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무총리 후보자 인 사청문회에 참석한 장 총리서리. 임준선 기자 kjl im@ilyo.co.kr | ||
사상 첫 여성총리 탄생의 기대감이 사라진 빈 공간을 메울 방안으로 청와대가 선택한 것은 50대의 젊은 전문경영인 출신 총리의 발탁이었다. 〈매일경제〉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매일경제〉를 일약 국내 최고경제신문으로 발돋움시킨 젊은 전문경영인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장 총리서리 지명 직후 유력언론이나 한나라당 안팎에서 장 총리서리에 대한 비판적 기류는 비교적 없는 편이었다. 언론 일각에서는 장 총리서리가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과 절친한 점, 그리고 〈동아일보〉가 〈매일경제〉의 배달을 맡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한나라당 역시 장상 전 총장의 총리인준 부결 이후 장대환 총리서리에 대해선 ‘정중동’의 자세를 보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대환 총리서리 지명 배경의 노림수에 대한 분석이 제기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우선 현 정권의 ‘숨은 대통령’으로까지 표현되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과 장 총리서리의 친분이 지명에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 총리서리와 박 실장은 지난 70년대 후반 뉴욕에서 각각 유학생과 사업가로 거주한 적이 있다.
〈매일경제〉 편집국장을 거쳐 YTN 사장에 오른 백인호씨는 장 총리서리 부인 정현희씨의 고모부뻘되는 친척이다. 백 사장과 박 실장은 목포고 선후배 사이로 장 총리서리와 백 사장, 박 실장 간의 관계가 주목할 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DJ정권 초기 주요 국정운영기조의 하나였던 ‘지식기반경제’ 홍보에 〈매일경제〉가 앞장섰던 것을 지적하는 인사들도 많다.
‘신지식인’ 관련 행사 등에 〈매일경제〉가 적극 동조하면서 장 총리서리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정부가 해야할 일을 언론이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들이 장 총리서리로 하여금 현 정권에 친화적 인물이란 평을 듣게 하는 것이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 관련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면서 국무총리가 대통령 역할을 대행할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이는 곧 박 실장이 현 정권과의 유대 그리고 자신과의 친분이 있는 장대환 총리서리의 발탁을 선택한 배경이 됐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장 총리서리가 총리실에 입성하면서 박지원 실장이 ‘수렴청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극단적 표현마저 한나라당 주변에 나돌게 된 것.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8월9일 성명에서 ‘이번 인사의 배경에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정치적 의도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인사청문위원인 이원창 의원도 “‘장대환 카드’는 박지원씨 작품”이라 단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권 친화적 성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장 총리서리는 곧 비판의 도마 위로 올려지게 됐다.
더군다나 장상 전 총장에 대한 검증과정을 거치며 날카로워진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적 칼날 앞에 ‘전문경영인’‘50대 새 인물’ 같은 수식어는 힘을 쓰지 못했다. 여성계 일각에서도 “장상 전 총장보다 나은 인물인지 철저검증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 지난 23일 장 총리서리는 박관용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 의 총리 인준 청문회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 ||
재산신고를 하면서 56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난 장 총리서리의 재산증식과정이 금세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40여억원에 대한 논란이 먼저 제기됐다. 총리실측은 “주식매입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대출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경제신문 사장이라는 점에서 특혜대출 여부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13개 회사 주식을 30여억원어치 보유한 점도 시빗거리가 됐다. 증권담당기자의 경우 내부자거래 대상으로 분류돼 주식투자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총리실측은 기자와 달리 사장은 주식투자에 대한 법적제한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권담당 기자로부터 언제든 정보보고와 업무보고를 받을 수 있는 지위였다는 것이 논란의 초점이다. 위법행위는 아닐지라도 도덕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밖에 장 총리서리가 사들였던 대규모 임야의 땅값이 크게 오른 점, 자녀들의 강남 8학군에 대한 위장전입 의혹 등이 추가로 제기됐다. 부인 정현희씨의 재산증식과정 역시 논란이 됐다.
