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잇돌 대출이란 은행권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저신용자들을 위해 서울보증보험이 보증을 서고, 이들에게 중금리로 대출을 해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금리 부담을 덜겠다며 출시한 사잇돌 대출에 대해 시장과 금융권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중·저 신용자의 중금리 대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추진한 사잇돌 대출이 생각보다 금리가 높은 데다 대출 승인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금융위원회는 사잇돌2가 지난 6일 출시된 후 4영업일 동안 총 344건이 체결되고 30억 원 이상 지원됐다며 시장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자평했다. 사잇돌2 대출을 이용한 고객 중에는 신용 6~8등급이 가장 많았다. 대출금리는 15~17%대가 65.7%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시중 금융권과 시장에서는 사잇돌2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대출금리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 지적된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저축은행에서 출시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대출금리가 너무 높다”며 “중금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가 보기에도 15~17%면 중금리라 하기에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사잇돌2의 대출 승인율이 저조한 것도 문제다. 고객이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의 심사와 서울보증보험의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 여부가 결정된다. 자격 요건을 갖추었더라도 과거 연체이력 등 신용평가에 따라 승인이 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보증보험 관계자는 “초기에는 저신용자들의 관심이 많아 기대보다 승인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며 “신용평가 경험이 축적되면 추후 승인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와 신용평가를 담당하는 서울보증보험은 정확한 승인율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잇돌2 상품을 출시한 저축은행업계조차 이 상품이 중금리 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의 저축은행 관계자는 “사잇돌2는 수요자와 금융사에 모두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다”라며 “수요자에게는 금리 수준이 높고,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큰 반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사잇돌2 대출의 보증보험료로 서울보증보험에 3.6~8% 상당의 보험요율을 적용받는다. 고객에게 16% 금리로 대출을 해줘도 보험료와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주장이다.
저축은행이 타깃으로 하는 중금리 시장 고객은 사잇돌2의 수요층보다 신용등급이 높다. 앞의 저축은행 관계자는 “사잇돌2에 몰리는 고객은 대부분 대부업 쪽을 이용하다 2금융권으로 옮겨오려는 사람들이기에 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 자격에 미치지 못할 확률이 높다”며 “저축은행업계가 사잇돌2 판매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주도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대한 논란도 계속된다. 금융당국은 고령화·저성장이 지속되는 탓에 국민의 노후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의 자산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ISA를 도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기대와 달리 ISA를 통해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기준, 잔고 1만 원 이하 ‘깡통계좌’가 전체의 57.1%나 차지했다. 은행들이 ISA 도입 초기 고객 유치 경쟁을 펼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당 할당량이 내려온 건 맞다”며 “일부 지점은 신입사원까지 할당량을 줄 만큼 압박이 심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ISA가 예상보다 인기를 끌지 못한 까닭은 고객들이 다양한 투자상품을 관리하는 주체가 은행이라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탓으로 풀이된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있고 펀드투자 수익에 대한 국민적 경험이 긍정적이지 않은 탓에 예·적금 선호 현상이 뚜렷한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 3~5년 간 돈을 묶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ISA 활성화를 위해 수시 인출을 가능하게 한다면 국민통장으로서 매력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서민형 정책들이 단기 처방에 급급한 졸속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일요신문DB.
이처럼 금융당국이 서민들을 위한다는 판단으로 주도한 사잇돌 대출과 ISA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잡음만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졸속정책에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단기 처방에 급급해 금융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외면하면서 깡통계좌만 무수히 양산한 ISA도 그렇지만 사잇돌2 대출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이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더욱이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기 일쑤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보여주기식 정책과 압박이 상당하다”며 “정책 금융상품이나 신상품 실적을 매주, 심한 경우 매일 금융당국에 보고할 때가 있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 사잇돌2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 실적이 미미한데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금융당국이 본격적으로 실적 요구를 압박해 올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정책에 관한 한 장기적인 관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문제가 적지 않은 기존 신용평가시스템 외에 금융당국과 민간 금융사가 고객의 성향·취미·주변 사람들과 관계 등 ‘정성적 정보’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계형 금융 정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