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들의 악플에 대한 고소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악플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와 패소가 엇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 이는 법이 판단하는 공인에 대한 악플의 허용 범위와 처벌 이유,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네티즌들과의 ‘악플 소송’에서 패소한 강용석 변호사의 경우를 보자. “가지가지 육갑, 꼴값으로 산다고 고생 많다” “그러려고 법 배운 건 아닐 텐데” “냄새난다, 근처에도 가기 싫다” 등등. 지난해 9월, 불륜 의혹으로 한 차례 곤욕을 겪은 강 변호사가 자신의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단 게시자 200여 명을 무더기로 고소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강 변호사는 이들 댓글 게시자 13명 가운데 5명을 상대로 같은 해 12월 한 사람당 150만 원씩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최근 패소했다.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단독 박강민 판사는 강 변호사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막연한 표현만으로는 강 변호사의 기분을 다소 상하게 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할 뿐, 그 정도가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명예를 해쳤다고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공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표현의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즉, 이번 사건 패소에는 강용석 변호사가 방송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공인’의 신분이고, 네티즌들이 댓글을 작성한 강 변호사의 고소 사건이 공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연예인이나 국회의원 등 널리 알려진 공인에 대한 인터넷 댓글로 명예훼손 또는 모욕으로 피소되는 경우는 ▲허위사실을 적시했을 경우 ▲사실을 적시했으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사실과는 관계없는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적은 댓글이 허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댓글 작성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 사실을 적시했으나 명예훼손으로 판단될 경우는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익을 위해 적시됐다고 볼 수 없는 경우 혐의가 적용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명예훼손이 적용되는 ‘사실 적시’는 개인의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나 진술을 의미한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는 뉴스 기사 등에 게시되는 댓글은 네티즌들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견해가 담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사실 적시 또는 허위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보다는 ‘모욕’의 혐의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강 변호사가 고소한 5명의 경우 법원은 강 변호사의 행실에 대한 풍자나 비판의 성격을 띤 댓글을 작성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일 뿐 공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킬 정도로 지나친 모욕이라고는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 7일, 가수 린·이수 부부의 기사에 악플을 달아 모욕 혐의로 형사 기소된 20대 여성에게는 혐의가 인정돼 벌금 70만 원이 선고됐다. 이 여성은 지난해 9월 한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린·이수 부부 기사에 “끼리끼리 논다더니…같은 수준이라 천생연분일 듯”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린·이수 부부는 지난해 가을부터 모욕적인 댓글을 작성하는 악플러들을 대거 고소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린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애초에 남편이 잘못한 일이 있었고 그것 전체를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적시를 포함한 명예훼손, 도를 넘은 인신공격에 제 부모님 욕, 아직 있지도 않은 아이를 상대로 한 내용에는 법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고소 배경을 밝혔던 바 있다.
앞서 이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복무 중이던 2009년 당시 16세였던 미성년자를 성매수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그에게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2010년 5월 성범죄재범방지교육 존스쿨 이수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들 부부와 관련한 포털사이트 기사는 물론 개인 SNS에까지 부정적인 여론과 악성댓글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변호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이들 부부에 대한 비판의 성격을 띤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댓글에 모욕 혐의가 적용된 것은 사실이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인 판단이나 경멸적인 감정이 표현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댓글이 피해자의 인격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
유사한 사건에서 다른 판결이 내려진 점에 대해 인터넷 악플 피해자들의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비영리사단법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추상적인 표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법관마다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댓글이 작성된 배경과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 현재 처한 개인적인 상황 등을 다각도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강 변호사의 네티즌 무더기 고소 기사를 토대로 작성된 “강용석 꼴값”이라는 댓글은 강 변호사의 기분을 조금 상하게 하는 데에 그칠 뿐 그의 사회적 평가와 지위를 저하시킬 만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기사와는 관련 없이 이수의 과거 성매매 혐의와 관련해 이들 부부에 대해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한 “끼리끼리 논다”는 댓글은 모욕 혐의가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전 소녀시대 멤버였던 제시카도 자신에 대해 사실 적시 없이 성적으로 비방하는 댓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악플러 2명을 모욕 혐의로 고소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가족을 보좌관과 인턴으로 채용한 사실이 밝혀져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던 무소속 서영교 의원이 자신과 관련한 허위 댓글을 단 네티즌 31명과 인터넷 언론 1곳을 명예훼손 및 모욕 등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인터넷 상에서의 인격권 침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공인들이 직접 고소 전선에 나서 ‘무관용의 원칙’을 보여줌에 따라 건전한 인터넷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순히 인터넷 댓글이 당사자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한 고소가 이어진다면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손지원 변호사는 “공인들과 관련한 비판 댓글도 악플로 판단할 경우,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비판 여론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의 자연스러운 여론이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라며 “최근에는 이를 이용해 합의금 장사에 나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명확한 명예훼손이나 모욕 혐의가 적용될 수 없는 비판에까지 족쇄를 채우면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