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일 월드컵 4강기념 국민축제 행사 도중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는 박지성. | ||
박지성이 톱스타로 부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월드컵 이후 4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은 무서운 골 결정력 때문.
지난해 13경기에 출전해서 한 골을 넣은 게 전부였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놀라운 변화일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월드컵을 통해 얻은 자신감 때문이다.
J리그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월드컵 당시의 감동과 감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박지성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지 분위기와 월드컵 이후 달라진 점들, 그리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생활들에 대해 솔직한 고백들을 들어봤다.
목소리가 그대로다. 월드컵 시작 전이나 ‘탄력’ 받고 4강까지 올라갔을 때나 그리고 J리그에서 박지성이란 이름을 제대로 알리고 있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실제 나이를 착각할 정도다. 그가 너무 바른 소리만 해대 “20대 초반의 홍명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왜 그런 비유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단다.
―정말 어떤 점이 홍명보 선수랑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전 나름대로 재미있고 재치있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대답이 재미가 없나보죠? 아참, 이렇게 말하면 마치 명보형이 재미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네요. 사실 그렇지는 않은데.
―너무 올바른 얘기만 해요. 그 나이 정도면 좀 풀어질 때도 있고 빈틈도 보여야 하는데 너무 곧아요. 그래서 재미없게 느껴져요.
▲저도 남들 노는 만큼 놀아요. 월드컵 끝나고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도 다녀왔는데요.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라 친한 사람들 외엔 그런 모습을 잘 보이지 않을 뿐이죠.
―월드컵 이후 가장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면.
▲갑자기 공인이 된 거죠. 아무데도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야 밝히는데 사실 (김)남일이형이랑 제가 일본에 오기 전까지 강남의 한 호텔에서 숨어 지냈어요. 밖에만 나가면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참 사인을 해주다보면 나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하는 생각에 ‘마구’ 불안했죠. 남일이 형도 마찬가지였어요.
박지성은 월드컵 이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든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정중히 거절하고(사실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은둔 생활을 즐겼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처음에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팬 서비스 정신이 실종됐다고 비난 받을까봐 노심초사했음을 털어놓았다.
CF 요청도 줄을 이었다. 대충 셈을 해봐도 15억원이 넘는 뭉칫돈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박지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달아있는(?) 아버지에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충고’를 할 정도였다.
박씨는 “내 아들이지만 나보다 더 어른스런 면이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축구할 때까지는 축구만 생각하겠다는 고집스런 신념이 축구선수 박지성의 가치를 업그레이드 시켰는지도 모른다.
―김남일 선수와 같이 지내며 무슨 얘기했어요? 미래에 대한 그림도 그려봤나요.
▲그런 얘기 안 했는데…. 아, 공통적인 관심사는 있었죠. 외국 진출 문제요. ‘빨리 좀 팔렸으면 좋겠다’ 뭐 그런 거. 유럽 진출이 꿈이에요. 나나 남일이 형이나.
―에이전트인 이철호씨가 네덜란드에 간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히딩크 감독을 만나러 간 거 아닌가요.
▲네덜란드에 간 건 맞아요. 하지만 히딩크 감독을 만났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 전화가 없었거든요.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최근 기자에게 에이전트 이철호씨가 히딩크 감독의 초청에 의해 네덜란드로 출국했다가 귀국했음을 밝혔다. ‘아인트호벤을 포함해서 유럽 진출을 위한 사전작업을 하고 온 거’라고만 말하는 박씨는 “에이전트 이씨가 히딩크 감독을 만나 박지성의 해외 진출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아인트호벤 진출설’에 대해선 확실한 언급을 회피했다.
박지성의 해외진출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은 ‘올 시즌까지는 J리그에서 뛰다가 내년쯤 유럽 진출을 모색한다’는 것. 그러나 최근 이을용, 송종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선수들의 이적 문제가 워낙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박지성도 언제 어떤 형태로 유럽행을 발표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박지성의 에이전트가 히딩크의 콜을 받고 갔다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유럽진출을 의논하기 위해서 네덜란드까지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박항서 코치가 선임됐어요.
▲결정됐어요? 만약 제가 대표팀에 뽑힌다면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겠네요. 박 선생님과는 1년 넘게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시잖아요. 만약 다른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이 됐다면 한동안 힘들겠죠. 모든 부분이 바뀌게 되니까요.
▲ 월드컵 포르투갈전서 결승골을 터뜨린 후 히딩크 에게 달려가는 박지성 | ||
▲(단호한 목소리로) 그건 아닙니다. 선수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여러 감독들을 만나야 해요. 그리고 히딩크 감독님이 지금 당장 대표팀을 맡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만약 아인트호벤의 감독직과 한국 대표팀 감독을 병행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죠.
