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추미애 더민주 대표 등 여야 새 지도부의 호남구애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일요신문DB
[일요신문] 최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새 당지도부를 출범시켰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여당 사상 첫 호남 출신 이정현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반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당 대표체제를 띄웠다. 두 신임 당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첫 행보로 호남구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의 행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호남판세’ 흔들기다. 이에 따라 올해 추석연휴에는 이정현 대표의 서진전략 선언과 ‘친문’ 간판 추미애 체제 출범에 대한 지역민의 분분한 시각이 단연 ‘추석 식탁’에 올라오는 뜨거운 감자일 것이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호남민심의 풍향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추석 정담(政談)’의 화두를 미리 살펴봤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서진전략’으로 호남민심 파고들기를 선언했다. 일요신문DB
# 이정현 ‘서진전략’ 선언...“어처구니 없는 소리 vs 마냥 무시할 일 아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던진 ‘호남홀대 사과’와 ‘호남 연대론’은 올 추석 정담의 중심화두 중 하나다. 그는 ‘호남 구애’를 호남 차별에 대한 사과와 호남과의 화해로 풀어냈다. 그는 보수정부가 호남을 차별한 데 참회하고 사과한다고 했다.
지역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사과를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호남공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남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이 대표가 호남의 정서를 감안해 사과와 화해를 했고, 이를 계기로 호남민심을 껴안는 서진(西進)전략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도란 분석이다.
호남에서 야당이 둘로 쪼개져 있고, 내년 대선에서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도 이 대표가 ‘호남역할론’을 강조하며 새누리당과의 연대·연합론을 펼치는 근거로 보인다. 그는 “호남이 당장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다고 해서 변방정치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며 내년 대선에서 ‘호남역할론’을 강조했다.
새누리당과 연대·연합하면 내년 대선 승리로 주류 정치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호남의 득표율을 20% 이상 끌어올려 대선에 승리하겠다는 ‘호남발 대선승리’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대표가 오로지 정치 공학적으로 대선을 염두에 두고 사과를 했다면 호남인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 발언이 알려지면서 광주·전남 시도민들은 “어처구니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다수의 반응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역민들의 시큰둥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새누리당은 어디까지나 광주를 총칼로 제압한 민정당의 후신일 뿐이라는 저변에 깔린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야권도 호남민심을 염려해 이 대표의 이날 발언에 대해 현실성 없는 언어 유희적 발상에 불과하다며 선을 긋고 나왔고, 지역정가도 ‘호남구애‘를 위한 상징적 제스처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표정이다. 이 때문에 호남민심을 얻기 위해 추가적으로 진정성 있는 실행 플랜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이 대표가 제기한 ’연대·연합론‘은 추석연휴를 거치면서 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연대에 대한 얘기가 학계에서 조심스럽게 감지되고 있다. 오승용 전남대 연구교수는 지난 7일 방영된 KBS광주방송 시사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단순한 호남구애용 립서비스가 아니다.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문제”라며 사안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그는 “지역연대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다만 새누리당이 정책변화를 통해 연대의 알맹이를 영호남이 공히 안고 있는 계층 간 격차와 복지문제 등으로 채울 경우 성사 가능성과 파괴력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대표의 주장을 마냥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가 지닌 ‘뜻밖의 승부사’ 기질 때문이다. 이 대표가 독특한 정치행보로 때때로 ‘무모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는 소신을 끝까지 고집, 집권여당의 당 대표로 등극했다. 전남도의회의 한 의원은 ”야권 대선주자가 공정한 경선을 통해서 나오지 않거나 특정인에게 집중된다면 호남의 일부 표심이 흔들릴 수도 있다“며 ”특정인이 야권에서 독주하는 사이 새누리당 이 대표가 지속적으로 호소할 경우 과거처럼 90% 이상 야권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나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호남정신을 강조한 추미애 더민주당 대표가 호남의 반문 정서를 뛰어넘을지 주목된다. 일요신문DB
# 추미애 대표체제 출범…호남지지세 회복 시험대-입다문 지역민심 ”이제 제 갈길 가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체제 출범은 추석 연휴 인구에 회자될 흥미로운 정치 현안이다. 수도권은 야권 지지층으로, 영남과 충청은 여권 지지층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추 체제의 파급력에 따라 호남의 전략적 선택은 호남에서의 반문정서 극복을 넘어 차기 대권 승부를 결정짓는 변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친문과 반문 정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민심 추‘가 추석연휴를 거치면서 어느 쪽으로 기울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추 체제가 당면한 첫 시험대는 호남 지지세 회복 여부다.
추 신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이른바 ’친문(親文)‘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우뚝 선 뒤 분당사태 당시에도 당을 지켰던 ’친문‘의 간판이다. 지역정가는 친문을 등에 업은 추 대표의 당선이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나아가 당대표가 대선 주자 1위이자 야권의 간판인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문제는 호남이다. 호남은 반문 정서를 내세우며 지난 4·13 총선에서 인물이 아닌 정당 투표로 국민의당의 손을 들어줬다. 이 정서가 크게 바뀔 만한 급변사태도 없었고 현재 바뀌었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추 대표 당선으로 호남은 더욱 입을 다물고 있는 형국이다. 그 이면에는 무언가 해석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4·13 총선 전 새정치민주연합을 바라볼 때 시선과 흡사하다.
추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광주와 전남북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강조한 점은 호남정신이었다. 스스로 당의 뿌리인 호남을 지키는 대표가 되겠다고 호언했다. 직접 호남특위위원장을 맡아 예산과 인사에서 호남의 당내 위상을 강화하고 호남의 목소리를 당 운영에 적극 반영할 것도 천명했다. 당 대표의 월 1회 호남 방문을 정례화해 호남 현장의 민원청취와 의견수렴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뿐만 아니다. 호남발전을 위한 정책실현 강화 차원에서 민주정책연구원 분원을 호남에 설립, 지역발전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호남경제 활성화 및 발전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말만 들어도 뿌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호남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광주·전남 지역정가는 ”그게 과연 우리를 위한 일인가“라고 되묻고 있다. 추 대표의 호남민심 회복 뒤에는 문 전 대표 지지율 상승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고 있어서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이제 당대표가 선출됐으니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미 더민주 대선주자 경선 결과는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나올 여론조사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짤막히 대답했다.
또 다른 지역정가 관계자는 ”부·울·경만으로 가능하다는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이 추 대표가 호남 눈치 보는 것을 과연 가만 두고 볼까 의심스럽다. 결코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호남을 빼고 그들만의 고집대로 할 거라면 서로 갈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전남대 오 교수는 ”추 대표 당선 이후 더민주에 대한 호남의 지지는 분기점이 생길 것 같다“면서 ”반문 정서가 강한 호남으로부터 어떻게 지지를 이끌어낼 지 고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