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처럼 단순 진료부터 입원까지 병원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국내에는 반려동물 보험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있더라도 보장받을 수 있는 질병과 상해가 한정돼 있고, 장 씨처럼 유전병 발병이 쉬운 순종 반려동물의 경우는 가입 자체가 어렵다. 장 씨와 비슷한 처지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반려동물 적금을 들지 보험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증가하고 있는 반려동물 인구에게 반려동물 보험 상품이 외면받는 이유를 <일요신문>이 취재했다.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 시대에 들어섰지만 반려동물 보험은 이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한 애견카페 모습. 연합뉴스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14년에 1조 4000억 원을 넘어섰으며 이런 증가 추세로 2020년에는 약 6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추세에 발맞춰 반려동물 장례업체, 의류업체, 심지어 반려동물만을 위한 유모차 등 반려동물 인구를 겨냥한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가장 보장받고 싶어 하는 보험 상품은 시장 성장세를 역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8년 금융감독원은 동물보호법 시행 후 반려동물 보험 시장 성장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국내에서는 전체 가구의 약 20%가 반려동물을 키워 ‘반려동물 인구 1000만 명 시대’라는 명칭도 생겼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 보험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든 보험사도 많았다. 그러나 2016년 현재, 국내에서 반려동물 보험을 제공하고 있는 보험사는 삼성화재와 롯데손해보험 2곳뿐이다. 메리츠화재 등 다른 보험회사들은 저조한 가입률과 운영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2년여 만에 상품을 폐지했다.
반려동물 인구가 보험 가입에 저조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보험에서 보장되지 않는 손해에 해당하는 질병이 많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2008년 제시한 동물보험(애견보험)은 보장하지 않는 손해에 선천적·유전적 질환 및 그에 기인한 질병을 포함시켰다. 반려동물들이 가지는 선천적 또는 유전적 질환은 일반적으로 ‘순종’으로 분류되는 품종견 또는 품종묘들에서 찾아보기 쉽다. 순종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같은 품종끼리의 짝짓기를 거듭하면서 원래부터 이 품종이 가진 질환의 유전인자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풍성한 털로 인기가 높은 개 포메라니안과 같은 소형견의 경우는 슬개골 탈구가 대표적인 질환으로 꼽히며, 접힌 귀가 특징적인 고양이 스코티시폴드는 관절이 닳거나 뼈가 뻣뻣해지는 선천성 골연골 이형성증이 유전병이다. 두 종류 모두 국내 반려인구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이들을 배제하는 반려동물 보험이 반려인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 결국 반려동물로 순종을 선호하는 의식이 강한 국내 반려인구들에게는 아예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보험을 가입해야 할 메리트가 없었다는 것.
현재 국내에서 출시되고 있는 반려동물 보험 상품은 롯데손해보험의 ‘롯데마이펫’과 삼성화재보험의 ‘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2(파밀리아리스)’이다. 각각 2013년 3월, 2011년 11월 출시됐으며, 롯데마이펫은 개와 고양이를 대상으로 하고 파밀리아리스는 개만 가입할 수 있다.
롯데마이펫은 수술치료비와 입·통원치료비를 보장하고 있으며, 파밀리아리스는 여기에 대인·대동물 배상책임손해도 100만 원 한도 내에서 보장하고 있다. 대인·대동물 배상책임은 애견이 타인 또는 타인 소유 동물이나 재물에 손해를 입혀 피보험자가 법률상 배상책임을 부담할 경우에 해당된다. 보험료는 롯데마이펫이 종합형 평균 연 35만 원, 파밀리아리스는 평균 연 50만 원선이다.
이들 보험은 모두 유전병이나 선천적인 질환에 대해서는 보장하지 않으며 1년에 한 차례 진행되는 건강검진, 치과진료 등의 지출 항목 역시 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반드시 진행하는 중성화 수술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 국내 반려인구 중 이들 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2014년을 기준으로 전체의 약 0.1%에 불과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다. 2014년 기준으로 이들 보험사의 판매실적은 각각 879건과 792건으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 김세종 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반려동물보험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반려동물 보험 시장이 반려동물의 증가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보험회사들이 높은 손해율을 감당하지 못해 소비자의 니즈(needs)에 맞는 상품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보험업계의 대비가 매우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는 1929년부터 반려동물 보험 제도를 운영해왔다.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일본의 반려동물 보험 계약 건수는 총 105만 8000여 건으로 2016년 현재까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는 애니콤손해보험과 악사다이렉트 등 10여 개의 보험사에서 반려동물 보험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반려동물보험이 가장 체계적으로 보장된 곳은 유럽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1970년대부터 동물의료보험이 제공돼 왔으며 애완견 3마리 중 1마리가 보험에 가입돼 있을 정도로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영국 역시 애완동물 4마리 중 1마리가 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질병이나 상해는 물론 동물병원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진료나 사망 보험금도 지급한다.
김세중 연구위원은 “보험회사가 적극적으로 반려동물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손해율 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홍보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외국의 사례와 같이 질병, 상해 등 기본적인 담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배상책임, 여행 관련 보장 등 담보 확대를 통한 신상품 개발 노력도 필요하다”고 국내 반려동물보험의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