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현(왼쪽) 박세리 | ||
올시즌 4승을 챙기며 상금 2백만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박세리(25), 상금 1백만달러 고지에 오르는 걸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김미현(26), 프로 데뷔 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오락가락한 성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박지은(23), 그리고 박희정(22), 장정(22) 등 모처럼 한국에서 모인 LPGA 5인방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 후 각기 다른 대답을 들어보았다.
골퍼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자로서의 인생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의 대답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혹독한 자기 관리와 지겹도록 반복하는 연습을 생활로 안고 사는 골퍼의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코알라’ 박희정은 골프가 매일 똑같지 않다는 걸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드넓은 코스에 내 샷 하나 하나가 어디에 떨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필드에 설 때마다 긴장이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박지은은 “젊은 나이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대접받고 좋은 구경하고 성공의 기회를 다져갈 수 있는 무대가 골프 외에 또 어디 있겠냐”는 재치 있는 반응을 나타냈다.
정상에 올라서기도 힘들지만 정상을 지키기가 더 어려운 운동이 골프라고 말한 주인공은 박세리다. “아무리 잘해도 더 잘해야 하는 도전 정신과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골프 여왕’은 힘들다고 느끼는 것마저 매력적이라는 프로 정신을 발휘한다.
이렇듯 매력적인 골프를 하면서도 때론 외롭고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5인방은 과연 언제 그런 생각을 갖게 될까.
눈에 띄는 대답을 모아보면 박지은은 “진짜로 1년 3백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그런 생각이 든다”는 다소 충격적인 속내를 밝혔다. 특히 올시즌은 분신처럼 함께 다닌 아버지가 국내 사업 문제로 귀국하는 바람에 모든 걸 혼자 해결하다보니 그 빈 자리가 더욱 커졌다고 한다.
박희정은 골프장 밖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을 계속 골퍼로만 대우해줄 때 부담스럽다고 한다. 필드를 벗어난 곳에서는 골퍼가 아닌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 가끔은 식당에서 사람들이 “혹시 박희정 프로 아니세요?”하고 물어오면 “그 사람과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라고 응수한다. 박세리는 마음 편히, 여유있게 친구를 만날 수 없을 때 평범한 삶이 그립다고 대답. 김미현은 주변에서 하나 둘씩 결혼을 할 때 외로움이 깊어져만 간다고 하소연이다.
▲ 왼쪽부터 박지은 박희정 장정 | ||
김미현은 “솔직히 전화 통화하는 남자 친구는 많다. 문제는 날 설레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난 그들이 남자로 생각되지 않고 그들 또한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라고 한숨짓는다.첫사랑에 대한 질문에서 김미현은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를 꼽았는데 어린 나이라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이성에 처음으로 눈을 뜬 시기라는 게 적당할 것 같다고. 박세리는 아직까지 남자를 통해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박지은 또한 풋사랑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단정지으면서 “막상 그런 상대가 나타난다면 귀찮을 것 같다. 공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남자한테 무슨 정신으로 관심을 기울이겠냐”고 고개를 내저었다.
5인방들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일까. 키가 작은 장정은 “키 크고 잘 생긴 남자라면 일단 오케이”라고 답했고 박희정은 반대로 “잘 생긴 남자한테 관심 없다. 인물값 한다는 소리도 있지 않나. 친구 같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설명했다.
박지은은 외모는 둘째치고 일단 치아가 희고 가지런한 남자를 제일로 꼽았고 김미현은 손잡고 영화를 즐겨 볼 수 있을 정도의 취미 생활이 같은 남자를, 그리고 박세리는 “내 일을 전적으로 이해해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넓은 남자”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이상형에 가장 근접한 남자 연예인을 꼽는다면 누가 될까. 박지은의 대답이 재미있다. “얼마전 <순수의 시대>에서 나온 박정철씨를 보고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찾는 한 미용실에서 박정철씨를 만났다. 그것도 바로 내 옆자리에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순간 날 소개하고 인사를 나눌까 고민하다가 용기가 안나 모른 척 했는데 좀 후회가 된다.”
박세리는 골프 선수들의 애증 관계를 다룬 미니시리즈 <라이벌>에서 주인공역을 맡은 김재원을 보고 반했다고 털어놓는다. 편안한 느낌과 환한 미소가 압권이었다고.
박희정은 좀 엉뚱한(?) 대답을 내놓는다. “허준호 아저씨가 정말 멋있다. 언젠가 호텔 로비에서 그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인상과 매너가 정말 좋았다. 그런 타입의 남자라면 언제든지 데이트할 마음이 있다.”
해마다 상금으로만 억대에서 수십억원대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잘나가는’ 골퍼들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장정은 “꿈 같은 얘기”라며 말문을 닫았고 김미현은 “원래 스물여덟 살이 되는 내년에 하려고 했는데 상대를 구하지 못했다. 문제는 점점 골프에 대한 욕심이 생겨 당분간 결혼은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면서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외로움을 즐긴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박지은은 골프가 안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결혼하고 싶은 유혹이 끊이질 않는다면서도 목표를 성취한 다음 골프를 그만둬도 전혀 아쉬움이 없을 때 평범한 남자를 만나 그의 아내로써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박세리도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다. “결혼이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고 하는데 난 해보고 후회할 것이다.”
매번 재미나고 기발한 대답으로 웃음을 잃지 않게 한 박희정은 이번에도 예의 예상을 벗어난 멘트를 날린다. “난 가마가 2개다. 아무래도 결혼을 일찍 하면 두 번 시집갈 것 같아 될 수 있음 늦게 가려고 한다. 하지만 두 번 결혼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또래의 여자들에 비해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 5인방들. 미국 진출 초반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LPGA란 큰 무대에서 최소한 1승 이상씩을 올린 이들한테 돈은 또다른 의미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돈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서 김미현은 “돈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가장 큰 깨달음이라면 건강하지 않고선 아무리 많은 돈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철학을 내놓는다. 박세리는 돈은 골프를 잘 치면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정답’을 얘기하면서 돈을 좇기보다 우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면이 훨씬 많다고 설명.
마지막으로 5명에게 누가 제일 먼저 결혼 테이프를 끊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물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선수가 박지은이다. 이에 대해 박지은은 “내가 힘들 때마다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그렇게 나온 것 같다”며 “아마도 내가 가장 빨리 갈 수도 있고 아니면 가장 늦게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박희정은 반대로 김미현이 결혼을 가장 늦게 할 것 같다는 예상으로 또 한번의 엉뚱함을 과시했고 박세리는 “잘 모르겠다”며 대답을 회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