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나온 폭스바겐 1세대 골프 GTI는 ‘핫 해치’의 시초로 불린다.
# 적재공간 자유자재, 실용성이 장점
‘해치(hatch)’는 위로 젖히는 문을 뜻한다. 비행기 조종석에 들어가기 위해 해치를 젖히는 것과 비슷하다. 해치백(hatch back)은 후미가 해치로 돼 있고, 이를 젖히면 사람이 실내로 드나들 수 있어 하나의 문으로 간주해 3도어 또는 5도어라고도 한다. 현대차 i30, 기아차 프라이드 해치백, BMW의 미니(Mini)가 이에 속한다.
해치백의 장점은 실용성이다. 해치를 열면 실내와 연결되므로 뒷좌석을 접으면 큰 적재공간이 나온다. 세탁기나 서랍장 등 소형가구를 옮기기 용이하다. 세단도 트렁크에 짐을 실을 수는 있지만 짐이 많을 경우 양쪽 도어를 열고 시트 위에 짐을 적재해야 한다. 싣고 내리기 불편하고 시트가 더러워질 수 있다. 대신 해치백은 후방 추돌 시 충격을 흡수할 트렁크가 없기 때문에 안전에는 다소 취약하다.
해치백의 상대어로 쓰이는 말은 노치백(notch back)이다. 후미의 트렁크가 별도로 구분되는, 흔히 보는 세단형 차를 말한다. 트렁크를 통해 사람이 실내로 들어가지 못하므로 2도어 또는 4도어가 된다.
트렁크가 돌출되지 않으면서 루프에서 트렁크까지 지붕이 완만하게 기울어지는 차량은 패스트백(fast back)이라고 한다. 현재 판매되는 한국GM의 크루즈5(5도어)나 포르셰911을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에 나오는 현대차의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와 같은 세단들은 트렁크의 돌출이 최소화되고 루프가 완만하게 트렁크를 덮는 ‘세미 패스트백’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도 따지고 보면 뒷문이 해치지만, SUV는 노치백 스타일이 따로 없으므로 해치백이라는 구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경차도 형태는 해치백이지만 특별히 해치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핫 해치’라는 말은 고성능 엔진을 장착해 경쾌하고 빠르게 달리는 해치백 자동차를 말한다. 해치백은 세단보다 품격이 낮아 보이고 실용성을 위해 타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폭스바겐이 골프에 성능 좋은 엔진을 얹으면서 핫 해치의 시대가 시작됐다. 일종의 역발상이다.
1976년 6월 110마력의 강력한 엔진에 독일 아우토반 1차선을 시속 182㎞로 내달리며 데뷔 첫 해 목표 판매대수의 10배인 5만 대 이상 판매한 1세대 골프 GTI가 핫 해치의 원조로 알려진다.
스포츠 주행을 하기에는 해치백이 아무래도 세단형보다 불리하다. 뒤가 짧으므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곡선주로에서 후미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또 공기가 자연스럽게 트렁크로 흐르지 못해 후미에서 급격하게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되므로 공기저항이 크다. 대부분 해치백에는 공기흐름을 좋게 하기 위해 리어 스포일러가 장착돼 있다.
내부 뼈대(섀시)를 살펴보면 세단의 경우 트렁크 경첩부위 안쪽에 좌우 측면을 연결하는 바(bar)가 있는데, 해치백에서는 이것이 없다. 즉 후미의 중간높이에서 좌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할 부품이 없다. 폭스바겐은 기본적인 차체 강성을 높임으로써 핫 해치를 내놓을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핫 해치는 자동차공학의 진화에 따른 결과물이라기보다 문화적 상상력으로 만든 팬시상품에 가깝다.
폭스바겐 골프가 배기가스 조작 파문으로 주춤한 사이 현대차는 i30로 ‘핫 해치’의 왕좌를 노리고 있다.
# 현대차 i30 고급화 전략 시동
3세대 i30를 보면 국내 핫 해치를 주도하려는 현대차의 야심이 엿보인다. 스펙만 놓고 봐도 굉장히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섀시 강성에 공을 들였다. i30는 향후 현대차 고성능 버전인 ‘N’ 브랜드의 첫 차가 될 전망이다. 내년 출시가 예상되는 i30N(가칭)에는 2.0 가솔린 터보를 장착해 300마력 이상의 최대출력을 내뿜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에 걸맞은 차체를 별도로 개발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지금의 차체는 굉장히 강성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차체가 단단해야 고속으로 달릴수록 안정적이고 진동이 없다.
추가로 예상되는 점은 2.0 가솔린 터보가 나온다면 현대차 최초로 ‘2.0 가솔린 터보+7단 DCT 변속기’ 조합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쏘나타 2.0 가솔린 터보 모델에는 6단 자동변속기가 달려 있다. 현재 출시된 i30에는 1.4 가솔린 터보, 1.6 가솔린 터보, 1.6 디젤의 세 가지 엔진이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1.4 가솔린 터보는 현대차가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것으로 7단 DCT와 조합을 이룬다.
i30는 아반떼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 모델이지만 세단형 아반떼보다 가격대는 높게 설정하는 고급화 전략을 추구했다. 아반떼 최저가는 1410만 원, 신형 i30 최저가는 1910만 원으로 i30가 500만 원 비싸다. 아반떼 최고가는 2455만 원, i30 최고가는 2510만 원이다(추가선택사항 제외 시). i30 구매자라면 가격보다 상품성을 먼저 볼 것이므로 최저사양을 내놓지 않고 중급 이상의 사양을 내놓은 것이다.
기아차의 신형 프라이드는 가성비 높은 해치백으로 기대된다.
기아차에서는 9월 1일 프라이드 해치백 외관을 공개했다. 실물은 9월 29일 열리는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할 예정이며, 국내 출시는 내년 말이다. 폭스바겐 폴로와 비슷한 듯 보이는데 헤드램프 형태도 이런 느낌에 기여하지만, 결정적으로 측면 캐릭터라인이 곡선 없이 일자형으로 쭉 뻗은 스타일이 유사해 보인다.
현 세대 프라이드는 차체가 가벼워 시속 150㎞까지도 자유자재로 가속할 수 있어 ‘기대 이상’이라는 인상을 받은 바 있다. 현대·기아차는 신형 프라이드의 엔진라인업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이 회사들의 행보를 보면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는 차가 나올지 모른다.
이 외에도 국내업체들로부터 나오는 해치백은 현대차 엑센트 유로, 한국GM의 크루즈5가 있고, 수입차 중에서는 푸조 308, 폭스바겐 골프, 미니 쿠퍼, 볼보 V40,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 아우디 A3 스포트백, BMW 1시리즈 및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 인피니티 Q30(출시 예정), 렉서스 CT200h, 시트로엥 DS3 등이 있다. BMW 1시리즈는 후륜구동으로 ‘싸고 실용적인’ 해치백과는 성격이 멀어 굳이 ‘핫 해치’로 불리지는 않는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