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취임식을 위해 정부 세종로청사에 막 도착한 김총리서리 임준선 기자kjlim@ilyo.co.kr | ||
지난 18일 김석수 국무총리 서리에 대해 오래 전부터 그를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더욱 속깊은 얘기를 소개했다.
“김 총리서리는 현 정부의 굵직한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되는데 어째서 기용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지향하는 바나 정서적으로 그는 현 정부와 맞지 않는 사람이다. 대법관을 지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한마디로 그는 진보쪽과는 거리가 있는 보수주의자로 보면 된다.”
김 서리에게 우호적인 인사조차 이렇게 평할 정도라면 그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김 서리를 기용했던 것일까. 김 대통령의 진보적 색채와 김 서리의 보수적 색채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서서히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점들이 차츰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총리서리로 기용됐을 때 처음에는 그 배경과 그의 색깔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상ㆍ장대환 등 두 총리서리가 앞서 잇따라 국회 인준과정에서 낙마한 뒤라 그의 도덕성과 국정 수행 능력 등이 주로 거론됐다.
당시 새 신임서리를 인선해야 하는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사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수 없는 화급한 상황이었다. 인준 가능성이 높은 인사라면 누구나 골라야 할 판이었다. 이런 김 대통령이 지난 91년 대법관 국회 동의시 역대 대법관 중 가장 많은 표를 얻고, 대법원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장을 역임한 김 서리를 주목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김 서리가 총리로 기용되기 전까지 그 과정을 주변에서 지켜본 지인이 전하는 얘기는 이렇다. “장대환 총리서리가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기 전에 이미 청와대측은 사람을 물색한 모양이더라. 그 때 김석수씨는 `‘청와대가 내 재산을 뒤지고 있다’며 불쾌해했다. 그는 `난 총리 하지도 않을 건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이라고 연락해와도 안하겠다고 고사했다더라. 그런데 마지막에 김 대통령과 통화한 뒤 총리를 수락했다. 선비의 도는 군왕이 부르면 가는 게 도리라고 말하면서….”
이와 관련해 최근 관가와 정가에서는 새로운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 서리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간의 관계다. 김 대통령이 인준을 쉽게 받기 위해 김 서리를 기용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중립성’을 강조했지만 사실은 이회창 후보 쪽에 가까운 사람을 내세웠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둘은 대법관 선후배 사이면서 묘한 관계다. 나이는 이 후보가 두 살 밑이지만 고시는 이 후보가 8회, 김 서리가 10회로 이 후보가 2년 선배다. 대법관으로 그것도 같은 부에서 함께 근무해 절친한 사이다. 대법관들은 서열의식이 아주 강한데 김 서리가 대법관이 됐을 당시 이 후보의 서열이 한참 높았다. 이 후보는 이미 대법원 판사를 한 데다 다시 대법관으로 들어와 있어서 서열이 높았다.
이 후보가 1위, 김석수가 맨 아래인 12위였던 때도 있었다. 대법관 4명이 한 부(部)를 구성하는데 같은 부였다. 이 후보와 김 총리서리, 이재성ㆍ배만운 변호사가 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2개팀으로 나뉘어 각각 주심과 재판장을 번갈아가며 맡곤 했다. 자연히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김 서리는 나이 어린 선배를 깍듯이 모시고,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지인의 말. “대법관의 서열 의식은 생각 외로 엄격하다. 심지어 식사를 할 때에도 서열 순으로 앉았다. 지금도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김덕주 대법원장이 상석에 앉고 맨 앞에 서열이 1위인 이회창 후보가 앉고, 말석에 김석수 총리서리가 앉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김 서리는 여기에 대해 전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두루 덕을 쌓은 셈이다.”
▲ 지난 10일 있었던 김 총리서리(앞줄 가운데)의 취임식(위). 취임 얼마 뒤인 16일 국무총리 비서실 국감을 나온 의원들 을 맞이하는 김 총리서리 | ||
그의 소탈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대법관을 지낸 70세의 변호사인 그가 거의 매일 전철로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소탈함은 예사 경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같은 사실도 처음엔 알려지지 않았다가 임명 당일 해프닝성 사건 때문에 알려졌다.
지난 9월10일 오전 10시쯤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석수 총리서리 임명’을 발표한 직후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서리를 찾느라 잠시 소동을 벌였다. 김 서리가 오전 10시30분에 임명장을 받으러 와야 하는데, 자택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길이라도 막히면 시간에 대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에 청와대는 부랴부랴 김 서리를 휴대폰으로 찾았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평소 운전기사 없이 아이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녀서… 급한 김에 택시를 탔소.” 김 서리가 서울시내 한 호텔 앞에 내려 청와대가 보낸 차량에 탔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관계자들은 안도했다.
또 서리 취임 이튿날인 9월11일 오전 김 서리는 강원 강릉시 수해지역 현장으로 달려갔다. TV 카메라가 취재에 들어가는 순간 수행하던 총리실 직원들은 일순 `‘민망함 반 웃음 반’의 묘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관계자는 “김 총리가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행사가 시작되자 총리가 누구인지, 이재민이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며 웃었다. 일부 직원들이 김 서리에게 점퍼를 바꿔 입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겉모습은 1백77㎝의 훤칠한 키에 위엄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특히 눈매가 날카로워 보인다. 그러나 일단 만나본 사람은 그를 참 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인 셈이다. 대법관이라면 곧잘 떠오르는 꼬장꼬장한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라는 것이다.
