험 장소로 인기다.
이러한 폐건물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외부인이 무단침입하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 그러나 관리 부실해 완벽하게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흉가 체험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경비원이 있거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은 공포체험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 사망 사고가 있었던 대전의 폐교도 공포체험을 위한 인기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이곳 역시 문을 잠가 놓았기 때문에 진 씨는 다른 입구를 통해 들어오다 변을 당했다.
이번과 같은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포체험의 장소로 이용되는 공·폐가 대부분이 사유지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안전점검을 하거나 안전시설을 임의로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안전시설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소유주의 허가 없이 행정기관이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