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국은 큰 무대로 떠나는 심경을 담담히 털어놓았다.이 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눈가에 이슬이 맺히길래 “왜 우냐”고 물었더니 그냥 씩 웃는다. 운동장이 통째로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와 수많은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송종국의 고별전은 기 전그렇게 대미를 장식해 나갔다.
송종국을 보기 위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씩 줄지어 운동장 주위에 늘어서 있는 팬들을 보며 새삼 인기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남일에 이어 월드컵이 낳은 또 하나의 스타플레이어로 각광 받았던 유명세가 부담으로 다가올 즈음 한국을 떠나는 홀가분함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향하는 출발선상에선 아무래도 북받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나 보다.
송종국을 만나기 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였다. 그와 관련해서 간혹 들리는 소문마다 사생활이 주된 내용이었고 그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의 입에서 ‘약간은 변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와 뜨거운 관심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안 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될 만큼 송종국의 변화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지금까지 해외에 진출했던 축구선수들 중 가장 많은 이적료(4백만달러)를 받고 네덜란드로 출국하는 주인공이고 월드컵 동안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파워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인 터라 기세가 등등한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변함이 없었다. 예의 수줍은 미소로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과분한 칭찬과 기대가 여전히 민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보다 자신감이 한층 더해졌다는 사실. 간혹 그 자신감이 안 좋은 쪽으로 확대 해석이 된 경우도 있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아직 나이가 어리잖아요. 인기가 있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고, 팬들의 엄청난 환호에 잠시 우쭐거린 적도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주위의 시선들을 의식하는 행동을 할 때도 있었구요. 과도기란 생각이 들어요. 이런 관심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축구를 잘해야만 가능한 부분들이기 때문에 도취되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대답이라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라면 다른 태극전사들과 마찬가지로 자고 일어났더니 공인이 돼버렸다는 유명세다. 특히 송종국은 공인이란 타이틀을 여러 차례 절감해야 했다. 월드컵 기간 중에 대전 숙소에 놀러온 신인 CF 모델과의 스캔들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인기가수, 미스코리아 진 등과의 열애설이 화제가 되는 등 미확인성 보도로 인해 마음 고생을 톡톡히 했다.
“그 여자들 지금 뭐하냐”며 우스갯소리로 물었더니 “다 정리했다”며 의미심장한 대답을 내놓는다. 얼핏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교제중이라고 소개되다 보니 요즘엔 우연히라도 여자연예인을 만나기가 겁난다고 한다.
▲ 송종국 | ||
“네덜란드에 있을 때 천수가 책에 쓴 내용에 대해 알게 됐어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더 난리가 났더라구요. 정말 밖에서 보는 것처럼 기분 나쁘지 않아요. 천수의 본심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천수가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송종국의 형 종환씨에 의하면 두 사람은 월드컵 대표팀에서 이영표, 최태욱 등과 함께 무척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 밑바탕엔 신앙이 자리했다. 이천수는 원래 종교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가 송종국, 이영표의 강한 전도에 힘입어 뒤늦게 신앙 생활을 시작한 케이스. 자연히 서로에 대한 고민을 터놓았고 서로에 대한 끈끈한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대표팀 생활을 견디게 했던 윤활유로 작용했다.
“예전엔 면바지에 티셔츠가 전부였어요. 생활이 넉넉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옷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거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아무렇게나 못 입고 다니는 거죠. 물론 좋은 옷에 좋은 음식, 좋은 장소에 다닐 수 있게 돼 행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아요. 밥도 함부로 먹기 힘들고 영화도 보러가기 어려울뿐더러 친구들도 밖에서 만나기 쉽지 않거든요. 부담 아닌 부담이죠.”
사실 요즘 송종국의 모양새가 대단히 패셔너블해졌다. 지난 15일 네덜란드 페예노르트팀에서 체력 테스트를 받고 귀국할 당시 세련된 선글라스에다 흰색의 와이셔츠를 입고 수입 브랜드의 정장을 걸친 차림새는 영화배우를 능가하는 빼어난 옷맵시였다.
불과 8개월 전만 해도 시상식 때 입고 다닐 옷이 없다며 정장 한 벌로 수많은 시상식을 오갈 만큼 두둑한 배짱을 선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신분 상승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송종국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면 덜 유명했을 당시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작은 향수가 느껴졌다.
