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에 대형 매물이 나오면서 인수합병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중 단연 주목받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사 전경. 일요신문DB
요즘 우리나라 금융권은 대형 장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회사가 매물로 나왔다. 시장에 나온 금융사들의 면면을 봐도 4대 은행 중 하나인 우리은행부터 세계적인 보험사 ING생명, 현대중공업그룹 소속인 하이투자증권 등 하나같이 금융권 판도를 흔들 만한 회사들이다.
이들 중 금융권의 관심을 한눈에 받고 있는 곳은 역시 우리은행이다. 2010년부터 4차례나 시도했던 민영화가 번번이 실패하면서 ‘매각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던 우리은행은 이번에야말로 새 주인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매각작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는 지난 8월 말 회의를 열고 과점주주 방식의 매각 방안을 전격 의결했다. 과점주주 방식이란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51.06% 가운데 30%를 4~8%씩 여러 매수자에게 쪼개 파는 방법이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프리미엄까지 받고 경영권을 통째로 넘기려다 실패를 거듭했던 과거의 방식과 다른 시도다.
현재 우리은행 주가는 1만 원 수준으로, 4%를 사려면 약 3000억 원이 소요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경영권 인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용부담이 덜한 만큼 관심을 갖는 금융사들이 꽤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4~8%로는 당장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지만 향후 나머지 21%를 사들여 주인이 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이미 입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 2일 “우리은행 지분매각 입찰 참여를 검토하고 있지만 확정된 바는 없다”는 공시를 내고 관심이 있음을 공식화했다. 한화생명은 오는 22일 이사회를 열어 투자의향서 접수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교보생명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은행 인수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숙원사업이니만큼 교보는 우리은행 매각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남다른 움직임을 보여왔다. 중국 안방보험이 참여할지도 관심이다. 안방보험은 과거 입찰의향서를 제출했던 유력 인수후보지만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냉각된 한중관계가 변수라는 분석이다.
저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보험권에서는 새로운 제도까지 도입되면서 업계 지도를 다시 그릴 ‘딜’에 불이 붙었다. 보험업에는 오는 2020년 새로운 회계기준이 도입되는데, 새 제도에 맞추려면 수천억 원에서 최대 수조 원대의 자본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외국계 일부 보험사들은 아예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은행 소속 보험사는 매물로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보험사 중 하나인 독일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은 이미 35억 원이라는 헐값에 중국 안방보험에 팔렸고, PCA생명·ING생명·KDB생명은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PCA생명은 현재 미래에셋생명이 적격후보로 선정돼 인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하지만 홍콩계 사모펀드(PEF)인 액셀시아캐피탈이 뒤늦게 인수 참여 의사를 표명하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PCA생명은 국내 시장에서는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보험권에서는 알짜 매물로 꼽히는 회사다. 저금리가 이어지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큰 저축성보험보다 장기계약인 변액보험 위주로 영업을 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고 있어서다. 또 해외투자 등 자산운용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진 미래에셋생명은 PCA생명 인수를 통해 중상위권 보험사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생명은 PCA생명을 인수할 경우 자산규모가 30조 원을 넘어 업계 5위권으로 올라선다.
ING생명은 독특한 매각방식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경매’를 통해 ING생명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1차로 일정 금액 이상 제시한 인수후보를 골라낸 뒤 이들을 대상으로 호가경쟁을 붙여 최고가를 제시한 곳에 팔겠다는 것이다. 기존 M&A 시장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방법이지만 ING생명의 위상에 걸맞게 이미 중국계 푸싱그룹과 타이핑생명, ID캐피털 등이 입찰 참여 의사를 표명하는 등 인수전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 중구 ING생명 본사.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ING생명을 호가경쟁 방식으로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요신문DB
네덜란드계 글로벌 보험사인 ING생명은 우리나라 생보업계 ‘빅5’에 들 정도로 탄탄한 영업망을 갖춘 회사여서 어떤 곳이든 인수에 성공할 경우 단숨에 국내 보험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다.
산업은행 계열인 KDB생명은 새 주인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주주인 산은은 KDB생명을 판다는 방침만 세웠을 뿐 아직 구체적인 매각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KDB혁신위원회를 통해 9월 안에 ‘KDB혁신로드맵’을 확정한 뒤 다음 달에는 매각 방안을 발표할 전망이다. 문제는 KDB생명 정상화 작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800억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추가 증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시장점유율도 미미한 상황이어서 마땅한 인수자가 나설지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권가도 M&A 이슈로 들썩이고 있다. 미래에셋에 인수된 옛 대우증권, KB금융그룹 품에 안긴 현대증권에 이어 LIG투자증권도 주인이 이미 케이프인베스트먼트로 바뀌었다. 또 리딩투자증권도 최근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CKK파트너스를 선정했다.
여기에 하이투자증권이라는 대어가 등장하면서 업계 판도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이 자금난에 빠지면서 M&A 시장에 나온 하이투자증권은 자기자본 규모가 7000억 원가량인 대형 매물이다. 최근 정부가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을 발표한 만큼 3조 원대 자기자본을 보유한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2조 원대인 신한금융투자 등이 인수후보로 거론된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이미 “자기자본 확대를 위해 하이투자증권 인수 등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고, 삼성증권도 저울질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덩치를 키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실익이 없어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업이 다소 살아났다고는 해도 아직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라며 “하이투자증권의 경우 자기자본 규모만 고려한다면 M&A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 위해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붓기에는 위험이 크다”고 전했다.
대주주인 ㈜SK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매각 대상 후보가 된 SK증권도 그다지 매력이 많지 않다는 평가다. 업계 하위권인 데다 자기자본 규모도 크지 않아 딱히 메리트가 부각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