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7일 울산시 남구 삼산동 모 아파트 감사 모습. 시가 파견한 감사요원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등 감사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일요신문] 울산 곳곳에서 공동주택 비리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현직 입주자대표회의 구성과 해임 ▲관리비 집행 ▲관리업체 선정 ▲관리규약 개정 등이 주요 분쟁거리다.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올해만 15건의 고소고발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4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역 공동주택 비리와 잡음의 중심에는 울산지역 공무원이 있다. 이들 공무원들은 공권력남용에서부터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업체에 대한 감사를 막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민들 사이에 “얼마나 받아먹었기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울산에서 공동주택 비리와 잡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 시발점은 ‘공동주택 관리규약’이다. ‘관리규약’은 업체 선정 때 지침이 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일종의 법전과도 같다. 그런데 울산의 한 업체가 관리하는 공동주택의 관리규약에는 ‘실적’과 ‘거리제한’이 명시돼 있다.
이 업체는 이 두 가지 요소 때문에 울산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미 지역에서는 나름의 실적을 내고 있던 이 업체는 ‘거리제한’이 명시된 관리규약 때문에 외부 업체와의 경쟁 없이 손쉽게 입찰을 따냈다.
문제는 관리규약에 ‘거리제한’을 두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인데 이를 공무원이 눈감아 줬다는 것이다. 사실 주택관리업체 가운데 기술력과 경험, 자금력을 충분히 갖춘 업체는 국내 주택 수에 비해 대단히 적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주택관리업자·사업자 입찰시 영업지역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의 경우 공무원들의 묵인 아래 ‘거리제한’이 관리규약에 명시되면서 특정업체가 관련 시장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
실제 남구 삼산동의 모 아파트의 경우 ‘거리제한’이 명시된 관리규약 때문에 특정업체가 십수 년간 별다른 경쟁 없이 관리입찰을 따냈다. 이에 입주민들은 ‘거리제한’이 불법이라며 입찰비리에 대한 감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관할구청 공무원은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만들어 번번이 감사요청을 묵살해 왔다. 참다못한 입주민들은 전방위적인 감사요청을 펼쳤고 결국 시에서 감사에 나섰는데 이마저도 공무원들의 방해로 감사 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시는 지난해 9월 7일 이 아파트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기 위해 공무원 6명이 포함된 감사요원 10여 명을 투입했다. 감사는 1주일가량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첫날부터 감사요원과 입주민들 간의 마찰로 수년에 걸쳐 요구돼온 입찰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는 또 묻혀버리게 됐다. 요지는 간단하다. 시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감사 자체를 파행으로 몰고 간 것이다. 입찰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업체와의 결탁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에서 파견된 요원들은 첫날 감사에서 아파트 3층에 마련된 감사장의 폐쇄회로(CCTV)를 종이로 막은 다음 일부 자료를 몰래 빼돌리려다 입주민들에게 적발됐다. 이에 입주민들은 요원들의 명단을 공개했지만 요원들이 이를 거부하며 감사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주택법 제59조 2항은 ‘공동주택의 시설·장부·서류 등을 조사 또는 검사하는 공무원은 그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를 지니고 이를 관계인에게 내보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무원 6명이 포함된 감사요원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현장에 파견 나온 공무원들은 “입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명단도 공개하는 등 적법하게 감사를 진행했다”며 불법사실을 부인했는데 이는 거짓이었다. 입주민들은 감사요원들의 행동에 수상함이 느껴지자 곧바로 명단공개를 요구했다.
현장 총괄책임자로 나온 이 모 공무원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명단공개를 끝내 거부했고 관련 내용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증거물로 보관돼 있었다. 이 공무원은 자신의 거짓이 영상에 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감사요원들의 신분과 적법한 감사를) 내가 책임지겠다”는 뜻이었다며 말을 바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이 아파트 3층 감사장 안에서는 일부 요원들이 신분을 나타내는 명찰을 패용하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이 역시도 불법이었다.
당시 폐쇄회로(CCTV)를 보면 몇몇 요원들이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데 주택법이 정한 서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주택법 시행규칙 제36조에는 ‘(검사공무원의 증표) 법 제59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공무원의 권한을 표지하는 증표는 별지 제44호 서식에 의한다’며 다른 형식의 증표는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
불법을 은폐하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를 쓴 것이다. 결국 이 아파트의 감사는 이렇게 파행으로 끝나면서, 입찰비리에 대한 의혹은 묻혀만 가고 있다.
입주민들은 “감사요원의 명단은 법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공무원이 거부하며 감사를 파행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도대체 얼마나 받아먹었기에 공무원들이 그런 짓거리까지 서슴없이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당시 감사 총괄지휘를 맡았던 시 공무원은 “감사는 입주민들의 방해로 진행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업체와의 결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후에도 이 업체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다.
강성태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