잘 알려졌다시피 송종국은 취업허가서가 나오는 대로 네덜란드로 출국한다. K리그를 떠나 몸담게 될 곳은 네덜란드의 1부리그 페예노르트팀. 4백만달러의 이적료에다 연봉 40만달러라는 엄청난 몸값을 받는 특급 대우로 한국은 물론 네덜란드 현지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비밀리에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송종국이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네덜란드로 출국한 순간에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을 만큼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송종국의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장영철씨(프라임 스포츠 대표)는 송종국이 출국할 때만해도 자신의 외국 진출에 대해 긴가민가 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 자신을 연호하는 소녀팬들 옆을 행복한 표정으로 지나가 는 송종국 | ||
“의사소통 문제가 가장 걱정돼요. 아무리 통역이 있다고 해도 제 입처럼 될 수는 없잖아요. 언어 습득이 급선무라는 걸 잘 알아요. 노력해야겠죠. 살아남으려면. 그래도 자신 있는 것은 제가 다른 거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축구하러 가는 거잖아요. 축구를 잘하면 기본 이상을 하는 거 아닌가요. 주전 경쟁이 치열하다고들 하는데 뭐 여기서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나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정말 자신 있습니다.”
‘정말’ 인사치레로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송종국한테 네덜란드는 ‘종착역’이 아닌 ‘간이역’이기 때문이다. 그 ‘간이역’에서 제대로 배겨내지 못하면 다음 정거장으로 이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겪는 타향살이에 잔뜩 긴장하거나 겁먹지 않기로 했다. 무조건 부딪치고 부대끼며 ‘도전정신’으로 버텨나가겠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 외엔 다른 대안도 없다.
페예노르트에서 주전으로 활약할 경우 아인트호벤팀과 맞붙을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히딩크 감독과 사제지간의 대결을 벌여야할 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그림들이다.
“솔직히 저도 기대돼요.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운동장에서 감독님께 배운 것들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만약 그 순간이 오게 된다면 꿈을 꾸는 기분일 거예요.”
히딩크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송종국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팀 출범 초반만 해도 ‘히딩크의 황태자’로 손꼽히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터라 그런 인연들이 한국도 아닌 네덜란드에서 정반대의 입장이 돼 만난다는 사실이 그의 표현대로 꿈꾸는 기분일 것이다.
송종국의 고별전에는 우연히도 포항이 상대팀이 되었고 그 중심선상에 홍명보가 있었다. 송종국과 홍명보와의 인연은 대표팀에서부터 맺어졌다. 홍명보가 부상으로 잠시 대표팀을 나와 있었던 시기에 송종국이 홍명보의 자리를 대신하며 급부상했던 것.
송종국은 대학 때만해도 전천후 플레이어로 활약했었지만 좋게 얘기하면 멀티 플레이어고 나쁘게 표현하면 ‘땜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전들이 뛰다가 부상당하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이 주어졌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집 저집을 넘나들며 ‘셋방살이’의 설움을 톡톡히 절감했다. 그러다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이전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했고 그 후론 대표팀의 붙박이 수비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홍명보의 부재중에나 가능한 일로 인식됐었다. 홍명보가 복귀하게 되면 송종국의 존재는 바람처럼 사라질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홍명보가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했어도 송종국의 자리는 변함이 없었다. 중앙과 좌우 윙백을 맡아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던 것.
그런 얽히고 설킨 인연을 맺은 선배와 맞붙게 된 고별전에서 송종국은 냉정한 프로 세계의 현실을 절감했다. 이상하게도 홍명보와 치열한 볼 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보여졌기 때문.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도 “명보형이 고별전이라 많이 봐줄 걸로 믿었는데 우리 팀에서 골이 터지다보니 좀 심한 몸싸움을 벌인 것” 같다는 말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홍명보도 “심판 판정에 대한 감정이 격해 있어 좀 과격한 플레이를 했어요. 종국이한테는 고별전이었지만 우리팀 입장에선 정규리그 경기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충북 단양의 산골 마을 대가리에서 태어나 한때 육상 선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축구공과 인연을 맺은 송종국.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형이 축구하는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픈 과거가 지금은 추억으로 거론될 수 있을 정도다.
이젠 전세방에서 5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갈 정도로 부와 명예를 이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송종국의 축구인생은 더 가치를 띠는지 모른다.
출세한 ‘촌놈’은 네덜란드 대사관으로부터 취업허가서가 나오는 대로 분신처럼 함께 다니는 형 종환씨와 함께 한국을 떠날 것이다. 정신 없이 이뤄진 인터뷰 말미에 송종국이 드디어 이런 멋진 멘트를 남긴다.
“팬들의 환호와 인기를 잠시 잊으려고 해요. 거기서는 전 스타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비싼 용병이죠. 그 값을 해야죠. 그래야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