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사옥 앞에서 환수복지당 관계자가 환수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시민 여러분! 친일파의 재산을 제대로 환수해야 합니다.”
9월 21일 기자가 서울 종로구의 광화문광장을 찾았을 당시 환수복지당(가칭) 관계자는 ‘시민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었다. 손으로 마이크를 힘껏 움켜쥔 그는 “정부는 언제나 복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우리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걷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세를 안 해도 복지 정책을 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비리를 저질러 나랏돈을 착복한 사람들과 친일파들을 상대로 부유세를 걷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필리버스터 장소 곳곳에 걸린 팻말들이 눈길을 끌었다. 팻말엔 “이명박 사자방 비리 23조, 전두환 비자금 1조 565억 원, 박근혜 박정희 4대 강탈 재산 5조 5000억 등을 환수해야 한다”는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환수복지당의 다른 관계자는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바로바로 해결을 안 하니까 비리 자금이 쌓이고 쌓였다. 정부는 복지를 위한 돈이 없다고 하는데 권력형 비리 자금을 환수하면 얼마든지 복지를 할 수 있다. 친일파 재산도 마찬가지다”고 강조했다.
환수복지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아니다. 창당활동을 위해 선관위에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 결성을 신고한 단계다. 선관위에 따르면 9월 22일 현재 환수복지당 등 8개의 군소정당들이 창준위 구성을 마쳤다. 선관위 관계자는 “창준위 신고뿐만 아니라 5개 이상의 시·도당을 등록하고 각 지역에 주소를 둔 당원 1000명 이상을 모집해야 한다. 창준위가 창당으로 이어져 후보자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요건을 구비하지 못해 6개월 안에 소멸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선관위 관계자는 “최근 창준위 신고가 늘었다. 대선을 앞두고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비 군소 정당들 입장에선 정당법상 요건은 높은 ‘진입장벽’이다. 하지만 이들의 창당 도전은 끊이지 않고 있다. 18대 대선은 예비 군소정당들에게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선관위 관계자는 “창당 과정에서 입당원서를 받을 때 단체의 목표와 기본방향을 자연스레 홍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8월 4일 창준위를 신고한 핵나라당(가칭)은 대선을 겨냥해 황당 정책을 내걸었다. 핵나라당이 중앙선관위에 낸 발기취지문은 “핵나라당은 6000조 원 국채를 발행해 국민 각자에게 1억 원을 지원해준다. 북한의 핵우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해와 동해, 남해에 초대형 항공모함 3척을 건조한다. 해병대 50만 명을 증강시켜 북한의 사전침략에 대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핵나라당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핵무기로 북한을 선제타격을 할 수 있는 방법뿐이다. 북핵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다. 김정은과 북한 정권을 즉시 무너뜨려야 한다. 국제적인 핵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에 우리 자체적으로 핵 보유를 해야 한다. 이를 알리기 위해 대표가 대선후보로 나설 것이다”고 강조했다.
거지당(가칭)도 이목을 끌고 있다. 거지당의 발기취지문은 “부자 정치에는 감동이 없다. 지금부터는 감동이 있는 거지정치가 중요하다. 정치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부자 정치 때문이다. 거지당의 목표는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잘사는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어민, 농민, 서민, 일용직 노동자, 구걸인 등이 거지당 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거지당은 현재 입당 원서를 받지 않고 있다. 대선을 기점으로 당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전략에 집중할 예정이다. 김준수 거지당 대표는 “우리는 ‘신고필증 정치’를 지향한다. 입당원서를 받기 위해 사람들을 쫓아다니지 않는다. 힘들게 창당을 할 필요는 없다. 역량이 부족한데 당을 만들면 안 된다. 창당은 여론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할 수 없다. 6개월 안에 창준위가 소멸하더라도 재등록을 계속할 것이다. 대선이 코앞이다. 우리의 정책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좋은원칙(가칭)은 매번 소멸했지만 끝없이 창당에 도전해 ‘집녑 정당’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3월경 처음 창준위 신고를 했지만 두 차례 고배를 마셨던 좋은원칙은 올해 3월 22일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좋은원칙의 발기취지문은 “사욕에 가득찬 무리들이 국민을 속이는 공약 등의 기만행위로 정권을 취해 국민의 인권을 짓밟았다. 삼면이 바다라서 운하가 필요 없는데도 MB정부는 대운하라는 해괴한 발상으로 국가를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좋은원칙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창당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좋은원칙 관계자는 “우리는 당명대로 원칙을 지키고 균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당이다. 대표가 정치활동을 하셨던 분이 아니라 주변 지인과 연계해서 활동 중이다. 연고가 있는 지역은 시도당원 모집이 수월하지만 연고 없는 지역에서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입당원서에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해야 해서 원활하지 않다. 개인정보가 워낙 중요한 시대라서 시민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그래도 창당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8월 16일 중앙선관위에 창준위 결성을 신고한 자미당(가칭)은 대표가 중도에 창당을 포기해 발기인들이 혼란에 빠진 당이다. 자미당 관계자는 “대표가 창당을 갑자기 접어서 ‘멘붕’에 빠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택배로 입당원서를 자발적으로 보내왔다. 창당이 거의 눈앞까지 왔었다. 17개 시․도에서 입당원서를 많이 받았는데 대표가 고뇌를 거듭하다가 창당을 포기하기로 최종결정을 했다. 종교적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발기인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재개발반대당(가칭)은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등 ‘서민소외형’ 주거정비사업을 반대한다는 목적을 내걸었다. 재개발반대당 관계자는 “재개발 추진 세력들은 주민들의 이익을 위한다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원주민이 항상 피해를 본다. 원주민들의 희생 없이 재개발이 안 된다. 재개발을 하면 가장 큰 이익을 봐야 하는 사람들이 주민들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배제되고 타 주민들이 개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불합리해 보였다. 이를 알리기 위해 당을 만들자고 뭉쳤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