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얼마 전 한 대기업 관계자 A 씨는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지인 소개로 야당의 한 보좌관을 만나는 자리에서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헤어지려던 그에게 보좌관은 “내가 잘 아는 술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자”며 택시를 잡고 강남으로 향했다. 자리에 동석했던 지인은 A 씨에게 귓속말로 “룸살롱을 가는 것 같다. 이 보좌관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오늘 확실하게 대접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A 씨는 망설이다가 “그러면 내가 아는 조용한 카페가 있다. 그리로 가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 보좌관은 “무슨 소리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자. 그렇게 비싼 술집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는 “룸살롱 결제가 힘들다. 양해해 달라”며 간신히 보좌관을 설득했다. 2차 장소로 가는 내내 보좌관은 투덜거렸고, 이를 지켜보는 A 씨 역시 분을 삭였다고 한다.
문제는 2차 장소였던 한 카페에서 터졌다.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보좌관은 “국정감사가 얼마 남지 않았느냐”며 A 씨가 몸담고 있는 대기업과 관련된 의혹을 계속 거론했다. 보좌관은 “공정거래위원회 등도 꽉 잡고 있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며 “앞으로 잘 지내고 싶으면 알아서 좀 해라”며 노골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A 씨는 “스폰서를 해 달라는 소리냐. 그럴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A 씨 등 뒤로 “한 번 두고 보자”는 보좌관의 말이 들렸다.
A 씨는 기자에게 “주변에서 일부 보좌관들이 기업 쪽에 공공연하게 스폰을 요구한다는 것을 들었다. 특히 기업 유관 상임위인 정무위나 산자위 등이 심하다고 한다. 스폰을 해주는 대신 국감 자료 등을 미리 받아 볼 수 있는 등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럴 줄은 몰랐다. 자리에 함께했던 지인이 대신 사과하긴 했지만 기분이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도 스폰서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의원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스폰서’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여의도의 한 고급 한정식집에 미리 수백만 원어치 계산을 해 놨다. 그냥 가서 먹으면 된다고 하더라. 문제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해놨다고 했다. 그 스폰서는 우리 지역구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의원을 오래전부터 후원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야권의 B 의원과 스폰서 간 관계는 여의도에서 제법 알려져 있다. B 의원은 고등학교 친구를 스폰서로 두고 있다고 한다. 물론 둘은 사석에서 친구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누가 봐도 스폰 관계라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형준 부장검사 역시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스폰을 받았는데,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사들의 스폰서 스캔들이 터졌을 때 B 의원이 회자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B 의원 스폰서의 한 측근은 “B 의원이 배지를 달기 전부터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고 한다. 스폰서라기보다는 정치적 후원자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면서도 “B 의원은 이런 관계를 악용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술집 등에서 비용을 과다 계산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돈을 챙겼다. 또 출판기념회를 하면 책을 무더기로 사달라고 부탁했다. 정치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이해했기 때문에 모른 체했고,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주변에선 B 의원과의 친분을 끊으라고 여러 번 조언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한 보좌관은 소위 ‘골프 스폰서’로 유명하다. 골프를 칠 때마다 스폰서를 불러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데, 보통 주 2회가량으로 많을 때는 한 달에 열 번 넘게 필드에 나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보좌관은 본인이 골프를 칠 멤버 3명을 모은 뒤, 나머지 한 명은 스폰서로 채우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몇몇 관계자들은 골프를 치고 싶을 때 이 보좌관에게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밖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례들도 있었다. 지역구 행사 때 스폰서에게 물품 구매를 부탁한 뒤, 여기에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고가의 선물까지 포함시켜달라고 한 전직 의원도 그 중 하나다. 또 스폰서가 고용한 운전기사를 자신의 자녀가 이용하도록 한 의원, 부인의 미용 시술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스폰서에게 대납하도록 요청한 의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몇몇 의원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예전과는 정치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돈이 들어갈 곳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나올 곳은 막혔다. 지역구 관리하고, 민원인들 만나 식사 몇 번 대접하면 세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믿을 만한 지인과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을 많이 봤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점차 스폰서로 발전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도 “최근 들어선 그런 의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다. 그리고 스폰서라기보다는 정말 개인적으로 순수한 마음에서 후원해주는 인사들도 더러 있다”면서 “하지만 돈이 아쉬운 정치인으로서 스폰서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집요하게 접촉해 온다. 보좌관들 월급을 상납받았다는 의원들은 어떻게 보면 순진한 것이다. 스폰서가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후원 제도를 현실적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폰서 관계의 상당수가 위법 소지가 높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명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는 스폰 관계에서도 통용된다. 스폰서가 돈이 남아돌아서 후원을 하겠느냐. 결국은 의원들에게 쥐덫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돈이 적게 드는 정치를 위해 후원회 제도 등을 개선했는데, 돈이 부족하니 이를 다시 바꾸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실제로 한 전직 의원은 자신의 스폰서였던 사업가에게 지역구의회 공천을 주려는 시도를 하다가 뒷말이 나돌자 포기했던 적이 있다. 스폰서의 이득을 위해 압력을 행사하거나 특혜를 주다가 사법처리를 받은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스폰서들에게 약점을 잡혔다고 호소했던 이들도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의원실 보좌관은 “5년 넘게 만난 사업가가 도움을 부탁해와 거절했는데, 은근히 협박을 하더라. 그래서 빚까지 내가며 그동안 받은 돈을 다 돌려주며 관계를 정리했다”고 전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 때도 고등학교 친구였던 스폰서들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김 부장검사의 경우 친구의 폭로가 도화선이 됐다. 스폰서가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는 스폰서를 둔 정치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스폰서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치인 스스로 엄격하게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정치 현실을 고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