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의원(왼쪽)이 ‘문재인 대세론’을 깨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지난 4월 20대 총선 대구 수성갑에서 승리한 후 김종인 더민주 전 비대위 대표와 악수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8월 30일 김부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당권 불출마 선언 이후 사실상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해왔다. 우리 민주당의 생명은 역동성과 다양성이다. 당이 대세론에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세론은 무난한 패배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야권의 잠재적 대권잠룡 김 의원이 ‘문재인 대세론’을 깨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것이다.
8월 27일 추미애 지도부가 출범한 직후 여의도 정가에선 ‘친문 지도부 체제하에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무난히 더민주 대선 후보가 될 것’이란,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됐다. 더민주 한 당직자는 “당원들이 워낙 큰 표 차로 친문 지도부를 선택했다. 요즘 문 전 대표를 보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재인 대세론은 당분간 진리에 가깝다. 문 전 대표 측근들이 문제를 일으켜도 대세론은 끄떡없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만큼 굳건하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김 의원이 문재인 대세론을 겨냥한 속사정은 뭘까. 김 의원의 최측근은 “도대체 누가 문재인 대세론이라고 하나. 이대로 가면 본선 필패다. 친문당, 대세론 등 제발 그런 소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회창 전 총재와 이인제 전 의원의 대세론은 전부 엎어졌다. 김부겸 의원도 문 전 대표를 깰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지율 2%를 가지고 덤벼 이겼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 측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친문 세력은 김 의원 출마를 내심 반기는 모양새다. 친문 성향의 다른 당직자는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땡큐’다. 김 의원이 대세론을 깬다고 했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스스로 와서 들러리를 서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어떤 방법과 규칙을 도입해도 김 의원은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제3지대론’을 일축했다. 제3지대론은 여야의 대권 잠룡들이 탈당해 중간지대로 모인다는 구상이다. 김 의원은 “제3지대론은 관심 없다. 여기서 안 되면 저기 가고, 저기서 안 되면 또 다른 데로 가는 게 무슨 제3지대인가. 최소한 신당을 하려면 국민들이 공감할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당내에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핵심 경쟁에서 탈락한 자, 스스로 탈락해서 승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루저’들이 제3지대로 모이는 것이다. 패자부활전도 아닌데 김 의원이 나설 명분이 서지 않는다. 제3지대로 가면 김 의원의 정치인생이 끝날 것이다”고 설명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김 의원의 입장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판이 무르익지 않았는데 섣부르게 그쪽으로 간다고 하면 더민주 내에서도 김 의원은 고사당한다. 하지만 양당에서 친박 친문 패권의 전횡이 일어나면 자연스레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 것이다. 제3지대론이 탄탄히 다져진다면 김 의원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문 세력은 김 의원이 대권 경쟁을 선언한 점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친문 당직자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주자들이 튀어나가는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링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링 안에서 싸워준다면 1차적인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경선 관리가 가능하다. 야구로 비유하면 문재인 투수는 이미 글러브 안에 야구공은 물론 돌덩이도 쥐고 있다. 더구나 친문심판이 경기를 관장하는 운동장이다. 어차피 대선 룰도 문 전 대표 중심으로 짜고 칠 게 뻔하다. 김 의원이 끼어드는 바람에 오히려 우리 쪽으로 유리한 판도가 됐다”고 주장했다.
친문은 김 의원을 중심으로 당내에서 비주류 야권 잠룡들이 뭉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친문 당직자는 “비주류 야권 잠룡들이 김 의원을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은 있지만 힘은 약할 것이다. 삼국지로 비유하면 반동탁연합과 같다. 7~8계파가 주류를 깨려고 어쩔 수 없이 연맹을 맺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노선으로 정리가 될 수 없다. 각양 각색이고 제각각이라 힘들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안 지사 그리고 김 의원이 대오를 정리해 문 전 대표에게 도전해도 결국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선 “김 의원의 대권도전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총선 승리 뒤 김 의원이 타이밍을 놓쳤다. 한두 달 동안 역할이 없었다. 대구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한 명분으로 세게 치고 갔어야 하는데 늦었다. 당선 직후 대한민국 모순은 이것이다고 시대정신을 보여주면서 치고 나갔으면 붐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은 의원 선거 할 때보다 김 의원의 팬이 줄어 들었다. 문 전 대표보다 명쾌한 통찰과 해법을 내놓고 국민 일반에게 얼마나 동의를 받아내느냐가 김 의원의 향후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