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험힐튼 호텔에서 열린 홍수환 회장 비리로 인한 KBC 파행운영 폭로 및 대책 마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식 비대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일요신문]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80년대 한국 권투.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국 권투에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다. 국내 권투 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권투위원회(KBC) 내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집행부에 반기를 든 것. 비대위는 홍수환 회장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비대위는 지난 8월 24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에서 홍 회장의 전횡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과거 송사를 거치며 법원으로부터 무효 판결을 받거나 회장 직무 정지가 되는 등의 곡절이 있었지만 홍수환은 2체급 전 세계 챔피언이자 최초의 선수 출신 회장으로 2012년부터 KBC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김태식 이사가 위원장으로 나선 비대위는 홍 회장 체제에서 KBC가 더욱 침체됐다고 주장했다.
먼저 비대위는 사분오열된 권투계의 현재 상황에 홍 회장이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현재 권투계는 기존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KBC와 2002년 설립된 한국프로복싱협회(KPBF) 외에도 지난 2014년 한국권투협회(KBA), 한국권투연맹(KBF) 등이 KBC에서 떨어져 나가며 네 갈래로 갈라져 있다. 비대위는 4개의 복싱 단체가 난립하는 배경에 홍 회장의 거취가 한몫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권투계 원로, 심판, 체육관장, 현역 선수 등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홍 회장이 전횡이 심각한 상태이며 KBC를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홍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KBC로부터 건보료를 지급받지 못한 선수들과 체육관장.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그는 대전료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이 관장은 그동안 대전료가 약속보다 적게 지급된 사례를 소개하며 “차명우 프로모터가 많은 대회를 진행하며 문제가 일어났지만 제재 없이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홍 회장은 ‘프로모터를 바지(대리)로 세워서 내가 그 역할을 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차명우와 홍 회장의 유착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관장은 “올해 1월 19일에는 홍 회장과 차명우가 관장들을 모아서 그동안 미지급된 대전료의 절반을 주겠다고 말했다. 회장이 관장들에게 금액을 묻고 직접 그 절반을 건넸다”며 “프로모터가 아닌 회장이 직접 대전료를 주는 것이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프로모터에게 라이선스를 주고 진행되는 시합에 대해 승인을 해주는 권투위원회의 역할을 넘어섰다는 것. 이어 다수의 관장들이 나서 대전료 문제를 지적했고 관련 사례를 증언했다.
황순철 심판위원장은 권투 경기에서 절대적 필수 요소인 링닥터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 4월 안산 시합에서 링닥터가 없는 상태로 경기가 진행됐다는 것. 그 외에도 경기 결과에 대한 선언문이나 인증서 등이 준비되지 않는 행정적 문제도 지적됐다. 황현철 KBC 이사도 “안산 시합에서 1라운드에 KO 패배를 당한 선수가 있었는데 의사가 없어 위험한 상황이 나올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황 위원장은 “이런 자리에서 같은 권투인을 비판한다는 것이 슬프고 부끄럽다”면서 “홍 회장에게 될 수 있으면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지만 오죽하면 이러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비대위는 자신들의 요구 사항으로 ‘6월 22일 임시총회 의결사항 이행’을 들었다. 당시 의결사항은 사무총장 대리로 있던 김경선 씨의 활동 중지, 기존 여의도 사무실로의 복귀, 체육관장 대표회원 선출 승인 등이다. 비대위는 “본인이 총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승인한 사항임에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9월 4일로 예정된 시합을 제외한 홍수환 체제의 모든 경기를 보이콧하고 비대위 전원 이름으로 고발·고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총회 진행 당시 촬영된 영상이나 녹취록, 관련 서류를 가지고 있어 법적 절차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 같은 의혹에 KBC는 비대위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부터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글을 게시하며 대응해왔다. 홍 회장 이름으로 올라온 글에는 비대위는 본회에서 승인을 거치지 않은 불법 단체라며 관장, 지도자, 회원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홍 회장은 “KBC의 자금 운영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실무진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해 투명하게 관리했다”고 밝혔다. 비대위의 주장을 ‘중상모략’이라며 명예훼손과 무고 등으로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또한 비대위가 홍 회장과의 유착 관계로 지목한 차명우 프로모터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비대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바닥을 드러낸 KBC의 재정 상황에 비대위 인사들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차 씨는 “오히려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 가운데 일부가 집행부 일을 맡아서 하며 개인적 착복을 일삼았다. 소송도 진행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건보금이나 대전료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것은 이전부터 이들이 제대로 관리해오지 못한 탓이라는 주장이다.
KBC 측은 링닥터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KBC 관계자는 “내가 링닥터 관련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며 “안산 경기에 링닥터가 명백히 배정됐고 이후 보수가 지출됐다”고 설명했다.
비대위의 임시총회 의결 이행 요구에도 차 씨는 “회장님이 직인을 찍는 등 최종 처리를 해야 하는데 비대위가 서류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 대신 직인을 달라고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은 홍 회장의 퇴진과 관련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홍 회장 측은 “비대위가 좋은 회장감이 있다기에 내가 만나보고 괜찮은 인물이면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겠다고 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비대위는 “조건 없이 물러나겠다는 말을 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차기 회장 후보에 오른 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분이 ‘홍 회장 자리를 뺏는 그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말해 직접 만나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이처럼 홍 회장 측과 비대위는 쟁점으로 떠오른 각 건에 대해 단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상대방의 주장에 인정이나 해명 없이 반박으로만 대응했다. 각각 서로를 향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기에 이들의 주장은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내리막길로 들어선 한국 권투는 현재 단 한 명의 세계챔피언도 없는 ‘노챔피언’ 국가이며 리우 올림픽에서도 한 명만을 출전시키는 등 거듭 내리막을 걷고 있다. 4개로 나눠진 권투단체의 각 홈페이지에 선수 랭킹을 보면 10위권 내 적힌 선수 이름보다 주인을 찾지 못한 공석이 눈에 들어온다. 기자회견에서 한 체육관장의 “우리나라 프로 권투는 프로가 아니다. 선수들이 따로 직업을 가지고 권투는 ‘아르바이트’처럼 하고 있다. 선수들이 운동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공허한 외침이 권투계의 현실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25@naver.com
KBC 명의 차를 자가용으로? 홍수환 회장 고액 전기차 출고 논란 KBC 비상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는 홍수환 회장이 고가의 전기차를 KBC 명의로 출고해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비대위가 전기차 출고로 KBC가 3000만 원이 넘는 채무를 안게 됐다고 주장한 것. 서성인 KBC 사무총장은 “홍 회장은 직원 1명만 아는 상태로 BMW의 전기차를 출고했다”며 “값비싼 차를 출고한 자체로도 문제지만 차를 직접 본 사람이 없다. 홍 회장의 아들이 차를 탄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홍 회장이 KBC 명의로 출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기차. 사진출처=BMW 코리아 홈페이지 비대위 측은 “이전에 무혐의로 판결이 난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엔 전기차를 이용한 세금 탈루와, 횡령으로 다시 고소할 계획이다. 필요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기에 제대로 밝혀낼 자신 있다”고 했다. 이들은 BMW 매장에서 관련 서류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