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에 주최국 한국은 32명이 출전하는 본선에 겨우 8명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전기 상위 성적자와 국가별 시드를 통해 이세돌 9단, 박정환 9단, 강동윤 9단, 이동훈 9단, 신진서 6단이 본선행 시드를 받았지만 16명을 선발하는 통합예선에서는 겨우 3명(변상일 5단, 강승민 5단, 정대상 9단)만이 살아남았다.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32강전에서 이세돌 9단(오른쪽)이 중국의 랴오싱원 5단의 추격을 따돌리고 16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한국, 8명 중 7명이 16강에
반면 라이벌 중국은 14명이 통합예선 관문을 뚫어, 시드자 5명을 포함하면 무려 20명이 본선 무대를 점령했다. 이쯤 되면 이 대회가 어느 나라 주최 대회인지 헷갈릴 정도.
만리장성을 넘어 불어닥친 중국 발 황사가 워낙 맹렬했기에 대회를 앞두고는 걱정도 많았다. 박정환, 이세돌 등이 건재하지만 중국은 기존 강자 커제, 스웨, 탕웨이싱에 대회 직전 일본에서 열린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리친청 등 신예들의 기세도 등등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나 “‘허리’에선 중국에 밀릴지 몰라도 ‘머리’에서만큼은 해볼 만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바둑은 버텨냈다. 아니, 버틴 정도가 아니라 출전선수 8명 중 노장 정대상 9단을 제외한 전원이 곳곳에 박혀있는 중국 이름을 지우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 최종 숫자는 한국 7명에 중국 9명이었지만 내용상으론 완벽한 한국의 승리였다. 32강전은 더블 일리미네이션(4명이 한 조를 이뤄 2승자와 2승1패자가 16강 진출)방식으로 치러졌는데 첫날 6승 2패로 순조롭게 출발한 한국은 7일 열린 둘째 날 경기에서 강동윤 9단, 이동훈 8단, 신진서 6단, 강승민 5단 등 4명이 2연승으로 조기에 16강 진출을 결정지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패씩을 안고 마지막 날 출전한 3명이 모두 승리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썼다. 랭킹1위 박정환 9단이 샤천쿤 4단에게 흑 불계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이세돌 9단이 역시 중국의 랴오싱원 5단의 추격을 따돌렸고, 막내 변상일 5단도 일본의 이치리키 료 7단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마지막 남은 16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16강 진출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이창호과’ 이동훈에 기대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던 통합예선전과는 정반대의 양상.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도 좋았다. 무엇보다 신구세대가 적절한 비율을 보인 것이 반갑다. 이세돌, 박정환, 강동윤 등 기존 강자에 신진세력 이동훈, 신진서, 변상일, 강승민이 더해져 최상의 조합을 이뤘다.
이동훈은 A조 두 번째 대결에서 중국랭킹 2위 스웨를 꺾고 1위를 차지했고, 강동윤은 커제에게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며 E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박정환과 이세돌은 마지막 3라운드까지 가는 등 고전했지만, 결국 중국세를 따돌리며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강승민 5단이었다. 통합예선전 1회전에서 김지석을 꺾은 강승민은 첫 판에서 난적 탕웨이싱을 만나 고전이 예상됐지만 222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94년생인 강승민은 현재 국내랭킹 38위에 머물러 있지만 일찍부터 촉망받던 유망주. 한동안 잠잠하더니 삼성화재배에서 모처럼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강자에 강한 스타일이어서 최근 열린 한국바둑리그에서는 강동윤을 꺾으며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더블일리미네이션 3라운드를 마치고 곧장 16강 토너먼트 대진추첨에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이동훈 8단-커제 9단의 대결에 관심이 쏠린다. 커제는 이세돌 9단과 스타일이 비슷한 재주형 바둑이라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이동훈에게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나이도 이동훈이 한 살 어리고 스타일도 이동훈은 이창호 9단에 가까운 유형이라 커제와는 상극이다. 역대전적에서도 3승 2패로 이동훈이 앞서고 있다.
이 밖에 박정환 9단은 노장 위빈 9단을 만나게 됐고 이세돌 9단-퉁멍청 5단, 강동윤 9단- 퉈자시 9단, 신진서 6단-판윈뤄 4단, 강승민 5단-탄샤오 7단, 변상일 5단-저우루이양 9단, 탕웨이싱 9단-판팅위 9단이 8강 티켓을 놓고 다투게 됐다.
전반적으로 대진이 잘 짜였다는 평가. 한 삼성화재배 관계자는 “한국 기사들의 본선 진출 숫자가 워낙 적어서 걱정했는데 16강전에서 균형이 맞을 줄은 몰랐다. 대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우승자 커제를 이동훈이 맡게 된 것도 고무적이고, 한국 기사들이 까다롭게 생각하는 탕웨이싱과 판팅위가 16강전에서 만난 것도 왠지 한국 쪽에 행운이 따르는 느낌”이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화재배 본선 16강전은 10월 4일 대전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열린다. 8강전은 10월 6일 이어질 예정. 2016 삼성화재배의 총 상금 규모는 8억 원, 우승상금은 3억 원. 16강에 오르면 1250만 원의 상금이 확보되며 32강 탈락자에겐 750만 원(1승2패자)과 500만 원(2패자)이 지급된다. 대국은 중간에 휴식 없이 각자 제한시간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