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과 빨치산 그룹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일까. 최근 이와 관련한 이상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내부소식을 전하는 ‘NK지식인연대(대표 김흥광)’는 8월 31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월례 설명회를 진행했다. 최근 북한 이슈는 물론 내부 동향을 내·외신에 보고하는 자리였다. 역시 이날 설명회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끈 부분은 태영호 전 공사를 비롯한 북한 고위층의 이탈 현상이었다.
<일요신문>이 이날 가장 주목한 대목은 김정은과 항일투사그룹, 이른바 빨치산그룹과의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앞서의 이탈 현상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빨치산그룹이란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 당시 함께했던 전우들로서 그 가족들과 직계 후손들을 통칭한다. 곧 북한 최고 핵심계층에서도 핵심을 이루는 그룹이다.
이날 NK지식인연대가 공개한 내부소식에 따르면 김정은이 집권 이후 항일투사들에 공개적으론 상당한 대접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이들에 대해 ‘손을 봐주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김정은 자신의 독재 권력 집중에 주변 기득권 세력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대의 어린 나이에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에게 할아버지뻘의 항일투사는 생리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의 입장에서 자식들의 승진을 부탁하는 이들의 태도도 맘에 들지 않았다. 김정은은 북한의 청소년들이 받는 혁명역사의 세뇌교육도 받아본 적이 없고 해외에서 생활했다. 빨치산그룹과 유대를 맺어온 선대 지도자들과는 태생적으로 같을 수가 없었다.
이날 이와 관련해 공개된 구체적인 대목 중 하나가 부인 리설주에 대한 일화다. 2012년 7월 김정은이 리설주와 팔짱을 끼고 유희장에 나타난 일을 두고 여성 항일투사 몇 명이 리설주를 흉보는 뒷담화를 했다. 이에 대한 얘기가 보위부를 통해 김정은의 귀에 들어갔고, 이 때부터 항일투사들에 대한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대목은 장성택의 처형 과정이다. 2013년 11월 장성택 처형 당시 빨치산그룹이 김경희를 도와 그의 처형만은 만류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과 빨치산그룹 간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김정은과 빨치산그룹 간에 간극이 실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지난 5월 있었던 7차 당대회다. 조선로동당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로서 무려 36년 만에 개최된 당시 당대회는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작스레 제외된 인사가 오극렬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오극렬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사진 맨오른쪽)과 그의 가족이 2012년 3월 8일 진행된 ‘국제부녀절(3.8)’ 기념 은하수음악회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극렬이 누구인가. 빨치산파 오중성의 아들로 알려진 오극렬은 공군 출신으로 군과 당의 요직을 두루 거친 빨치산그룹의 대표격 인사다. 김정은 시대에서도 39호실을 비롯해 외화벌이와 혁명자금 등 돈줄을 쥐고 있던 오극렬은 권력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오극렬에 권력이 집중되고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자 김정은과의 신뢰 관계는 깨어져 버렸고, 현재까지 요직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오극렬의 배제는 곧 빨치산그룹과의 신뢰 관계에도 금이 갔음을 의미한 셈이다.
최근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 일가의 사건은 이러한 빨치산그룹의 균열과도 무관치 않다. 태영호 본인은 김일성 주석의 전령병으로 빨치산 출신인 태병렬 전 인민군 대장의 아들이며 그의 부인 오혜선 역시 빨치산 오백룡 전 당 군사부장 가문 출신이다. 북에서는 특히 이번 사건을 두고 오백룡 가문의 탈북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NK지식인연대에 따르면 이번 사건 직후 김정은은 친필 방침을 통해 “어젯날의 충신이 저절로 오늘의 충신이 되는 법은 없다”라는 뼈있는 말과 함께 “과거에 공로가 있다고 하여도 오늘날 당의 영도를 따르지 않고 혁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집안 자랑이나 하면서 무임승차하는 사람들, 안하무인격으로 처신하고 사리사욕이나 채우는 사람들은 결국 결정적 시기에 당과 수령을 배반하고 자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입증된 역사적 법칙”이라고 하달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중앙당 조직부 6과를 통해 2세들을 포함해 빨치산그룹에 대한 전면적인 검열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른바 빨치산그룹에 대한 김정은의 본격적인 견제와 압박이 시작된 셈이다.
