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박 씨는 밭에 퇴비를 뿌린 후 악취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곧바로 땅도 갈아엎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며칠 후 자신의 자택 주변에 퇴비 냄새가 심하다며 세종시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총리까지 지낸 이 의원이 민원을 제기하자 세종시는 발칵 뒤집혔다. 행정부시장이 직접 현장에 나갈 정도였다. 이 의원은 현장에 나온 면장, 환경정책과 공무원들에게 호통을 치며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세종시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공기포집기를 이용, 악취 정도를 측정했으나 기준치 이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치에도 못 미치는 악취였음에도 시 공무원들은 지하수 오염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퇴비를 수거할 것을 박 씨에게 요구했다. 결국 박 씨는 직접 장비를 동원해 퇴비 15톤가량을 전량 수거해야 했다. 시는 이후 퇴비 샘플을 확보해 충북보건환경연구원 등 전문기관 2곳에 폐기물 검사도 의뢰했다.
퇴비 악취 민원이 발생하면 밭을 다시 갈아엎거나 냄새 제거 약품을 살포하도록 해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퇴비를 전량 수거까지 하게 한 것은 과잉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인 박 씨는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박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병들었다.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피해를 입으신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피해 입었건 말았건 (보도)하지 말라. 저한테 화살이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보복이 있겠냐고 안심을 시켜봤지만 “그래도 (보도)하지 말아 달라.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다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처럼 박 씨는 억울한 피해를 입고도 혹시 있을지 모를 보복에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박 씨는 퇴비를 전량 수거하면서 사실상 밭에 대한 농사를 포기한 상태다. 이로 인한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의 한 관계자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보복이 있겠냐고 하지만 실제로 유력 정치인이 민원을 제기하니 밭에 퇴비도 못 뿌리게 하지 않았나. 앞으로 보복이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나. 공무원들이 와서 이것저것 트집 잡으면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밭에서 퇴비 냄새가 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퇴비 냄새는 보통 며칠이 지나면 가라앉게 된다”며 “밭에 퇴비를 뿌려 지하수가 오염된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박 씨가 특별한 퇴비를 쓴 것도 아니고 세종시 기준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의 갑질도 문제지만 세종시의 처리방식이 더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아무리 지역 유력 정치인이 민원을 제기했다고 해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어야 하는데 농민에게 밭의 퇴비를 수거하도록 해 재산상 피해를 입힌 것은 월권행위라는 주장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피해 보상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악취방지법에 따르면 영농을 위해 밭에 뿌려진 퇴비는 행정조치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시가 퇴비 수거 등의 행정조치를 명령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게다가 새누리당 세종시당에 따르면 세종시는 그동안 지역 주민 수천 명이 제기한 악취 민원에 대해서는 ‘악취를 저감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같은 악취 민원에 대해 전혀 다른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은 ‘도시와 농촌의 아름다운 상생’을 주장하며 전동면 농업지역으로 이사를 했는데 집 근처에 퇴비도 뿌리지 못하게 할 것이라면 농민들에게 괜한 피해를 주지 말고 차라리 다시 도시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의원 측의 관계자는 “악취가 발생한 후 정작 의원님은 그냥 창문을 닫고 참고 계셨지만 동네 주민들이 의원님을 찾아와 해결해달라고 부탁해 직접 나서신 것”이라며 “부시장까지 현장에 찾아와 과잉 대응을 했다고 하는데 문제가 심각하면 당연히 고위 공무원들이 현장을 살펴보러 와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반 퇴비와 달리 엄청나게 냄새가 났다. 정상적인 퇴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시골이라 상수도 시설이 없어 주민들이 모두 지하수를 먹고 있는데 그런 퇴비가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면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시에서 수거를 지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악취 측정 결과 기준 미달로 판명된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문제가 있는 퇴비라고 판단해 무작정 수거를 명령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요신문>은 세종시 측 입장을 듣기 위해 담당자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를 남겼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