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재직 시절 오상훈 씨.
말을 이어가던 그의 눈이 천천히 빨갛게 물들어 갔다. 인터뷰 내내 담담했던 그였다. 유죄 판결이 확정된 이후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으로 숨어 지냈던, 매일 떠오르는 극단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지옥 같은 4년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랬다. 그런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국가와 법은 경찰인 나를 지켜주는 창과 방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창은 나의 목을 겨눴고, 방패는 나를 밀어냈습니다.”
# 마약사범 검거, 잔인한 시간들의 시작
해끔한 스물아홉 살, 오상훈 씨(47)가 부산 남부경찰서 형사계 막내로 들어갔을 때의 나이다. 1994년 형사 기동대에서 전투경찰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오 씨는 4년 뒤인 1998년 1월, 꿈에 그리던 형사가 됐다. 잔심부름과 사무실 청소를 도맡아하고, 무뚝뚝한 선배들의 어깨 너머로만 업무를 배우면서도 그의 가슴은 뜨거웠다. 불을 지핀 건 경찰로서의 사명감, 단 하나였다.
“막내, 짐 챙겨서 따라온나.” 1998년 9월 중순께, 형사 반장이 오 씨를 불렀다. 반장에게서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오 씨는 최근 입수된 마약사범 첩보를 떠올렸다. 출동 준비를 하는 동안 멀찌감치 멀어진 반장을 뒤따라 간 곳은 부산의 한 허름한 아파트였다.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현관문 위, 작은 창문이 보였다. 오 씨는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했다. 창문을 넘어 들어간 방 안은 대낮에도 어두웠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 씨는 천천히 안방을 향했다.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마약사범 A 씨였다.
A 씨의 집에서는 대량의 필로폰이 발견됐다. 마약 판매에 쓰는 저울과 돈다발도 발견됐다. 현장에서 모든 증거가 확보되면서 A 씨는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경찰서로 따라갔다. A 씨 검거 이후 또 다른 마약사범들이 줄줄이 검거되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마약 조직이 일망타진됐다. 막내 형사인 오 씨에게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그에게 잔인한 시간들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 고장 난 카오디오, 그리고 뇌물수수
오 씨는 A 씨의 조서를 꾸몄다. 형사 생활을 시작한 뒤 세 번째로 작성하는 조서였다. 감독과 교육 차원에서 반장의 이름을 넣고, 그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A 씨에 대한 오 씨의 조사가 시작됐다. 순조로웠다. A 씨는 순순히 모든 사실을 자백했다.
그런데 검찰 송치를 앞두고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A 씨가 오 씨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A 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얼마 전에 몰던 차를 폐차하면서 카오디오를 따로 떼어 놨는데, 그걸 대신 좀 팔아달라”고 말했다. 당시 전과 5범이었던 A 씨는 이번 사건으로 중형이 예상돼 변호사가 절실했다. 부산 남부경찰서 인근에는 자동차 정비소 등이 한데 모여 있고, 오 씨 얼굴도 잘 알 테니 카오디오를 잘 팔아달라고 부탁한다는 이야기였다.
며칠 뒤 오 씨는 카오디오를 A 씨 지인에게 넘겨받았다. 인근 정비소에 가져가 중고 가격을 묻자, 정비소 관계자는 “고장이 나서 수리해야 한다. 수리하면 100만 원, 하지 않으면 50만 원에 사겠다”고 말했다. 오 씨가 A 씨 지인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알리자, A 씨는 “가격이 너무 낮다. 150만 원에는 팔아야 한다”며 “형사님이 대신 사줄 수 없느냐”고 다시 물어왔다. 오 씨는 거절했고, 카오디오는 경찰서에 보관해 둘 테니 지인에게 찾아가라고 전했다.
그런데 2개월 뒤, 검찰은 오 씨를 검거했다. 경찰서에 보관하고 있던 A 씨의 카오디오를 두고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본 것이다. 오 씨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보관만 해두던 고장 난 카오디오가 뇌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로 잔일만 해오며, 조서도 형사 반장 입회하에 세 번밖에 꾸며 보지 않은 막내 형사가 검거한 범인에게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줬다는 추궁을 듣고 억울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심지어 수리를 해야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던 카오디오는 ‘500만 원 상당의 금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 씨는 검찰 조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재판에 넘겨진 오 씨는 1심에서 징역 8월이 선고됐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카오디오의 가격이 부풀려 기재된 점이 밝혀져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대법원의 판단도 항소심과 마찬가지였다. 1999년 8월, 오 씨의 유죄가 확정됐고, 그는 경찰직에서 파면됐다.
# “그럼, 누명을 벗어라”
오 씨의 삶은 무너졌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짓 증언을 한 A 씨가,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결혼하기로 했던 여성과는 파혼했고, 전직 경찰로서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막내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버지는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뇌출혈로 쓰러졌다.
