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CJ 사옥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공교롭게도 공정위는 CJ헬로비전 매각이 추진되고 있던 시기 이 회장의 동생 이재환 씨가 소유한 재산커뮤니케이션즈가 CJ CGV로부터 내부거래를 통해 수백억 원의 이득을 챙긴 의혹 등에 대해 조사했다. CJ 관계자는 “오비이락”라고 했지만 대기업들의 수많은 내부거래 중 유독 CJ만 겨냥한 것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결과적으로 CJ헬로비전은 매각이 무산되면서 독자 생존의 기로에 섰다. ‘소방수’로 변동식 CJ그룹 총괄부사장을 투입해 활로를 찾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케이블 산업이 저가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IPTV 등 경쟁 사업 모델의 약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출구 전략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NICE신용평가는 8월 23일 CJ헬로비전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그룹 차원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매각 무산에 따른 후유증이 크다”며 “조직 내부 분위기도 위축돼 걱정이 많지만 곧 새로운 사업 동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생활문화 기업을 표방하는 CJ는 식품과 미디어, 홈쇼핑, 물류 사업을 전개하며 지난해 기준 29조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등을 제외한 회계기준(IFRS)을 적용한 매출은 21조 16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사업영역은 식품 부문(8조 2800억 원)이다.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12조 9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외식 사업 등을 영위하는 CJ푸드빌, CJ프레시웨이의 매출을 더하면 그룹 내에서 식품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경쟁 식품업계 관계자는 “CJ는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자본과 마케팅 능력, 브랜드 파워 등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사업 확장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안정적인 ‘캐시카우’로서 그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이 회장이 그룹 ‘미래 먹을거리’로 지목한 바이오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드러냈다. CJ제일제당을 포함한 CJ의 바이오 분야 매출은 지난해 기준 5조 4000억 원이다. CJ 관계자는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의 육류 소비가 늘다보니 사료 시장 또한 커지는 추세”라며 “잠재력이 큰 시장이니 만큼 투자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CJ는 국내외 우량 기업을 M&A하면서 그룹 외연을 확장했다.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보듯 공격적인 투자도 있었다. 현재 대한통운은 CJ제일제당에 이어 단일 계열사로는 가장 많은 매출(약 5조 원)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이 회장의 경영 공백이 생기면서 신규 투자 결정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 CJ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CJ와 여러 차례 M&A 시장에서 맞붙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한통운 인수는 성공적이었으나 이후 M&A에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라며 “M&A는 단기간에 거액이 투자되는 만큼 오너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의 부재는 뼈아픈 대목이었다”고 말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CJ는 지난 5~7월 지분 취득 등의 방법으로 코휘드사료 등 33개 회사를 내부 편입시켰다. 또 CJ는 최근 M&A 시장에 나온 한국맥도날드와 동양매직의 인수 후보로도 거론된다. 이들은 각각 최소 낙찰가만 5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대형 매물’이다. 이와 관련 CJ의 차입 부담이 일부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자금 조달의 한 방안으로 CJ올리브네트웍스가 상장될 수 있다는 관측이 더해진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CJ올리브영 등을 운영하는 유통회사다. 지주사 CJ가 지분 76.07%를, 이 회장의 아들 이선호 씨와 딸 이경후 씨가 각각 지분 15.84%, 4.54%를 갖고 있다.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핵심 계열사로도 언급된 바 있어 이래저래 상장 시기에 관심이 쏠리는 회사다. 하지만 CJ 측은 상장 가능성을 일축했다. CJ 관계자는 “그룹의 현금과 부동산 등 유휴 자산이 충분해 외부 차입은 최소화될 것”이라며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또한 선호 씨가 유학 중이라 아직은 구체화된 것이 없다. 상장 역시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미디어 사업 부문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10%대에 불과하지만 CJ의 주력 사업 부문으로 불린다. 실제 CJ는 CJ E&M과 CJ CGV의 그룹 내 해외 매출 비중을 54%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2020년까지 ‘아시아 넘버원(Number One)’ 문화기업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년간 CJ E&M의 경영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증권업계는 CJ E&M의 올 2분기 영업이익(141억 원)이 컨센서스(156억 원)를 하회했다고 평가했다. 광고 시장의 위축으로 올 3분기 영업이익 또한 전년 대비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10만 원을 바라봤던 주가는 9월 7일 종가 기준 6만 8000원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CJ는 미디어 사업 영역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CJ 관계자는 “이 회장이 예전 드라마 <대장금>을 본 후 한 얘기가 있다. ‘우리가 <대장금>을 만들었다면 저렇게 놔두지 않았을 거다. <대장금>을 통해 한식을 홍보하고, 관련 상품을 만들어 수출했다면 엄청난 경제효과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그룹의 미래는 결국 문화 사업에 달려 있다. 해외에서 유의미한 시장 반응이 나오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