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식욕억제제.
대마초나 필로폰, LSD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마약에 비해 마약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약품들이 사회 감시망을 피해 비교적 느슨하게 유통되고 있다. 구매자들 역시 별다른 경계심이 없다. 환각과 강한 중독성이 특징인 마약과 달리 용도 자체가 식욕억제제 또는 수면제로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또 중독성이나 의존성은 작은 부작용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마약류 식욕억제제나 수면제의 경우 역시 장기간 복용 시 극심한 부작용이 따른다. 최근 사건에서 이슈가 됐던 펜터민의 경우는 3개월간의 단기 처방만 가능한 약품이다. 장기 복용 시 심한 불안감, 우울증 등 중추신경계의 이상반응은 물론 폐동맥 고혈압, 심장판막 질환 등 심각한 질환 유발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에는 살을 빼기 위해 펜터민을 과다 복용한 30대 여성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여성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이었다. 이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장기 또는 다량 복용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사망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펜터민을 구매하지 못하자 친구 여러 명을 시켜 다량의 펜터민을 대리 구매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마약류 식욕억제제에 대한 약물 오남용이 지속 발생함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에 대한 규제를 매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주로 처방전 없이 판매하는 의료기관 등을 대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규제를 피해 의료기관이 아닌 또 다른 유통통로가 개척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터넷 중고물품거래 사이트, SNS 등이다. 실제로 2016년 9월 현재까지도 중고물품거래 사이트에서는 성분을 전혀 알 수 없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가 ‘강한 식욕억제제’, ‘많이 먹으면 어지러움과 구토 등을 느낄 수 있지만 괜찮다’는 설명과 함께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또한 SNS를 통해서도 의사 처방 없이 중간 판매업자로부터 약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방식으로 불법 유통되고 있는 마약류 식욕억제제 외의 향정신성 의약품으로는 ‘졸피뎀’이 있다. 지난 2011년 한국 연예계를 강타했던 일명 ‘우유주사’ 프로포폴을 이어 ‘제2의 프로포폴’이라고 불리는 졸피뎀은 불면증 치료제로 유명한 수면 보조제다. 그러나 장기간 또는 다량 복용 시 극심한 환각 증세를 일으키고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서울 강남 일대에서 연쇄 교통사고를 낸 몽드드 물티슈의 유 아무개 전 대표 역시 사건 당시 졸피뎀을 과다 복용한 뒤 환각상태에서 운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강한 부작용 때문에 졸피뎀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역시 의사의 처방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SNS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지에서는 졸피뎀을 직접 판매한다는 불법의약품 쇼핑몰이나 중간업자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효과를 발휘하는 졸피뎀은 소위 ‘물뽕’으로 불리는 GHB와 함께 양대 데이트 강간 약물로 성인용품 쇼핑몰 등지에서 비밀리에 판매되기도 한다.
졸피뎀 판매업자도 국외 웹사이트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런 약물 불법 판매 신고를 받은 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기관에서 해당 사이트 국내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으나, 운영자는 홈페이지 주소를 변경해 또 다른 쇼핑몰로 버젓이 재운영하고 있다. 아예 처음부터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익명으로 약품을 판매한 뒤 계정을 삭제하고 도주하는 중간 업자들은 관계 기관이 손조차 댈 수 없을 정도다. 한 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관계자는 “SNS를 이용한 마약 판매상들의 경우 판매 후 자신이 사용하던 원래 계정을 폭파시키고 또 다른 계정을 이용해 거래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 지속 주시가 필요하다”라면서도 “수사 인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판매업자를 일일이 수사하기는 어렵다. 다만 관계기관의 행정조치가 이뤄진 웹사이트 등을 통해 운영자와 구매자 등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 확대 수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향정신성 의약품이 항상 구비돼 있는 병의원 종사자의 경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마약을 투약하거나 외부로 판매할 수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의료용 마약을 훔쳐 소지하다가 적발된 한 성형외과 직원은 범죄 사실을 숨기고 다른 성형외과에 취업한 뒤 또 다시 마약을 훔쳐 투약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안산단원구갑)은 “의료용 마약류 투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이들로 인한 도난·분실 사고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보건·수사당국은 지속적인 합동정밀감시와 함께 의료용 마약류의 제조와 유통 및 보관, 폐기 등 취급 전 과정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담배에 ‘신의 눈물’ 똑똑… 신종·변종 마약 들끓는다 최근 신종·변종 마약이 국내에서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마약 청정국’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됐다. 일부 업체들은 보란 듯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마약 판매를 광고하는가 하면,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런 마약을 직접 사용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넘쳐나기도 한다. 지난 4월에는 ‘신의 눈물(Tears of God)’로 불리는 신종 마약을 국내에 유통한 학원 강사 이 아무개 씨(40) 등 8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이 밀반입해 유통한 ‘신의 눈물’은 대마계열의 신종 마약으로 지정된 XLR-11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보통은 흰색 가루 형태를 하고 있으나 국내에서 유통된 ‘신의 눈물’은 액체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담배에 몇 방울 묻혀 흡입하는 방식으로 사용돼 길거리에서 흡입해도 경찰에 적발되기 어렵다는 점이 입소문을 타 구매자들이 점점 증가하기도 했다. 구속된 이 씨 등은 유학생과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나이트클럽과 SNS 등을 통해 홍보하면서 마치 ‘다단계 방식’으로 영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GHB(물뽕)을 판매하고 있는 성인용품 사이트(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속칭 ‘물뽕’으로 불리는 데이트 강간 약물 GHB의 경우는 아예 성인 용품 사이트 등지에서 보란 듯이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색무취인 GHB는 주로 술에 섞는 방식으로 사용되며 섭취 후 15분부터 황홀감을 느끼며 몸이 처지는 증상이 발생한다. 과용할 경우에는 맥박이 느려지고 저체온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약품이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마취제로 처음 제조됐다가 성범죄용으로 악용되면서 미국에서는 1990년에 금지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마약류로 금지됐다. 지난 8월에는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던 유명 영국인 DJ가 GHB를 생수로 위장한 뒤 국내에 밀반입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또 그로부터 GHB를 받아 상습적으로 투약한 국내 유명 약품업체 대표와 그 쌍둥이 동생도 함께 불구속 입건됐다. 그 외에도 값이 저렴하면서도 강력한 환각효과를 내는 합성 마약 ‘허브’, ‘카트’ 등이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카트’의 경우는 KBS 2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에티오피아 미녀로 사랑 받아 왔던 메자 이쉬투(36)가 약 3t에 이르는 카트를 국내로 밀반입해 마약 밀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