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시작 전 ‘부당이득금’ 환수…업체 파산 위기
[일요신문] 최근 군 안팎에서 방위사업비리 수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겉으로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부풀려진 사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는 최근 경찰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넘겨진 K-9자주포 부품 납품업체 사기 사건에도 적용된다. ‘서류 조작으로 원가를 속여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가 시작됐는데, 기준이 된 관련 법령 등이 잘못 적용됐으며 “사기로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여기에 이 납품업체가 이번 수사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K-9자주포 전체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군의 대표적 주력 무기인 K-9 자주포.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독일산 자주포와 비교해도 성능에 손색이 없으면서, 가격은 절반 수준이라 세계 각국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요신문DB
정부의 방위사업 비리 수사는 박근혜 정부의 기획사정인 이른바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사업) 수사의 한 갈래다. 방위산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이 출범한 것은 지난 2014년 11월로, 박 대통령이 “방산·군납비리는 이적(利敵) 행위”라고 지적하고 한 달이 지나서였다.
검사 18명을 포함한 총 117명으로 구성된 합수단은 그동안 해군 통영함·소해함 사업,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납품, 해상작전헬기(와일드캣) 도입 등 굵직굵직한 비리를 수사했고, 전·현직 장성급 11명 등 77명을 기소한 뒤 지난해 말 활동을 마쳤다. 당시 합수단이 발표한 방산비리 액수는 총 1조 원에 달했다. 이후 검찰은 조직을 축소해 서울중앙지검에 방위사업수사부를 신설하여 자체적으로 방산비리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합수단과 검찰수사 및 감사원 감사결과를 놓고 군 안팎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방위산업비리 수사 관련 재판 피고인들이 잇따라 무죄 선고를 받고 있어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여기에 초점을 잘못 맞추거나 방위사업의 특성과 관련법령 및 생산절차 등 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법조항을 적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 10억 원대 부당이득
최근 경찰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넘겨진 K-9자주포 부품 납품업체 사기 사건이 한 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8월 4일 K-9 자주포에 들어가는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문제가 된 업체의 대표는 지난 2008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K-9 자주포, K-55 자주포 등에 들어가는 전원공급장치 1100여 개를 방산업체에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장치에 쓰인 일부 부품을 다른 업체 2곳을 통해 외주 제작했는데, 이를 자체 생산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1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다만 이 업체가 납품한 전원공급장치에서 결함이 발견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익명의 제보자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고 심사 후 경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검찰에 송치된 이후 대표 소환 조사 등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방사청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심사결과를 토대로 36억 원의 부당이득금 및 가산금 환수를 완료했다.
# 논란 가중
이 사건에 대해 일부 군 안팎의 방위사업분야 전문가들과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우선 사기혐의를 받고 있는 납품업체는 방산업체가 아닌 ‘일반업체’라 방위사업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또한 일반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외주제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를 알리지 않은 행위가 국가에 손실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방산분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국내 방산업계 부품 공급업체 등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비리기업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의 방산분야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지적은 문제가 된 납품업체의 계약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 여기서 “납품업체의 사기 혐의 적용도, 처벌 기준이 된 법률도 잘못 적용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납품업체의 계약 관계를 보면, 이 업체는 방위사업청의 재하도급업체로, 방사청(갑)⟶A 방산업체(을)⟶B 방산업체(병)⟶사기 혐의 납품업체(정)의 순으로 계약돼 있다. 즉, 앞서의 업체는 방사청과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닌 B 방산업체와 ‘사적 계약 관계’다.
이는 문제가 된 납품업체와 B 방산업체 간 계약은 방위사업법 및 관련 내부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위 계약 관계에 속하는 방사청과 A 방산업체의 관계가 방산수의(확정)계약이라고 하더라도, 납품업체와 B 방산업체 간 계약은 하도급계약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인(私人)간의 일반계약’으로 분류된다. 두 업체의 계약서에도 “이 계약은 하도급법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 사기혐의 의문…현장상황 반영 안돼
이들이 따르는 하도급법에는 업체가 생산 과정에서 외주제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한 내용을 알리거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나 의무는 없다. 생산 비용 절감은 일반 기업의 통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다만 방산업과 관련해 계약특수조건에 따라 통보해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업체별 계약 내용에 따라 다르다.
여기에 B 방산업체와 납품업체 간 계약을 보면, 이들은 연간 단가계약을 맺었다. 납품업체는 그동안 방사청과 A 방산업체, B 방산업체 등 상위 계약 단계에서 미리 결정된 단가로 B 방산업체와 계약한 뒤, 그 범주 내에서 부품을 생산해 납품했다. 이 납품업체가 현재 의심을 받고 있는 ‘계약 과정에서 외주제작을 자체 생산한 것처럼 속여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와는 정반대다.
또한 일반 기업이 생산 공정 개선(외주제작)을 통해 얻은 이익을 부당이득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지난 8월 23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위기 방위산업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도 공식 질의 됐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방위산업 관련 전문가의 “하도급업체가 생산 공정 개선을 통해 비용을 절감해 얻은 이익은 국가의 이익입니까 업체의 이익입니까”라는 질문에 방위산업 관련 법률전문가(변호사)는 “업체의 이익이 맞다”고 답변했다.
서류 작성 과정에서 외주 제작 사실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은 점이 ‘사기’에 해당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체생산과 외주제작을 명확히 구분해 작성해야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가하면, 일각에선 “현장 상황과 관행을 볼 때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오기 때문이다.
