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과 관련된 의혹을 폭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선공은 조선일보가 날렸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와 넥슨이 수상한 부동산 거래를 했다는 7월 18일자 1면 보도를 통해서였다.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과의 커넥션으로 도마에 올라 있던 넥슨과 사정기관 컨트롤타워이자 현 정부 최고 실세로 불리던 우 수석 간 의혹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들의 군보직 특혜, 가족회사 공금 횡령 등 후속보도가 이어지면서 우 수석은 곤경에 처했고 결국 특별감찰관 수사를 받게 됐다. 여기까지는 조선일보의 완승처럼 보였다.
정치권에선 우 수석이 버티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 의혹 보도로 옷을 벗어야 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전철을 밟을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야권은 물론이거니와 여권 주류 친박 내에서조차 이런 기류였다. 한 친박 의원은 “상대가 조선일보였다. 우 수석을 끝까지 안고 가면 박 대통령에게로까지 불똥이 튈 것으로 봤다. 우 수석 사퇴는 시간문제라는 게 대다수 의원들 반응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을 재신임했다. 오히려 “고난을 벗 삼아 소신을 지키라”는 발언으로 우 수석에게 힘을 실어줬다. 사퇴 초읽기에 들어갔던 우 수석 거취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오히려 청와대는 우 수석을 공격하는 ‘기득권 부패 세력’이 있다며, 이를 ‘대통령 흔들기’로 간주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를 날렸다. 조선일보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한 것이다.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우 수석이 물러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박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사격 때문이었다. 그러자 우 수석 사퇴를 요구했던 당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고, 친박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우병우 지키기’ 움직임이 일었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우 수석 사퇴를 꺼내면 ‘항명’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였다. 국민 뜻과 배치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입을 닫아야 했다. 대통령이 감싸는데 우리라고 별 도리가 없지 않느냐”라고 하소연했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우 수석을 경질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해석이 분분했다. 단순히 우 수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담겨 있을 것이란 게 중론이었다. 집권 후반기 강도 높은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레임덕을 방지하고자 하는 박 대통령이 권력 기관 정점에 서 있는 우 수석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친박 핵심부 인사들은 다른 이유를 꼽았다. 청와대가 언급한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원로 인사는 “설마 우 수석 말고 민정수석 맡을 사람이 없겠느냐”고 반문한 뒤 “박 대통령은 선과 악이 분명한 스타일이다. 우 수석을 공격하고 있는 세력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본 것이다. 당연히 우 수석은 피해를 입은 것이고…. 박 대통령이 이러한 뜻을 핵심 측근들에게 전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우 수석은 최근 진행된 일련의 검찰 수사를 기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그룹, 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 등 굵직굵직한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MB 정권뿐 아니라 현 여권 실세들 이름도 오르내렸다. 이 과정에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한 압력, 또는 구명로비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는 “결과적으로 우 수석이 적을 많이 만든 셈이다. 이 때문에 우 수석이 공격을 당했다고 박 대통령은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부패 기득권이라는 말을 쓴 것이고…. 조선일보와 싸운다는 게 얼마나 큰 위험인지 누가 모르느냐. 박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부가 우 수석에 대한 공세를 사정 드라이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특정 세력의 ‘작업’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친박 핵심부 인식은 조선일보를 향한 반격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흘려줬다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조선일보의 우 수석 의혹 보도 때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어 친박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과 대우조선해양 간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했다. 출처가 알려지지 않은 고급 정보로 조선일보를 정조준한 김 의원의 활약(?) 덕분에 청와대는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역습을 당한 조선일보는 일단 주춤한 모양새다. 그러나 내부에선 강경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한 간부는 “일개 언론사가 정권과 겨룰 수야 있겠느냐. 그런데 송 전 주필 비리를 감추기 위해 우 수석을 겨냥했다는 식의 얘기를 청와대가 흘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선 기자들이 직접 첩보를 입수, 공들여 취재한 내용이다. 알고도 안 쓰는 게 문제지. 송 전 주필 사직서가 바로 처리된 것도 개인 일탈과 권력형 비리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면서 “이쯤 되면 특정 언론에 대한 탄압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우 수석과 관련된 보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격앙돼 있던 청와대도 일단은 진정 국면이다. 특정 언론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지만 그보다는 조선일보 대응을 지켜본 후 후속 대책을 마련하자는 공감대가 모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최근 조선일보 사주와 관련된 여러 풍문들이 은밀히 나돌고 있는데, 이를 청와대의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잠시 휴전 중에 있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2차전에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