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보카>의 저자 신영준씨와 지난 9월 6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이종현 기자
―대한민국 취업준비생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삼성맨’ 출신이다. 게다가 공학박사, 연구원이었다. 단어장을 만든다고 갑자기 그만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저는 공부 자체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어떻게 하면 영어를 더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궁리했죠. 그러다가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제대로 된 통계 기반 단어장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500권을 자가 출판했어요. 그런데 이걸 SNS로 본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거예요. 그렇게 초판 500권이 모두 팔렸어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니 출판사에서도 제대로 한 번 써 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드디어 이걸 쓰면서 청년 상담과 그동안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싶어서 작가와 강연가로 전업을 결정했어요.”
―영어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국내에는 이미 수많은 영어 교재, 뛰어난 교육자와 개발자가 많다. 그런데도 왜 ‘빅데이터 기반’ 단어장은 처음인건가.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아도 팔리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사실 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본다면 어떤 단어장을 봐도 상관없죠. 근데 한 권을 완주하는 사람은 20%도 채 되지 않아요. 대부분은 중도에 포기하죠. 문제는 보통 교재는 한 권을 마스터하는 완벽한 학습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에요. 물론 시중에 이미 우선순위 별로 정리했다는 단어장은 있지만 진짜 통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어요.”
―우리나라는 영어에 투자한 것에 비해 성과가 썩 좋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착각하는 게 말은 어느 나라 사람도 모국어가 아니면 썩 잘하기가 힘들어요. 유럽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유럽은 문자가 알파벳이랑 거의 비슷해서 영어로 말하는데 거부감이 적죠. 대신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인이나 유럽인에 비해 중국어나 일본어를 잘해요. 언어가 비슷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잘해야 하는 건 ‘읽기’예요. 담당한 업무가 마케팅이나 세일즈가 아닌 이상 영어가 필요한 건 원문을 읽어야 할 때잖아요. 논문도 대부분 다 영어로 써있죠. 그런데 그렇게 영어공부를 했는데 대기업에도 영어로 정보습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신영준 씨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인생공부’의 페이지 좋아요 수는 21만 5000개가 넘는다. 사진=페이스북 화면 캡처
―‘인생공부’의 인기도 대단하다.
“페이스북에 가벼운 콘텐츠들이 많은데 좀 제대로 된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실험설계를 잘한 거 같아요. 어떤 콘텐츠가 성공하고 실패를 하는지 정량적으로 철저히 분석했어요. 실패한 콘텐츠는 보완해 가면서 성공하는 콘텐츠를 계획적으로 만들어 냈죠. 물론 최고 전문가들만 모셨기 때문에 콘텐츠 자체도 ‘고퀄리티’예요. 자체 제작 콘텐츠가 많기도 하고.”
―SNS,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멘토링, 강연 등을 통해 자주 청년들과 만나는 것 같다.
“온라인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뭔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하나도 일어나는 게 없는 거예요. 결국 현실은 오프라인이죠. 그래서 페이스북을 도구로 청년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어요.”
신영준 씨는 청년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분리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제 딸이 살아가는 세상에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다예요. 이전에도 이렇게 말하니 다른 아이 아빠들도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고 했어요. 자기는 자기 딸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다 세상을 욕하는데 누군가는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욕하는 건 좋아요. 그러나 욕하는 동시에 세상을 위해 하는 일도 있어야 해요. ‘당신도 20년 후에 기성세대가 될 텐데 그때 20대들이 당신을 헬조선을 만든 사람이라고 욕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고 싶어요.”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문화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과 의견을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는 자동화 때문에 줄어들고 인구는 2050년에 99억 명이라고 할 정도로 늘어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헬월드’가 돼가고 있는 거죠.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은 ‘부정’, ‘비리’ 이런 거예요. 그건 헬조선이 맞지만 모든 문제를 그렇게 설명하는 건 문제가 있죠.”
―당신이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분리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많이 질문하는 것이 ‘전도유망한 분야가 무엇이냐’는 거예요. 그런 건 없어요. 이제 우리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더 빨리’ 그리고 ‘더 잘’ 하는 수밖에 없죠. 그걸 인지하고 더 훌륭한 청년들이 되어야 해요. 저는 힘껏 도와 줄 겁니다.”
김태현·박혜리 비즈한국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