납품업체가 작성한 서류 중 문제가 된 부분은 ‘작업 공수’로, 부품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과 인건비를 기록하는 부분이다. 이 업체는 모두 자체 제작으로 작업 공수를 계산해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서 “소규모 중소기업들은 작업공수를 세부적으로 구분해 작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산업체에 납품을 하는 업체 관계자들은 “계약 체결 이후 실제로 물건이 납품이 되는 시점은 9개월부터 1년 뒤로, 이마저도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직원 숙련도와 납품 기일 변경, 수요 증가 등 다양한 변수가 발생해, 계약 시점에서 부품 한 개 당 작업시간을 10시간, 20시간 등으로 명확히 정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보통 작업 공수 부분은 평균을 내서 작성한다. 인력이 늘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부품 하나 당 작업 시간을 어떻게 매일 확인하고 기록할 수 있겠나. 이 부분을 문제 삼으면 국내 방산업 관련 중소기업 중 대부분은 비리업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부당이득 처분 논란
여기에 앞서의 납품 업체에 내려진 처분과 적용 법률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수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이 완료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5년 권익위원회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문제가 된 업체가 납품하는 전원공급장치 품목에 대해 원가부정행위 관련 신고를 받았다. 그런데 권익위는 앞서의 납품업체가 외주제작을 결정하고 이 사실을 방산업체에 알리지 않은 행위가 ‘방위사업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납품업체의 계약이 따르는 하도급법이 아닌 방위사업법이 적용됐다는 얘기다. 권익위는 방위사업법 제58조 1항 “허위, 그 밖에 부정한 내용의 원가계산자료를 정부에 제출하여 국가에 손해를 끼친 행위”에 해당된다며 심사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이와 동시에 권익위로부터 내용을 넘겨받은 방사청은 방위사업관리규정 제420조(기타 외부기관(감사원, 검찰, 경찰, 조사본부 등)에서 부당이득을 얻은 사실 및 금액 등이 확인된 업체)에 따라 부당이득금과 가산금을 합해 36억여 원의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결정했다.
이후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은 방사청과 계약으로, 하위 계약 관계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A 방산업체에 먼저 내려졌다. 이는 다시 B 방산업체로 이어졌고, 문제가 된 납품업체가 최종 납부하게 됐다. 이 관계에 따라 현재 A 방산업체가 먼저 부당이득금을 방사청에 모두 납부했고, B 방산업체가 다시 A 업체에 납부, 앞서의 납품업체는 납품 대금에서 상계 처리해 B 방산업체에 분할 납부하고 있다.
특히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이 검찰 수사가 이제 막 시작된 시점에 내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앞서의 납품업체 관계자는 “검찰 수사나 재판에서 잘못이 인정되면 그 부분에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검찰 송치 이후 대표에 대한 소환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제보된 부당이득 금액이 정확한지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된 부당이득환수금을 모두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이 사건은 방사청이 선도·지적한 사항은 아니다. 권익위와 경찰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관련 법령을 적용했다. 방사청도 채권확보 차원과 외부기관의 심사 결과를 통보받으면 이를 토대로 처분을 내려야 하는 방위사업관리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당이득금 처분 문제로 현재 앞서의 납품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려있다. 납품 업체 관계자는 “문제가 된 서류작성 시기에 거래 방산업체의 납품 기일을 당겨 달라는 요청,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수요 급증 등이 겹쳤다. 비용절감 측면보다는 자체생산만으로는 도저히 납품을 할 수 없어 외주 제작을 맡겼던 것”이라며 “그동안 납품 기일을 어기거나 품질에 문제가 생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부당이득금은 지난 6월부터 납품 대금의 30%를 떼어내 납부했으며, 오는 9월부터는 70%를 떼어내야 한다. 현재 직원 일부는 급여를 주지 못하고 부품 거래 업체들에게도 대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 회사 1년 수익의 절반을 훌쩍 넘는 거액의 환수금도 문제지만, 이대로라면 국가방위사업에 차질을 빚은 업체로 낙인 찍혀 회사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까 더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 K-9 생산 차질 우려 제기
문제는 이 업체의 위기가 K-9자주포 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이다. 앞서의 납품업체는 지난 1999년 K-9 전력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왔는데, 이 업체가 납품하는 전원공급장치는 수리 장치나 액세서리 장치가 아닌 K-9의 주요 부품으로 분류돼 있다.
이 업체를 제외하면 현재 K-9 전원공급장치를 생산·납품할 수 있는 또 다른 업체는 없다. 국내에서 개발한 무기라 수입 대체품 역시 없다. 앞서의 납품업체 관계자는 “이 부품은 초기 개발에 5년이 걸렸다. 새로 개발하려면 최소 2년이 걸릴 것”이라며 “부품 품질 관리 등의 이유로 현재 한 공장에서만 양산하고 있어, 다른 공장에서 곧바로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현재 K-9제작 방산업체가 생산이 가능한 추가 업체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산이 중단되기까지 하는 심각한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또 다른 납품업체도 같은 혐의
주목할 점은 이러한 사례가 앞서의 납품업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업체를 두고 방산비리 수사와 비리 기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같은 방식의 방산비리 의혹이 또 다른 업체에도 제기되면서 부당이득금 환수처분도 동시에 내려지고 있다.
K-10과 K-9 등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C 업체는 지난해 감사원으로부터 “원가계산 기준에 적합한 구체적인 원가계산자료(각 제조공정별 작업 공수 투입량 등)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12억여 원의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받았다. C 업체도 앞서의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납품업체와 같이 하도급법 적용 대상이며, 원가계산 작성 경위 등도 앞서의 납품업체 사례와 일치한다.
이에 대해 한 방위사업 전문가는 “정확한 법률 검토 없이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 또한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업체에 부당이득금을 환수 처분하는 경우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업체의 폐업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 무기체계 생산에 차질을 빚는 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어떤 게 국가적 손실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