“정말 뇌물 받았나?” 4년 뒤, 아버지가 오 씨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절대 받지 않았습니다.” 오 씨가 대답했다. “그럼 누명을 벗어라.” 오 씨의 아버지가 임종 직전 남긴 말이다. 이날 이후로 오 씨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의 뜻대로 진실을 밝혀내 다시 재판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돈이 필요했다. 이름과 나이만 알던 A 씨를 찾아야 했고, 그의 지인과 당시 검사와 수사관을 만나야 했다. 건설현장부터 식당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돈이 모이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A 씨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오 씨는 A 씨를 찾아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 비겁한 거래
다음은 2014년, A 씨와 오 씨의 첫 통화 내용 일부다.
“검사가 이래 오더니마는 ‘이거는 뇌물죄로 이렇게 사건을 만들어야 되네’하면서 그러더라고. ‘뇌물에 대한 어떤 그거는 아닌 듯한데요.’ 내가 검사님한테 그랬어예.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 받는 과정에서 공무원한테 오디오를 뭐 팔아 달라, 안하면 오디오를 사라 뭐 이거는 어떠한 혜택을 보기 위해서 그런 말 한 거 아니냐?’ 하면서 내보고 그러더라고. ‘아 그런 거 절대 아니라고, 그냥 팔아달라고 한 거다’하니까.”
A 씨의 얘기에 오 씨가 물었다. “그럼 절대 아니라고 얘기를 했습니까?” 그러자 다시 A 씨가 얘길 이어갔다.
“예, 했지예. 하니까 인제 검사가 ‘이런식으로 하면 조사가 안되고, 또 A 씨 재판에 공적서도 못 올려주고, 감형도 못 시켜주는데 그냥 뇌물로 조사를 받으이소’하면서 이러더라고. 그래가 나는 인제 뭐 검사가 내 형량하고 다 낮춰준다 하니까, 또 내가 나도 오 형사님한테 또 뭐 돈이라도 받은 것 같으면 내가 그냥 뭐 없었던 걸로 이렇게 할 건데, 돈도 못 받았지 그래서 화가 나가지고. 내 재판하는 과정에서 혜택을 준다니까 거기에 인제 혹 해가조고 내가 그렇게 뇌물 조사를 받았지예.”
오상훈 씨와 A 씨의 첫 통화 내용 일부. A 씨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 씨는 그동안 A 씨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어 위증을 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A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검사와 수사관이 사건을 조작했고, 감형을 시켜 줄 테니 거짓 증언을 요구했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오 씨는 징역 3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되던 A 씨가 징역 6월을 선고 받았고, 자신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A 씨가 뇌물공여죄로 처벌받지 않았던 사실도 알게 된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A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앞서의 녹취록과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입회계장(검찰 수사관)에게 경찰 조사 과정에서 카오디오를 맡겨둔 사실이 있다고만 얘기했다. 그런데도 ‘그것만으로는 사건이 안 되니까 뇌물 준 걸로 하자, 이번에 재판 받으면 무조건 실형이다. 뇌물 얘기하면 감형해 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당시 수사관이 자꾸 공무원 비리 아는 거 없냐고 묻는데, 카오디오도 안 팔리고 (오 씨가) 사주지도 않아 화가 많이 나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당시 뇌물로 준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A 씨의 지인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A 씨가 유치장에 있는 동안 오 씨와 A 씨 사이를 오가며 카오디오와 진행상황을 전달하는 등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다. A 씨 지인은 “뇌물수수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해서 검찰청에 갔는데, 수사관이 뇌물 맞지 않냐고 계속 물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아닌데 왜 맞다고 해야 하냐며 따져 물었더니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며 “나오면서 ‘검찰, 경찰은 한 식구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소리를 쳤다”고 말했다.
A 씨와 그의 지인은 공통적으로 검찰이 공무원 비리를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증언한다. 이들이 조사를 받던 시기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공무원의 부패척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라”는 지시에 따라 대검찰청 중수부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될 정도로 대대적인 공무원 비리 단속이 이뤄지던 때와 맞물린다. 오 씨와 A 씨, 그의 지인은 이를 토대로 검사와 수사관의 ‘실적’과 ‘성과’에 대한 욕심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편, 당시 오 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한 검사는 2014년 4월 부산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오상훈 씨는 현재 부산의 한 물류센터에서 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다시 재판 받기 위해
오 씨는 2015년 A 씨의 증언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며, A 씨의 증언에는 신빙성이 없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오 씨는 대한변호사협회와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 등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 씨는 “모두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려운 사건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오 씨는 올해 초, 형사사건 재심을 전문으로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사건을 부탁했다. 사정을 들은 박 변호사는 고민 끝에 그를 돕기로 했다. 박 변호사는 “처음엔 무작정 사무실 앞에 앉아 있던 그에게 화를 내고 거절도 했지만, 그 절박한 표정과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다시 재판을 받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도, 이 사건은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오 씨가 10년에 걸쳐 사건 관계자들을 모두 다 찾아냈고, 동시에 오 씨가 뇌물수수를 했다고 증언한 사람들의 당시 진술이 현재 180도 바뀌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하겠다고 나선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은 충분히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면서도, 당시 증언이 위증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