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전 시장(왼쪽), 박근혜 전 대표 | ||
이번 4·25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극단적인 분열도 유권자들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경선을 앞둔 두 유력 주자 간의 이전투구식 대결 때문이다. 일부 선거구의 경우 대권 주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당 후보가 아닌 상대후보나 무소속 후보를 지원해 양측의 갈등이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대 대권 주자의 정치적 위상을 떨어뜨리고 견제하기 위해 같은 당 후보의 낙선을 유도하는 ‘자해 정치’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지금의 한나라당 모습이다. 이번 선거를 현장에서 직접 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선거 때마다 후보의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당의 방침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경선을 앞두고 당의 ‘빅2’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유력 대권 주자들의 교묘한 줄 세우기와 의도적인 깎아내리기가 횡행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의 잡음은 다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선거 뒤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현재의 내홍은 미래 도약을 위한 생산적인 산고가 아닌 ‘책임을 상대에게 물어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4·25 재보궐 선거 다음 날 한나라당은 즉각 의총을 소집해 대책을 세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는 당 지도부의 즉각적인 사퇴론과, 대안이 없기 때문에 강재섭 대표의 재신임을 묻는 선에서 봉합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전해진다. 지도부 책임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강 대표의 결심에 달려 있다. 강창희 전여옥 최고위원의 사퇴와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의 사퇴, 그리고 이재오 최고위원도 강 대표의 결심 여부에 따라 사퇴를 시사하는 등 경우에 따라 당 지도부가 모두 물러나고 새로운 컨트롤 타워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 재보선 패배 뒤 침통한 강재섭 대표(왼쪽)와 이재오 최고위원. | ||
그런데 문제는 당 밖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빅 투의 갈등과 분열에 있다. 양측의 책임 공방은 박 전 대표의 언론 인터뷰에서부터 비롯됐다. 박 전 대표는 지난 4월 2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과의 공동유세 불발이 패배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그건 민심을 모르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조용히 도우면 되는 일”이라며 “(행정도시 법안과 관련)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분과) 같이 유세를 하면 오히려 표가 떨어지지 않았겠느냐”며 이명박 전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이러한 인터뷰 내용을 전해들은 이 전 시장 캠프는 처음에 귀를 의심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먼저 이 전 시장 캠프는 일단 ‘팩트’부터 바로잡았다. 이 전 시장은 당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서울시장의 대책을 묻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 군대라도 동원해야 하느냐. 그런 문제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시장은 시 살림에 신경 쓰는 것이 본분”이라고 말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전 시장 측은 박 전 대표가 재보궐 선거의 패배 책임을 이 전 시장에게 ‘덤터기’ 씌우려는 의도에 대해 매우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전 시장 주변에서는 “우리가 박 전 대표를 향해 ‘독재자의 딸과 당을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 좋겠느냐”며 박 전 대표를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등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은 정면 대응을 피하면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