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교육청이 사립학교 교원 채용 비리 등 잇단 잡음으로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광주시교육청 전경. 사진제공=광주시교육청
[일요신문] 광주 교육계가 잇따른 악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립학교 교원채용비리, 학생생활기록부 조작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배구코치의 성추행 의혹까지 터지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사과와 긴급대책 발표라는 조치를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뒷북사과와 미봉책이라는 부정적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교조에서는 잇단 비리 파문이 사학체제로 인해 불거졌다고 지적해 ‘불똥’이 광주시교육청을 넘어 사학비리 척결에까지 옮겨 붙는 양상이다. 그러나 사학비리 근절의 첫 단추인 교사 선발권을 시교육청에 위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례조차 시의회에서 표류 중이어서 또 다른 논란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21일 ‘광주 모 중·고 배구코치 성추행 의혹에 따른 입장’이라는 사과문을 내고 “학교운동부 지도자들의 학생 성추행 의혹 및 부적절한 학생 교제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학부모와 시민들께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 12일 장휘국 교육감이 모 여자 사립고에서 일어난 ’생활기록부 조작사건‘에 대해 사과한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여자배구팀 일부 학생들은 코치 A 씨가 불필요한 신체 접촉과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A 씨가 허벅지, 엉덩이 등을 만지고 생리에 관련한 질문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발방지 대책도 밝혔다. △운동부 육성 학교에 대한 현장방문 및 실태조사 실시 △시체육회와 연계한 운동부 지도자 대상 스포츠 인권교육 조속 실시 △관리자 관리감독 강화 연수 추진 등을 약속했다. 또 시교육청은 같은 소속 중학교에서 선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최근 해임처분한 중학교 코치에 대해서도 “관계기관의 조사를 거쳐 더욱 정확한 진위가 파악되면 사법조치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전했다. 단호한 조치를 통해 비등한 비판 여론을 진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의 늑장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교육청이 관련 사건을 미리 알고도 눈감고 있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논란이 일자 뒷수습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문제의 체육중학교는 올 봄에도 교감이 수억 원대의 교사 채용비리 사건에 연루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을 비롯해 지난 8월에는 체육중 아무개 코치가 제자인 학생선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다 최근 해임됐다. 더구나 지난 추석에는 여자 배구팀 코치가 여자 선수들을 성추행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처럼 잇따른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도 감독청인 시교육청과 해당 학교가 이번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오다 비판여론이 일자 뒤늦게 사과에 나섰다는 것이다.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 교육감은 지난 12일에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한 여자 사립고에서 일어난 학생생활기록부 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사죄했다.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광주의 한 사립여고에서 교장 A 씨의 지시에 따라 교원 13명이 학생 25명의 생기부 등급 및 특기사항 등 내용을 36차례 조작한 것이 확인돼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교장 A 씨는 교사 B 씨 등에게 심화반을 편성·운영하면서 학부모들로부터 과외교습료를 받도록 해 총 25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해당 교원들은 교육부와 시교육청에서 교부한 연간 7000만 원 상당의 교비를 허위 청구했다가 발각됐다.
이때도 시교육청은 대책을 쏟아냈다. △생기부 수정 전과 수정 후 기록 함께 보관 △교사 윤리 연수 3회에서 5회로 확대 △교장·교감 등 관리자 연수 2회에서 4회로 확대 △담당자 긴급 연수 △1교 1전문직 연수 및 확대 △실무지원단 운영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발표한 긴급 대책들이 “사립학교 내 폐쇄적·수직적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대책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생기부 부당 정정 사건도 이사 권한을 가진 교장의 지시에 따라 촉발됐다는 점에서 사학비리가 발생하는 구조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생기부 조작 사건은 교사들이 학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리자 중심으로 막강한 권한이 집중되는 사학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8일 생기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낸 성명서에서 “사립학교에서 교장 등 관리자의 권한은 막강하다”며 “이사장을 등에 업고, 교장은 강력한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으면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학교장이 이사 지위를 갖고 있는 사학들을 겨냥한 표현이다.
또 전교조는 “최근 일어난 가장 굵직한 비리 사학이 모두 광주 남구에 밀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왜곡된 교육열에 기초한 무분별한 사학의 팽창이 빚은 참극”이라며 “홍복학원(대광여고) 이사장 이홍하의 전횡, 낭암학원(동아여중고) 교사 채용비리, 그리고 이번 생기부 성적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립학교의 팽창과 전횡에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현재 광주시의회에서 표류 중인 사학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조례에 대한 재론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남 의원이 발의한 ‘광주광역시교육청 사립중등교원 임용시험 위탁 권장과 채용정보 공시에 관한 조례’는 사립학교에서 교사 채용 시 공립학교와 유사하게 공식 선발 과정을 밟도록 한 게 골자다.
시교육청이 사립학교 교사를 선발하는 것은 아니고, 공립학교 교사 채용 시험인 ‘교원임용고시’ 1차를 통해 합격한 후보를 3~5배수 학교 측에 추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조례안 통과를 일부 의원들이 거부하면서 ‘의결 보류’됐다. 조례안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한 시의원은 “조례안에 따라 교육청 입맛에만 맞는 사립 교원을 뽑게 되는 게 아니냐”, 또 다른 의원은 “조례안 취지에 공감은 하지만,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서명을 않고 있다.
시교육청은 그동안 교사 채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채용권 위탁을 요구하며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통해 사학들을 꾸준하게 설득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광주시내 31개 사학재단 가운데 사립학교 신규교사 채용을 위탁한 법인은 조선대 법인과 송암학원, 금정학원, 보문학숙 등 주로 관선이사가 파견된 4개 학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지난해 사립학교에서 신규 채용한 교사 107명 가운데 15명을 시교육청에 위탁해 위탁율은 14%에 그쳐 사실상 채용 위탁 인센티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사학비리척결을 위한 광주시민대책위원회는 “한 시의원이 사립 교원 채용과정에서 업체 알선, 채용 비리 문제에 연루돼 구속된 가운데, 비리를 방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를 막는 광주시의원들에게 개탄을 금치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