부인 엄윤성씨(63)도 “자상한 분이다. 음식도 전혀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총리실 고위 간부는 “보고를 하러 들어갔는데 내가 서 있으니까 총리께서도 앉지 못하시더라. 할 수 없이 저도 앉겠습니다 하니까 그제서야 앉으시더라. 그래서 앉아서 보고를 마쳤다”고 소개했다.
거기에다 그는 유머를 갖추고 있다. 부하직원들과의 회식 모임에 가도 먼저 재미있는 화제를 떠올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세련된 이미지의 `‘영국신사’와 ‘소탈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그는 바로 이 유머와 말솜씨로 투박함을 커버하고 있다는 평이다.
부인 엄씨도 김 서리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발이 넓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세칭 ‘마당발’은 아닌 듯하다. 마당발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다는 게 주위의 대체적인 평가다. 오히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도 듣는다. 누구와 갈등을 일으키거나 다투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소신이 특별히 강하다는 얘기도 없다. 오히려 그는 법관 시절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면서도 현실 감각이 뛰어난 판결로 법조문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법조문만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게 아니라 법 바깥의 현실도 고려한다는 뜻이다. 업무를 처리할 때도 자기 견해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직원에게 기본 방향을 제시한 뒤 충분한 재량을 부여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김 서리가 대외적으로 알려졌다면 그것은 주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은 덕을 본 것이다. 그는 1993년 10월부터 97년 1월까지 3년3개월여 동안 선관위원장으로 재직했다. 늘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 비상근이지만 그는 이때 직원들에게 꼼꼼하면서도 합리적인 위원장으로 각인됐다. 15대 총선 등 크고 작은 선거를 치렀지만 크게 정치적 시비에 휘말린 적이 없다. 본인은 보수적이지만 판사 출신으로 몸에 밴 균형감각과 습관대로 정치색을 좀체 드러내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이 즈음 그는 선거공영제 확대 등에 관심을 갖고 여러 정책들을 추진, 나름대로 문제의식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김 총리서리의 대법관 시절 선배로 상당한 친분관계라는 전언이다. | ||
그는 당초에는 진주사범을 다니다 6ㆍ25로 부산에 임시교정을 마련한 배재고로 전학, 52년에 졸업했다. 이어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뒤 2년 동안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군법무관으로 복무할 때 대학 4학년이던 지금의 부인을 고시동기인 황계룡 변호사로부터 소개받아 `‘중매 반, 연애 반’ 생활을 거쳐 결혼했다.
가정적으로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장남(36)이다. 그는 동아대 법대에 다니던 장남에게 “아버지처럼 고시공부를 하라”며 은근히 기대했으나 아들이 뇌수축이라는 희귀질환에 속하는 병을 앓자 실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서리는 장인이 대구에서 저명한 변호사여서 처가의 지원도 조금 받았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또 이것이 청렴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법관에서 퇴직한 후에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을 맡았는데 이런 경력이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최근 그가 국회에 인준을 요청하면서 재산내역을 신고한 것을 두고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는 약 25억여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당초 청와대측은 그가 중앙선관위원장 재직 당시 9억여원을 신고했다며 지금도 변동된 내용이 없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다시 자세히 신고한 재산은 의외로 많다는 게 주위의 반응이다. 그 중 증여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편법매매’ 의혹이 가장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김 서리는 지난 93년 대법관 임명 당시 재산등록을 하면서 고향 경남 하동에 있는 땅 3만㎡ 가량에 대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과 달리 김 서리는 하동의 땅을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매입한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김 서리의 장남도 문제의 하동군 땅 중 약 3천㎡를 네 살 때 매입한 것으로 등기부등본에 기재돼 있다.
이에 따라 김 서리가 부친으로부터 부동산을 물려받을 때나 장남에게 부동산을 물려줄 때나 증여 상속세를 내지 않게 ‘편법매매’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또 그가 삼성전자의 사외 이사로 등재하고, 이 과정에서 받은 주식을 팔아 1억여 원의 이득을 취한 점도 국회 청문회에서 공격당할 소재거리다. 벌써 이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고, 김 서리 본인의 대답도 명쾌하지 않다.
또 특별한 소득이 없는 부인의 재산이 96년 말 8천3백80만원에서 3억4천1백69만원으로 증가한 점, 직업이 없는 장남의 재산이 6천3백만원에서 1억3백만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서는 증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총리실측은 “장남을 총리 서리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장남의 병역면제도 자칫 쟁점이 될 수 있다. 장남이 질환으로 수술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으나, 그가 육사에 지원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김 서리측은 “육사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었으나 대학에 진학해 고시공부를 하던 중 머리가 아파 진단한 결과 이같은 질환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금도 장남은 병원에 자주 다닌다고 부인 엄씨는 밝혔다.
그가 법원행정처 차장과 중앙선관위원장 등을 거치며 행정 능력과 경륜을 갖췄다지만 방대한 행정부를 통할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임기 말 정권의 내각에서는 공직 기강 확립이 필요한데 김 서리는 다소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