빨치산그룹은 지난 70년 동안 백두산 줄기(김일성 가문)를 옹위하여 체제를 이끌어왔던 핵심 중의 핵심계층이다. 그룹에 속한 항일투사들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일성 가문 인사들만큼이나 신화적 대상으로 세뇌됐다. 그들의 특권은 당연한 것이었고, 오히려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김정은과 그의 가문을 옹위해 온 빨치산그룹의 간극이 벌어진다는 것은 곧 이들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북한 주민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북한 엘리트층의 이탈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라볼 여지가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북한 외교수장들 무사할까? 비자금 문제 탓 이러지도 저러지도 리수용 북한 당 중앙위 국제담당 부위원장(왼쪽)과 리용호 외무상. 태영호 전 공사의 귀순 이후 가장 관심이 갔던 대목 중 하나는 북한 외교수장 투톱으로 일컬어지는 리수용 당 중앙위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의 신변 이상 여부였다. 태 전 공사의 망명 및 귀순이 북한 사회에 던진 파장은 꽤나 크다. 분명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대목이고 그 칼날은 결국 외교수장 투톱에게 겨눠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난 두 사람의 신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북한 최고 외교통인 리수용 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콩고, 앙골라,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데 이어 31일 방북한 이탈리아 의원단과 면담을 가졌다. 현재 북한은 UN의 제재 압박을 독자적인 외교전을 통해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언제나 그랬듯 그 역할에는 리 부위원장이 중추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교수장인 리용호 외무상 역시 아직은 건재하다. 리 외무상은 오는 24일 UN총회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설 예정이다. 북한은 태 전 공사 귀순 이후에도 해당 계획에 대한 변경 통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리 외무상은 예정대로 UN총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사람은 정말 어떤 조치도 받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박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 주목했다. 비자금이다. 태 전 공사의 귀순 배경에도 앞선 이탈자들이 챙겨 나간 통치자금 명목의 비자금에 대한 압박이 언급된 바 있다. 안 박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이번 태영호 귀순 사태를 두고 외교라인에 어느 선까지 조치를 취할지는 좀 더 지켜볼 대목”이라면서 “다만 리수용-리용호 두 사람에 손을 대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특히 외교라인에서 비공식적으로 관리하는 비자금 문제가 끼어있기 때문에 김정은으로서는 무척 골치 아플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 박사는 “또한 두 사람이 북한의 외교라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라며 “현실적으로 눈을 감고 중간 책임자들에게 칼날이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두 사람이 지닌 북한 외교라인에서의 상징성과 비중은 막강하다. 제네바 대표부를 비롯해 유럽 주요 국가의 주재원을 거친 리 부위원장은 외무상을 거쳐 지난 5월 현재의 자리에 이르렀다. 특히 리 부위원장은 한때 장성택 측근 인사로 알려졌지만 당시 숙청 바람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고, 외교라인에서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실감케 한 바 있다. 외교라인에서 요직을 거쳐 온 리용호 외무상 역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선배 리수용의 자리를 물려받으며 지난 5월 외무상에 올랐다. 리 외무상은 지난 2011년 김정일 장례위원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의 생각도 비슷했다. 김 대표는 “두 사람 신변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군이라면 경고 차원에서 별 몇 개라도 떼어 놓을 수 있지만 당 관료인 두 사람은 이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두 사람만큼 능력과 관록을 갖춘 인사들이 김정은 주변에 많지 않다. 좋은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UN 제재라는 어려운 현실이 두 사람의 건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대외적 파트너십이 곧 자산인 외교 분야에서 그나마 대외적으로 유대관계를 쌓아온 인사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외교적 자산과 비자금이라는 현실적 부분이 담보로 세워져 있는 셈이다. [한] |
제3국행 택한 탈북자들 왜? 북에 남겨둔 가족 때문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사이에서 제3국행을 택한다. 이명준은 결국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투신하지만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 그의 처지는 여전히 분단국인 한반도의 현실에서 큰 귀감으로 남아 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추산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이명준이 존재한다. 바로 제3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이다. 특히 이번 태영호 전 공사의 망명 및 귀순 당시 재영국 탈북자들이 북한 정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내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들은 크게 세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한국으로의 귀순을 거쳐 제3국을 택하는 경우다. 김흥광 대표에 따르면 약 700명이 거주하는 재영 탈북자들은 한국으로의 귀순을 거쳐 본인의 선택으로 영국으로 가게 된 케이스라고 한다. 일부는 영국이 아닌 또 다른 유럽 국가로 망명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두 번째 경우는 아예 한국을 거치지 않고 제3국에서 난민 자격을 득한 경우다. 보통 태국 등 동남아 국가를 거쳐 미국으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현재 200여 명 규모로 추산되는 재미 탈북자들은 탈북자들에 난민 자격이 주어지는 미국 정부의 방침에 의거해 아메리칸 드림에 도전하는 경우다. 마지막 경우가 합법적 루트 대신 잠적을 택하는 사례다. 물론 잠적 이후 난민 자격을 득한 경우도 있지만 아예 잠적한 채 삶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최근 보고되고 있는 북한 외교관 등 해외 주재원들의 현지 잠적 사례다. 여기에 추산조차 불가능한 중국행 탈북자들은 현재도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현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서방세계에 잠적한 탈북자들은 사정이 낫지만 이 같은 북한 우호국 내 탈북자들은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한국이 아닌 제3국을 택하게 된 배경은 각양각색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북한 내 가족이라고 한다. 안찬일 박사는 “일부 탈북자들이 제3국을 택한 이유는 북한에 남겨둔 가족 때문”이라며 “제3국에서 안착할 경우 최소한 북한 내 가족들의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