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26일 오전 7시 10분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한 산책로에서 60대 남성이 나무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운동 중이던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신호등 뒤로 보이는 서울 중구 롯데그룹 본사. 연합뉴스
[일요신문] 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69)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은 비통한 심정을 보였으며, 검찰 역시 롯데의 핵심 조사 대상이었던 이 부회장의 죽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오너일가 등 롯데그룹 수사 차질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 속에 이 부회장의 극단적인 선택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0분쯤 경기 양평군 서종면 산책로 한 가로수에 이 부회장이 넥타이와 스카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운동 중이던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이 부회장을 불러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집중 추궁할 방침이었다. 각 계열사가 조성한 비자금이 그룹 정책본부로 흘러들어 갔는지 여부도 확인할 예정이었다. 특히, 각 계열사 비자금 조성 과정에 윗선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 집중 파헤치려 하는 등 결국 롯데 오너일가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예고된 상태였다.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이 자살을 한 배경에는 이러한 검찰 수사를 막아 신 회장 등 오너 일가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그를 극단적인 길로 내몰았다는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신동빈 회장(왼쪽)과 이인원 부회장. 연합뉴스
롯데그룹은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특히 이 부회장의 자살 배경이 현재 진행 중인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무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롯데의 입장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환 대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룹 입장에서 무엇인가 이야기한다는 게 모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이 부회장이 극단적인 길을 선택함에 따라 부담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빈다”면서 “수사 일정의 재검토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26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평경찰서에서 경찰이 이 부회장 차량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황각규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과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등 이른바 신동빈 회장의 ‘가신 3인방’을 조사했던 검찰은 핵심 조사대상이던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함에 따라 수사 계획에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서는 수사 동력이 급속히 떨어져 핵심 의혹 대부분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이번 수사가 끝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 부회장은 43년을 롯데에 몸담은 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비(非) 오너 일가 중 처음으로 부회장에 승진하는 등 롯데그룹 안팎에서 신임이 두터웠다. 또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복심’에서 최근엔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롯데그룹의 핵심실세로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검날 앞에 되풀이된 정재계 인사 ‘잔혹사’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26일 오전 이 부회장의 시신이 보관된 경기도 양평군 양수장례식장에서 한 경찰관계자가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조사를 앞두고 심적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재계 유명 인사의 경우 사회적 지위에 따른 자괴감이나 상실감,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한 희생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4월에는 검찰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당일 오전 자택을 나선 뒤 북한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 됐다. 당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낙마하는 등 정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12월에는 정윤회 관련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당시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최 아무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각종 의혹과 논란이 일었다. 2003년 8월에는 대북 송금 및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수사를 받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해 충격을 줬다. 2004년 3월에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던 중 투신했다. 2009년 5월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당시 우병우 검사 등은 ‘논두렁 시계’ 발언 등 검찰의 수사브리핑을 언론에 생중계하듯이 공개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편, 위 사례 모두 핵심조사 대상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수사가 사실상 종료되는 등 차질이 불가피했다. 검찰의 대형수사과정에서 불거진 핵심 당사자의 자살로 사건이 용두사미로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