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 등 조선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금융사는 담보나 보험가입 없이 대기업 계열사라는 이유로 보증 등을 일삼다 부실책임마저 떠안을 지경이어서 비난이 예상된다. 특히, 2009년 수천억대 보증 사고 이후로도 관련 규정조차 없이 방치되어 있어 금융사에 대한 관리감독이 시급해 보인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진행된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에서 조선사의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보증 은행 절대다수가 RG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리스크 관리가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된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RG보증 금융사 대부분도 RG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채 의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2010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포함하여 6개 금융사에서 371건의 RG를 발급한 반면, RG보험 가입은 371건 중 단 한 건도 없었다.
같은 기간 STX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포함한 7개 금융사(농협, 국민, KEB하나, 신한, 우리 등)에서 247건의 RG를 발급했고 이 역시 대부분 RG보험 미가입상태다. 특히 STX 조선해양의 경우 25건(10%)에서 부실이 발생해 은행이 선수금을 대지급했는데 RG보험을 가입하지 않아 은행들이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들 은행의 RG보증은 대부분 담보 없이, 신용으로 발급되어 금융회사 업무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와 ‘자산건전성 확보’에 소홀한 것은 또 다른 비리 의혹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RG보증이란 선주가 선박을 주문하면서 건조 비용 일부를 조선사에 미리 지급하는데(선수금), 이 선박이 정상적으로 인도되지 못하는 경우 조선사를 대신해서 금융사(은행)가 선주에게 선수금을 지급하는 안전장치를 말한다.
금융사는 조선사로부터 RG발급에 대한 수수료를 받고 보증을 서며, 은행들은 RG발급에 따른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RG보험에 가입하고, 다시 보험사들은 재보험에 가입해 지급 보증 책임을 분산하는 것이 정상적인 RG보증 구조라는 설명이다.
은행들은 “조선사들이 대기업 계열사라는 점과 RG발급 전 신용평가를 통해 신용공여가 적절하다고 이미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담보를 설정하지 않고, RG보험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앞줄 오른쪽) 등 참고인들이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에서 질의와 관련해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은행연합회의 <선박건조선수금환급보증 업무처리기준>에서도 건조 중인 선박에 대한 양도담보의 취득 등 채권보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담보없이 신용만으로 RG를 발급하고 RG보험도 들지 않은 것은 금융사의 선택사항이지만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금융사의 적절한 업무수행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채이배 의원은 “부동산 전세 계약을 할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백만원을 들여 전세금 보증 보험에 가입한다”면서, “선박 건조는 수천억원의 돈이 오가는 계약인데, 은행들이 아무런 사전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또한, 은행뿐 아니라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여부도 지적했다. 2008년 이후 조선사 부실화 과정에서 이미 RG보험으로 인한 은행과 보험사 간의 갈등이 있었고, RG보험을 운영한 흥국화재보험과 한화손해보험이 부실한 보험사에 재보험을 가입하여 재보험금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당시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하여 2011년 흥국화재에 대해 제재를 한 바 있으나, 감독당국은 그 이후에도 RG보험에 대해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셈이라는 비판이다.
채 의원 역시 “금융감독당국이 지금까지 발급된 RG보증에 대해 담보설정 여부를 포함, 채권보전조치의 적정성 전수조사에 착수할 것과 그밖에 제도적 보완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조선사 등에 막대한 금융지원 과정에서의 특혜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데다 조선사 부실경영 위기가 이미 수년전부터 예상된 가운데 금융사 및 금융당국이 공적자금이나 손실액을 대기업이나 부실기업 등에 역보증하는 행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비리 의혹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