여론이 이처럼 형성되자 신경이 곤두서게 된 건 한나라당측이었다. 장상 전 총장 부결 이후 연속적 부결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장대환 총리서리의 발목을 한나라당에서 잡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던 게 사실. 그러나 장 총리서리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자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철저검증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또 한가지가 있었다. 정치권 일각에서 ‘장대환 카드’가 여권의 대 이회창 공격용 카드라는 설이 제기된 점이다. 장 총리서리가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동생 이회성씨와 공동소유한 재산이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억측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이회성씨에 관한 논란이 제기됨과 동시에 과거 이회성씨 관련 의혹이 있었던 세풍논란의 재폭발을 도모한다는 설이었다.
장 총리서리 병적기록부가 잘못 작성됐다는 주장 역시 한나라당 내부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는 후문이다. 이 논란은 병적기록을 총리실에서 받아쓰는 과정에서 잘못 기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근 이회창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잘못 작성됐다는 것이 알려진 터라 ‘괜한’ 연관성이 제기될 가능성을 한나라당 일각에서 차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다.
물론 여야 모두 이 같은 사안에 대해 드러내고 지적하기엔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청문회 이후까지 장 총리서리 관련 논란이 거듭될 경우 발생 가능한 ‘돌발변수’에 대해서도 여야 모두 신경을 쓰는 눈치다.
민주당 함승희 의원은 아예 장 총리서리와 이회성씨간의 친분을 들어 “장 총리서리가 친이회창 성향의 인물”이라 단정짓기도 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장대환 서리 8대 검증 포인트’란 A4용지 8장짜리 자료를 작성해 특위 위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이 자료에는 지금껏 거론된 장 총리서리 관련 의혹들을 모두 제기하면서 장 총리서리에 대한 정치적 전망을 담기도 했다. 시중에 장대환 총리서리의 도덕성에 결함이 많은데도 정치적 부담을 의식, 검증에 소극적이라는 여론이 많으며 특히 여성계에서 성차별 문제를 제기할 경우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 매일경제 사장 시절 집무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장 총리서리 | ||
장 총리서리는 박관용 국회의장을 직접 찾아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총리실의 정강정 비서실장은 지난 8월22일과 23일 국회의원회관을 돌면서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총리 비서실장은 장관급이다.
한나라당 한 의원실의 보좌관은 “의원이 부재중일 경우 (정 실장이) 보좌관에게까지 협조를 요청하며 공손히 대했다”고 전한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총리실의 분위기가 얼마나 다급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총리실 직원들의 ‘발품’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에서 장 총리서리들은 의원들이 던지는 비수 같은 질문들을 맞아야만했다. 장 총리서리 부부가 소유한 부동산 12건 모두가 탈루의혹이 있다며 업무상 배임죄 의혹이 제기됐고 농지개혁법 위반 논란도 불거져 나왔다. 〈매일경제〉에서 23억여원을 차용한 것과 용도에 대해선 업무상 배임죄 및 횡령죄 의혹도 제기됐다. 대부분 실정법 위반 여부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로 고위공직자가 갖출 도덕성을 묻는 내용들이었다.
비단 정치권에서만 장 총리서리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총리실과 행정부처들 내부의 작은 동요도 감지된다. 장 총리서리가 언론사 사장 출신이긴 하지만 언론인이라기보다는 기업인이란 이미지가 더 강한 탓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얼마 전 신임시장으로 취임했을 때 시청 주변에선 불안한 기류가 흘렀다. 전문경영인 출신 이명박 신임시장이 기업인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시청 관계자들 사이에 자리잡은 것이다. 장 총리서리는 〈매일경제〉 사장으로 재직하며 일선기자들에게 직접 광고 수주의 부담을 안긴 바 있다.
물론 이는 〈매일경제〉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과 어깨를 견줄 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토양이 됐다. 하지만 이 같이 철저한 성장중심 윤리가 공직사회에서 제대로 부합될지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행정부처의 한 사무관은 “장 총리서리가 여러 모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경력의 깊이나 색채를 볼 때 현 정권 임기 말 국정운영에 무리가 없을 지에는 의구심이 든다”라며 “여러 행사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하루빨리 각 행정부처를 아우르며 불신감을 떨쳐버리게 하는 것이 장 총리서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