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통해 김재수 장관이 대학 동창회 SNS에 올렸다고 하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모함과 음해, 정치적 공격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 어떻게 장관이 될 사람이 걸러지지 않은 그런 생각을 SNS를 통해 유포할 수 있을까. 걸러지지 않았으나 분명 선동의 의도가 있는 글이라는 느낌을 가진 것은 다음이었다.
“시골 출신의 지방학교를 나온 이른바 흙수저라고 무시당한 것”이란 표현! 나 김재수만 무시당한 것이 아니라 동창들 너희도 그들에게 무시당한 것이니 함께 분개하자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의 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농협의 특혜 대출 의혹, 황제 전세 의혹이었다. 아예 제기된 적도 없는 논점을 가지고 자기 문제를 회피하면서 아직 생기지도 않은 힘에 의존해 힘을 모으려 하는 것, 하수의 방법이다.
물론 그가 경험한 청문회가 그에게 얼마나 모멸적이었는지 이해는 됐다. 사실 청문회에서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제 청문회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교통위반 딱지 몇 건인 것까지 문제 삼는 청문회, 몇 십 년 전 일까지 끄집어내서 야단만 치는 청문회는 안했으면 좋겠다. 청문위원 비위 건드리지 않으려고 반성하는 척, 겸손한 척 굽신굽신, 무늬만 경청인 청문회,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청문회는 진짜 안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이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이름을 얻는 일,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된다한들 그것이 오래 가지도 않고, 거기에 행복이 머무는 것 같지도 않다. 절대반지는 빛나는 만큼 위험하고 강한 만큼 ‘나’를 왜소하게 한다는 것을 반지의 제왕에서 배우지 않았나. 아니, 높은 데서 추락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뉴스들이 매일매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삶은 정직하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높은 벼슬도, 많은 재물도, 드높은 명예도 아니다. 그 모두를 통과하면서 넘어지고 깨지고 울고 쓰러지고 부딪치면서 자기의 아만심을 만나고 돌아보는 일, 그것이 되지 않으면 얻은 만큼 오만해지고 잃어버린 만큼 억울해하거나 비굴해질 뿐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