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나우두 | ||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팽팽한 대결로 인해 모처럼 축구장을 찾은 관중들은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신바람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월드컵때 한국을 찾았던 브라질 대표팀이었지만 호나우두(26·레알 마드리드), 카를로스(29·레알 마드리드), 카푸(32·AS로마)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의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직접 보는 재미는 일반 팬들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도 설렘을 갖기에 충분했다.
<일요신문>에서는 경기 다음날인 21일 숙소인 하얏트호텔에서 호나우두를 비롯한 2명의 선수와 단독 인터뷰에 성공했다. 전날의 경기와 풀리지 않는 시차 때문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남미 특유의 호탕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적극 응해준 모습에서 대스타의 여유를 느끼게 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상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선수들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소박했다. 특히 브라질 대표팀 선수 중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호나우두의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브라질 언론담당관으로부터 오후 1시경 호나우두가 출국을 위해 호텔 로비에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시가 넘어가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방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마침내 1시20분경 파란 털모자를 눌러 쓰고 검정색 목도리에 검정색 반코트를 입은 호나우두가 로비에 나타났다. 체크아웃을 하러 프런트에 가는 동안 기자와 통역이 다가가서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그런데 경호원들이 나타나 접근을 막는 바람에 호나우두는 어쩔 수 없이 버스로 향했고 결국 공항까지 뒤쫓은 끝에 인터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호나우두는 먼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 한국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특히 전날 경기가 근래 보기 드물게 재미있었고 한국 선수들의 지치지 않는 체력엔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유럽 리그가 한창 진행중이라 거리적으로 멀고 체력적으로 부담스런 한국행이 꺼림칙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브라질 대표 선수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어제 경기가 너무 좋아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국과의 경기에서 받은 유쾌한 소감을 신바람나게 전했다.
호나우두는 유럽 진출을 소원하는 한국 선수에 대한 당부를 곁들였다. “한국 축구가 굉장히 발전했다는 사실은 지난 월드컵을 통해 잘 알게 됐다. 이번에 직접 만나보니 그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정도의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한국에 많다면 유럽행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실력을 쌓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호나우두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된 뒤 94년 아인트호벤을 시작으로 유럽 무대 정복에 나섰다. 브라질 프로팀에서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한 이유는 네덜란드 리그가 선수를 성장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믿었기 때문.
2년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가 97∼98시즌에는 이탈리아 인터밀란에서 활약했고 부상과 수술로 슬럼프를 겪다가 지단과 피구 등이 버티고 있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지난 8월 거액의 연봉을 받고 옮기면서 자신의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프로 선수를 돈으로 평가하는 시대에선 내 몸값이 다른 선수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돈을 쫓지는 않는다. 지금 내 입장에선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 없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젠 돈의 많고 적음을 따지기보다는 보다 더 가치 있는 곳에서 보람된 축구 인생을 펼치고 싶다는 소망이 깃들여 있었다.
실제로 호나우두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으로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특히 98년 시즌중에 코소보 난민들을 가까이서 느끼고 전쟁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직접 코소보로 간 일화는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당시에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호나우두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큰 슬럼프를 꼽는다면 98년 10월 오른쪽 무릎 근육 이상으로 축구장을 떠나 있다가 99년 11월 결국 수술대에 오른 일일 것이다.
수술 뒤인 2000년 4월 5개월 만에 복귀했지만 교체 투입된 지 6분 만에 다시 쓰러져 재수술을 받았고, 1년 반 만인 2001년 8월20일 인터밀란 소속이 돼서 나이지리아의 클럽 챔피언 에니임바와의 친선경기에 선발 출장, 35분간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가장 기가 막혔던 일이 어렵게 재활 훈련 끝에 복귀한 무대에서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아 달려가는 상황에 무릎 통증으로 쓰러진 일이다. 아마 처음으로 운동장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 같다. 정말 가슴이 아팠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두려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축구를 포기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재활기간중에 호나우두는 축구선수인 약혼녀 밀레느 도밍구스(22)와 결혼, 4월에 호나우두 주니어가 태어나는 경사를 맞았다. 호나우두는 밀레느가 임신한 당시 “내 아들은 필드에 있는 나를 볼 것”이라고 약속했고 4월12일 의료진의 허락을 받고 라치오와의 경기에 20분을 남기고 교체 투입됐다가 부상이 재발되는 악몽을 맞이했던 것.
비록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 반복되는 일상사였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사람에 대한 정과 고마움을 새롭게 느꼈던 계기가 됐다고 한다. 팬들로부터 엄청난 격려 편지를 받았고 지단과 펠레가 먼 길을 달려와서 용기를 주고 돌아갔다.
“그때 펠레가 했던 말이 자신도 나와 같은 힘든 일을 겪었고 그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이전보다 더욱 강한 사람이 됐다는 위로였다. 나보다 훨씬 많은 인생을 산 선배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세상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느꼈다.”
▲ 카를로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세계적인 플레이어답지 않게 스타 의식이 별로 없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일 줄 아는 모습에 절로 반할 만큼 매력적인 남자였다.
축구를 사랑하는 만큼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호나우두한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항상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환호 속에서 살다보면 짜증이 날 것 같은데….”
“절대 아니라고는 말하기 그렇지만 익숙해져 있어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팬들의 함성은 아무리 자주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마법과 같은 존재다.”