―이건 좀 다른 질문인데 월드컵 끝나고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저한테요? 어떻게 기사가 났는데요? 하하. 만약 지금까지 한국에 있었다면 생겼을지도 모르죠. 일본으로 오면서 소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어요. 지금은 정말 없어요. 좋은 여자 만나면 운동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결혼한 선배들 보면 형수님들이 대부분 미인에다 내조에도 일가견이 있으세요. 어디서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형들에게 자주 물어봤는데 아무도 그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더라고요.
최근 박지성의 고민 한 가지. 성형 미인과 자연 미인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여부다. 그래서 아들을 직접 뒷바라지해주기 위해 아버지를 홀로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온 어머니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요즘 여자들이 눈, 코 등을 많이 고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걸 분간해낼 수 있는지가 주 내용이었다.
박지성은 성형수술을 끔찍이 싫어한다. 부모가 물려준 얼굴에 칼을 대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성토한다. 만약 박지성과 결혼을 꿈꾸는 여자가 있다면 성형미인은 일단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월드컵 이후 팀 동료들의 태도가 변했다고 들었어요. 팬들도 그렇고.
▲많이 달라졌죠. 처음 일본에 와서는 말도 안 통하고 나이가 어려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지금은 의사 소통도 가능하고 이곳 생활에도 익숙해져 상당히 여유가 생겼어요. 월드컵 4강 진출이 좋긴 좋더라고요.
―일본 진출 첫 해에는 무척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오셔서 큰 힘이 되지만 처음엔 혼자서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가야 했어요. 힘들었죠. 그렇다고 그런 내색을 하면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이고 여기에 있는 구단 직원이나 동료 선수들도 우습게 볼 것 같아 이를 악물고 태연한 척 했어요. 그래서인지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말이 없는 편이거든요. 여기선 농담도 잘 하고 잘 웃고 말도 잘 해요.
▲ 결승골을 성공시킨 뒤 특유의 세리머니를 선보 이고 있는 박지성. | ||
▲혼자선 죽어도 안 나가요. 창피하잖아요. 연예인은 다른 세계서 사는 사람 같아요.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에 나갈 수 있겠어요. 여자 싫어하는 남자 있을까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연예인은 부담스런 존재죠. 저한테는요.
그는 여자친구가 있기를 바라지만 결혼은 늦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없다. 당분간은 축구에만 빠져 지내고픈 마음 때문이다. 순종적인 여자를 원하느냐 아니면 자기 일을 갖고 있는 커리어우먼을 원하는지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즉답을 내놓는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순종과 희생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자를 바란다”는 거창한 내용이다.
박지성과 결혼을 꿈꾸는 여자라면 성형 미인도 아니고 커리어우먼도 아닌, 남편을 위해 순종을 미덕으로 삼는 여성이어야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보다 일본 팬들이 훨씬 많다면서요? 팬레터와 선물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고 들었어요. 일본 여자팬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월드컵 이후 갑자기 얻게 된 인기가 아니에요. 제가 처음 일본에서 활동할 때부터 절 좋아하던 팬들이 많았어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의 어떤 점이 좋은지…. 나름대로 분석해 본 바에 의하면 골 넣을 욕심보다는 어시스트를 열심히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열심히 뛰는 모습도 좋았을 것 같고요. 작년에 우리 팀이 2부리그에 있었는데 그때도 교토의 슈퍼마켓에 가면 절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팬들은 팬일 뿐이에요. 그들이 절 좋아해준다고 저도 같이 들떠선 안된다고 봐요. 전 축구선수니까요.
박지성에겐 잊을 수 없는 일본인 아줌마 팬이 한 명 있다. 그의 행동을 종합해보면 ‘스토커’와 다름없지만 박지성은 그렇게 부르는 걸 싫어했다. 대학생 딸을 둔 40대의 이 여성은 박지성의 플레이에 매료된 나머지 박지성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월드컵 때 한국을 방문했음은 물론 유럽전지훈련중에도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찾았을 정도로 열혈팬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국 대표팀이 스페인에 머물렀을 때 였다. 아침에 잠에서 깬 박지성은 호텔 로비에 볼 일이 있어 나왔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 아줌마가 로비라운지에 앉아서 박지성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일본에서 온갖 선물과 편지, 그리고 기사와 사진 스크랩을 선물하며 박지성에게 ‘애정’ 공세를 펴왔지만 설마 유럽전지훈련지까지 쫓아오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던 것.
박지성은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공인으로 지내야 하는 현실에 대해선 무척 불편해 했다. 축구선수를 축구 실력으로만 평가하지 않는 국내 언론에 대해서도 유감스런 입장이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걸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팬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해본다고 한다.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도 ‘축구선수 박지성을 좋아할 뿐’이라며 애써 선을 긋는 그에게 ‘일본으로 직접 취재하러 가면 반겨 줄 것이냐’고 물어봤다. 한참 생각을 하던 박지성이 이런 대답으로 판을 깨고 만다. “결혼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