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정피아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로 부실을 방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2008년 이후 대우조선에서 활동한 사외이사는 모두 24명이었다. 대우조선은 이들의 보수로 총 25억여 원을 지급했다. 이사회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렸고, 안건도 고작 2~3건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고액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대우조선이 그동안 선임한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조선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 인사들이었다. 김영일 전 이사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특별보좌관 출신이었고, 이영배 이사는 유정복 인천시장 보좌관이었다. 정동수 전 이사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 재경전문위원을 지낸 인사다. 장득상 전 이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에서 근무했을 당시 측근이었다. 김영 전 이사는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부산시당 선거대책본부 고문이었고, 신광식 전 이사는 18대 대선 박근혜 캠프 경제민주화추진위 위원이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전혁 전 의원도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17대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구 전 이사도 있다. 고상곤 전 이사와 안세영 전 이사는 각각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과 뉴라이트 간부 출신이다. 비록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이었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대우조선 사외이사로 활동했으며, 대우조선으로부터 호화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 형인 송희준 교수도 약 4년간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대우조선 사외이사들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이사회를 개최하면서 3년간 단 1건의 반대 의견도 내지 않았다. 이때 처리한 안건들 중 일부는 대우조선 부실의 한 원인이 됐다. 일례로 이사회는 2009년 ‘풍력사업 추진을 위한 M&A 승인의 건’과 ‘해외(Canada) 지주회사 설립 승인의 건’을 처리했는데, 이사회에서 안건이 통과된 이후 대우조선은 드윈드라는 회사를 인수하고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정부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풍력발전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후발주자였던 대우조선은 해외 풍력발전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이 풍력이 아닌 태양광으로 이동한 데다가 유가 하락까지 맞물리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결국 대우조선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실만 입고 올해 사업을 정리했다.
대우조선 이사회에서는 2011년이 돼서야 반대 표결을 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왔다. 2012년 이사회에서는 반대 표결이 또 나오지 않았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2012년 3월 30일 사외이사로 임명됐는데 2012년 12월 24일 임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거의 모든 안건을 반대 없이 통과시키던 대우조선 사외이사들은 2013년 ‘H안벽 복지 Complex 신축 승인의 건’은 만장일치로 ‘유보’시킨다. 해당 안건은 현장직원들을 위한 종합복지시설을 새로 만들자는 안건이었다. 다음 회의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되긴 했지만 거수기처럼 찬성표만 던지던 사외이사단이 직원 복지 시설을 확충하는 안건에만 만장일치로 유보 의견을 던졌던 것이다. 2013년에도 대우조선 사외이사들은 이 안건 외 모든 안건에는 100% 찬성표를 던졌다.
2013년 사외이사들은 ‘마곡산업단지 R&D 엔지니어링 센터 건립 승인의 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이 사업은 고작 2년 만에 무산되면서 대우조선에 큰 손실을 안겼다. 대우조선이 서울시로부터 2000억 원에 매입한 마곡산업단지 내 부지는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다시 매각 절차를 밟았다. 대우조선의 무리한 투자에 제동을 걸었어야 할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하면서 대우조선의 경영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던 것이다.
2014년에는 이사회에서 치열한 표 대결이 벌어졌다. 안건은 ‘세월호 피해지원 기부금 지급 승인의 건’이었다. 대우조선의 방만 경영에는 거수기 역할을 자처하던 사외이사단이 복지나 기부 등의 안건에는 반대표를 던졌던 것이다. 당시 회의에 이사 5명 중 2명은 아예 불참했고 2명은 찬성, 1명은 반대표를 던지면서 세월호 기부금 지급 안건은 1표 차이로 겨우 통과됐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사외이사들 참석률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이종구 전 이사의 참석률은 33.3%에 그쳤고 조전혁 이사는 57.1%, 이상근 이사는 50%의 참석률이었다. 사외이사들이 대거 회의에 불참하면서 어떤 안건들은 이사 2명이 일괄처리하기도 했다. 당연히 안건에 대한 검토나 검증이 부족했을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오히려 기업의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대우조선의 부실·비리 규모가 더 커진 것”이라며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정치권·금융권·관료 출신 낙하산 투입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