연봉 5천5백달러에서 시작한 축구가 지금은 1천만유로(약 1백16억원)로 축구선수 중 세계 최고 연봉자로 꼽힌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선수가 1백억대 연봉자라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한국과의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 룸에 나타난 로베르토 카를로스는 그라운드에서 본 모습보다 키가 더 작았다. 실제 신장이 168cm였는데 경기장에선 키가 작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플레이가 커 보였다(허벅지 둘레가 웬만한 여자 허리보다 굵다).
다음날 숙소에서 만난 카를로스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귀엽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등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프리킥의 마술사’ ‘오버래핑의 1인자’ ‘UFO킥’이란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란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했는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그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카를로스하면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게 앞서 말한 ‘UFO킥’. 97년 6월 프랑스에서 벌어진 4개국 초청 프레월드컵 프랑스-브라질전에서 신기에 가까운 프리킥으로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프랑스 문전 32m 지점에서 찬 공이 프랑스 수비벽의 오른쪽을 크게 돌아 그대로 골대를 벗어날 듯했지만 다시 곡선으로 휘어져 들어가며 골키퍼 바르테즈의 혼을 빼놓았던 것.
기자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자 “어떻게 알고 있냐”며 놀라워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자신의 발로 찬 공이 어떻게 해서 절묘한 곡선을 그리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카를로스는 전날 인터뷰 룸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인상적인 선수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14번을 말한 적이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서도 14번 이천수라고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좋은 선수들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예전에 비해 국가대표팀 전력이 굉장히 발전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한국팀과의 경기 소감을 간단히 정리했다.
카를로스는 브라질 대표팀이라는 사실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나열했다. 항상 급하게 모이고 짧게 훈련하며 준비가 부족한 것이 브라질 대표팀의 특징이라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선수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브라질’이라는 메이커로 인한 융숭한 대우를 받을 때는 축구선수로서의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
카를로스는 철저히 팬들의 사랑을 즐겼다. 때론 공인으로서 생활하는 데 대한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팬들이 없다면 카를로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만큼 현재의 축구 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기자의 질문마다 요란한 제스처를 섞어가며 속사포같이 대답을 해대는 카를로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물론 아내라고 하는 게 정상이지만 솔직히 이 세상에는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카를로스는 멋진 경기를 펼친 한국 선수들에게 “한국 선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뛰었으면 좋겠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몇 명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축구는 실력으로 말할 뿐이다. 나랑 같이 뛴 선수들 중 유럽에서 통할 만한 재목감이 분명 있었다. 꿈을 갖고 계속 도전하길 바란다”는 멋진 멘트를 남겼다.
스페인에 오면 레알 마드리의 카를로스를 꼭 찾아달라는 ‘웨이터성’ 발언을 남기고 숙소를 떠나는 카를로스에게 팬들이 쫓아가자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액션을 취하며 여전히 장난기를 발동했다.
▲ 카푸 | ||
노장축에 들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전성기 못지 않은 스피드와 체력으로 상대 진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라이트 윙백으로 진가를 발휘한다. 대표팀의 에바니우손이 개인기와 스피드를 앞세워 카푸의 자리를 위협하지만 경기를 읽는 시야에다 노련미까지 가세해 현재 최고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다.
이렇듯 화려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카푸와의 인터뷰는 숙소 식당 앞에서 이뤄졌다. 겉으로는 굉장히 내성적으로 보이는데 한 번 말을 하기 시작하니까 은근히 수다스런 면모도 있었다.
카푸는 아내 레지나와 17년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잘못 들은 줄 알고 7년이냐고 물었더니 다시 17년이라고 정정해줬다. 즉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냈고 결혼을 15세에 했으며 현재 애가 셋이라며 자랑을 늘어놨다.
17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대한 소감을 묻자 “레지나는 아주 현명한 여자다. 축구선수 아내로서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을 지녔다. 그런 여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반문할 정도였다.
카푸는 인생의 최대 슬럼프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는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라고 설명했다. “모든 일이 처음에 가장 힘들지 않나. 물론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선수가 되었지만 처음 한동안은 내가 이걸 잘 택했는지, 앞으로 잘 될 수 있는지, 후회는 안 할 자신이 있는지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카푸는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생활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항상 여행을 다녀야 하고 잠도 호텔에서 자야 하며 대부분 땅을 밟기보다는 비행기 안에서 지내는 생활의 반복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고.
“이게 인생 아닌가. 내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힘든 일을 겪고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진지함이 뚝뚝 묻어났다.
카푸는 마지막으로 지난 월드컵을 통해 비상한 한국 선수들에게 이런 당부를 전했다. “선수라면 누구나 외국의 좋은 팀, 명문 팀에서 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해외 진출을 꿈꾸기보다는 외국 생활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익숙해져있는 문화와 너무나 다르고 또 그걸 이겨내기가 때론 축구보다도 힘들 때가 있다는 걸 꼭 알았으면 좋겠다. 나도 세리에A라는 빅리그에 몸을 담고 있지만 브라질에서 뛰었을 때보다는 덜 행복하다.”
토끼 같은 치아를 활짝 드러내며 기자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왔던 호나우두와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가며 기자와 통역을 담당했던 사람에게 ‘아모르’를 외쳤던 카를로스, 그리고 연륜과 깊이를 느끼게 해줬던 카푸는 그라운드의 화려한 플레이 이면에 숨어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해줬던 ‘브라질 삼총사’였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통역=조예성